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번역가의 가장 큰 자산, 집중력 유지법

사람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어서 일정 기간 동안 집중한 다음에는 쉬었다가 다시 작업을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고강도 정신노동인 번역은 더욱 그렇습니다. 번역가의 일 중에 집중력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부수적인 일들도 물론 있는데 이런 일들은 음악 들어가면서 할 수도 있고, 잠깐 딴 일 하다가 이어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번역 그 자체를 할 때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지요. 이런 집중력은 번역가의 정신적 근력(mental muscle)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고, 또 이런 집중력을 발휘하여 일하는 시간 동안은 방해받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집중해서 일하는 짧은 시간을 치타의 달리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포스트의 비유를 여기서도 사용하자면, 번역가의 career는 마라톤 같은 것이고 개별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는 것은 단거리 달리기와 같습니다.)

 

 

치타는 단거리 달리기 선수인데, 달리기를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짧은 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리고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야 하죠. 달리기 시작했다가 무슨 이유로든 멈추었다가 다시 달릴 수 있나요? 그건 당연히 안되지요. 그때까지 형성된 추진력과 가속도를 다 잃어버리게 되고, 그만한 속도에 다시 도달하려면 다시 한 번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의 습관 속에서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아 가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요소라고나 할까요? 이런 것들은 우리의 집중력을 흩트리기 때문에 사실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훔쳐 가는 도둑들입니다. 그중 몇 가지를 지적하고 그런 것들에 대한 저의 대응 방법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SNS

 

SNS가 사람들의 집중력을 빼앗아 간다는 것은 요즘 너무도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단호히 끄시면 됩니다.

 

 
이메일 도착 알림
 
 

사실 번역가의 주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이메일이기 때문에 이것은 상당히 심각한 위협입니다. 게다가 번역가가 작업을 컴퓨터 앞에서 하니까 이 위협은 더욱 심각하지요. 이메일 도착 알림을 꺼 놓아도 중간에 확인하고 싶어 근질근질하는 때도 있지요. 또 빨리 응답을 해 주어야 비즈니스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메일을 무슨 인스턴트 메시징처럼 빨리 응답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번역가가 그렇게 할 의무도 필요도 없습니다. 번역가는 번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번역할 때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메일에 대한 응답이 몇 시간 늦었다고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중요한 이메일이 올것 이 있어서 기다리는 때도 있지만, 그런 때가 아니면 저는 브라우저 자체를 꺼버립니다. 집중 세션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다시 켜 보면 되니까요. (집중 세션의 길이야 사람마다 다르지만 전 기껏해야 50분 정도입니다. 그러니 어차피 별로 길지도 않아요. 휴식 시간에 이메일 같은 것도 체크해 보고 급한 것 있으면 간단하게 처리해 주면 됩니다.) 사람마다 상황이나 스타일이 다르니까 이 문제에 대해 일률적인 해결책이 있지는 않겠지만 저는 이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화
 
 

사람들이 전화에 얼마나 관대한지 저는 가끔 놀랍니다. 중요한 모임 중에도 전화가 오면 받고, 아예 자리를 떠서 나가기도 하고… 그런 전화가 얼마나 중요한 전화인지 몰라도 제 생각에는 시간을 내어 서로 만난 자리라면 그 만남이 멀리서 편리하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것보다는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번역 작업 중에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누가 걸었는지 확인한 후에 중요한 사람이나 아는 사람이 걸었으면 받고 아니면 무시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 것 확인하고 나면 이미 머리는 다른 곳에 다녀왔기 때문에 스크린을 볼 때는 일종의 작은 재부팅(rebooting)이 일어나야 하거든요. 치타가 달리다가 잠깐 멈춘 것과 같은 치명적인 손실이 이미 일어난 것이지요.
 
전화는 대부분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신자 번호가 어차피 찍히고, 상대방이 메시지를 남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전화는 아예 받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일부 PM들은 별것도 아닌 용건으로 일단 전화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PM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번역가에 대한 존중심이 부족하다고 봐요. 물론 PM이야 빨리 일을 확정 짓고 싶어서 그러겠지요. 하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고, 번역가는 번역가가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업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전화도 안 받습니다. 메시지를 남기면 들어보고 연락해 주어야겠다 싶으면 대신 이메일로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저는 전화를 잘 안 받으니까 일단 이메일로 연락하라고 늘 말을 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점차 저의 의사를 존중해서 전화를 하지 않더군요. (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화를 해대는 에이전시가 하나 있긴 합니다. 제가 이 에이전시와 아직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또 다른 한 에이전시는 정확하게 이런 이유 때문에 관계를 단절했죠. 그런 에이전시와 어떻게 관계를 단절하는지는 아마 다른 곳에서 쓴 것 같은데, 아주 간단히 말하면 단가를 한 30% 올리는 겁니다. 따라오면 전화 시간에 대해 페이를 받아서 좋은 것이고, 안 따라오면 귀찮은 전화가 안 오게 되니 좋은 것이죠.) 아무튼 저는 전화받는 것 싫어합니다. 저는 제 고객들을 고마운 마음으로 대하고 꽤 친절하게 대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꽤 신경질적입니다. 저는 제 시간을 소중히 여기니까요. 그리고 제가 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그걸 대신해 주겠습니까?

 

 
스카이프

 

 
 

 

스카이프를 설치해 두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게 로그인을 해 둔 상태에서는 계속 화면에다 통지를 띄웁니다. 누가 로그인을 했다는 둥, 누가 뭘 요청했다는 둥,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로 주의를 계속 분산시키죠