Episodio 01. 스페인어의 사고방식

¡Hola! 호미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예고한 대로, 오늘은 한국사람이 스페인어의 문법과 어휘를 책으로만 배운 다음, ‘먼지를 닦다가 실수로 꽃병을 깼을 때 스페인어로 말해야 한다면’ 이라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를 가동할 것입니다.

‘나 자신’이 주어니까 yo,

‘깨다’는 동사 romper, 동사변형 중 1인칭 단수의 변형을 적용시켜야 하고,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일이니 과거형으로 해야겠군, rompí,

‘꽃병’은 목적어니까…

1. “Yo rompí el jarrón.”

이 문장을 1번 문장이라고 표시해 두겠습니다.

오늘은 언어를 ‘책으로’ 배운다는 것에 대한 저의 생각과 위의 문장에서 ‘실수로’ 라는 부분을 드러내기 위한 스페인어 문법의 한 부분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위의 문장을 살펴봅시다.

내가 먼지를 닦는 상황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실수로 꽃병을 깨게 된 스페인 사람들은 위와 같이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스페인 사람이 1번 문장을 듣게 된다면 ‘내가 꽃병을 깼다.’ 라고 들릴 것이고, 꽃병이 깨진 상황보다 꽃병을 깬 주체가 두드러지게 들립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체 그 사람이 꽃병을 깬 이유가 궁금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이 ‘¿Porqué?’ (왜?, 왜 깼니?)일 가능성이 큽니다.

비교를 위해, 어떤 사람이 ‘내가 꽃병을 깼어’, ‘나 꽃병 깼어.’ 라고 말한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의 다음 이어질 말을 상상해보자면, ‘꽃병을 깼다고? 너 안 다쳤어? 괜찮아?’ 라는 말을 할 것 같습니다. 이어질 수 있는 말들의 경우의 수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스페인 사람과 한국 사람 모두 문장의 주체 즉, ‘내’가 깼다는 것을 먼저 인식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비교적 스페인 사람이 듣는 그것과는 다르게 주어가 의도적이었는지 의도적이지 않았는지는 다시 한번 묻지 않고서는 잘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제가 가장 첫 부분에 ‘실수로’라고 말한 부분을 기억하시나요? 다시 말하면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내가 원해서 깬 것이 아니고, 나는 먼지를 닦는 것이 본래의 의도였고, 꽃병이 깨진 상황에 내가 있었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고,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꽃병은 깨져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누가 그랬는지 책임을 따지기 보다는 꽃병이 깨진 사실 자체만을 강조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2. “El jarrón se rompió.”

3. “Se me rompió el jarrón cuando le quitaba el polvo.”

2번 문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동태입니다. ‘꽃병이 깨졌어’입니다. ‘나’는 쏙 빠져있죠. 내가 먼지를 닦다가 깨(지)긴 했지만 문장 속에서 ‘나’의 존재를 지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봤자 스페인 엄마들도 마찬가지로 ‘얼른 가서 치워라.’라며 사건의 책임을 물을 겁니다. 8-O

3번 문장은 직역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우리말에는 이런 말이 없거든요 :roll: 이해를 위해 굳이 직역을 해보자면 “먼지를 닦을 때 꽃병이 나에게서 자기 스스로 깨졌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실제로 번역의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먼지 닦다가 실수로 꽃병을 깼어.” 라고 실수임을 알리거나 또는 단순하게 “먼지 닦다가 꽃병이 깨졌어.”라고 주체가 숨겨진 수동의 형태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번 문장 속에는 ‘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me)

그렇다면 스페인 사람들이 위의 2, 3번 문장을 들으면 그 다음에 어떤 말이 이어질 수 있을까요? 아마도 “¿Qué ha pasado?” (무슨일이야?) 라고 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으로도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를 알아가려는 의도가 일관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 한번 비교를 위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실수로 꽃병을 깼고 내가 직접적으로 깨지는 않았지만 꽃병이 깨져버리고 말았다는 이 상황을, 즉 주어와 앞뒤 상황이 없는 문장으로 ‘꽃병이 깨졌어.’라고 말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요? 이전의 상황과 동일하게 ‘꽃병을 깼다고? 너 안 다쳤어? 괜찮아?’ 라고 말할 수도 있고, ‘누가 그랬어?’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차이점은 어떤 말을 하든 자연스럽게 한국 사람들은 ‘누가’ 깼느냐 즉, 주체의 부재를 먼저 인식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빠한테 무언가 깨졌다고 말했을 때 아빠가 눈을 무섭게 뜨고 “누가 그랬어?!” 라고 되물으시던 경험이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종종 있었을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1번 문장과 2,3번 문장의 비교에서 볼 수 있는 문법적 차이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 드리자면, 1번 문장에서는 ‘내’가 주어이고, 2,3번 문장에서는 ‘꽃병’이 주어입니다. 2,3번 문장에 대해서 스페인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Frecuentemente usamos una estructura compuesta : se + me/ te/ le /nos /os /les. Con el pronombre ‘se’ queremos expresar la falta de responsabilidad del sujeto en la acción verbal y indicamos quién es el afectado por la acción verbal.

… 주어의 책임의 부재를 표현하고자 …

… 일어난 일로 인해 누가 영향을 받았는지를 나타내고자 …

이렇듯 스페인어에서는 문법적 구조만으로 ‘책임의 부재’ 또는 그 상황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3번 문장은 문장의 사건 속에 누가 존재했는지 드러나지만 그 사람의 직접적인 고의성이 없는 사건으로 이해되는 문장입니다. 이 구조는 일상생활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쓰입니다.

Se me ha olvidado las llaves. 나 열쇠를 깜빡했어. (내가 잊었어.)

Se me ha perdido un calcetín. 내 양말 한짝을 잃어버렸어. (그래서 나는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Se te ha caído el boli. 펜 떨어졌어. (내 펜말고 네 펜.)

3번 문장과 관련된 이 문법에 드러난 스페인어의 사고방식의 일부를 저는 이렇게 글로 설명했지만 TED의 한 강연에 이 부분이 부분적으로 설명된 적이 있어 아래에 소개합니다. 전체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여유가 되시면 꼭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한국어 자막 있음)

책으로만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분들을 보면 존경스러울 만큼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말하는 ‘책으로만’ 언어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는, 원어민과의 직간접적 접촉보다 텍스트 자료를 활용한 읽기와 쓰기 중심의 학습 방법을 의미합니다. 단적인 예로 학원수업이나 책을 파고드는 독학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과 저 말의 미묘한 차이, 우리말과 다른 어휘를 쓰지만 실제로는 같은 개념을 설명하는 외국어를 알아 듣기 위해서는 읽기와 쓰기에 치우진 학습법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들은 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외국어를 더 깊게 배우는 것이 이미 가능하게 된지 오래 되었습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많은 외국어 학습자료들과 컨텐츠들이 많은 분들에게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외국어를 배울 수 있게 하고 있지요. 어학연수를 가지 않고 그 나라의 드라마를 꾸준히 보는 것으로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고, 대사를 따라할 수도 있습니다. 원어민과 영상통화를 하며 수업을 할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실제로 원어민들과 부딪히며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다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오감이 동원되어 기억되는 외국어 한 마디는, 책으로 배우는 그것으로 대체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언어를 말하는 것은 제 2의 영혼을 갖는 것이다. –카를로스 대제

Hablar otro idioma es tener una segunda alma. – Carlomagno

저는 이 말에 큰 공감을 합니다. 영어로 하고싶은 말을 주저없이 하게 되었을 때의 쾌감, 우리말로 해석하기 어려운, 또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스페인어를 이해했을 때의 짜릿함은 마치 내 안에 각기 다른 언어를 하는 영혼이 각각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같은 상황, 같은 의도를 내포하지만 언어마다 각기 다른 방법과 어휘로 말합니다. 직역하면 너무나 다른 말 같은데, 상황과 의도를 살펴보면 결국에 같은 말을 하고 있지요. 번역을 할 때에도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어의 체득을 저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원어민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학습의 목적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문장은 여러번 듣고, 읽고, 쓰고, (씹고 뜯고 맛보고) 말해보지 않고서는 입에서 튀어나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어 번역을 하고 싶은 것과 마드리드에 사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며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왜 굳이 마드리드에 있느냐고 말하면서 말이죠. 한국에서 통번역대학원을 가는 게 나을 것이다, 프리랜서라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으니 일단 한국에서 시작해라… 등의 말들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마드리드로 왔고, 매일 매일 이 언어와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엄마가 오래전부터 저에게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마드리드에 가겠다는 저를 두고 이 말씀을 하진 않으셨습니다. 가고 싶으면 가라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D)

‘너는 그걸 꼭 찍어 먹어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겠냐.’

네, 저는 그렇습니다. 저는 그게 무엇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알겠고, 그러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마드리드로 왔고, 위에서 언급한 쾌감과 짜릿함을 체득으로서 상당 부분 (거의 대부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체득의 효과는 저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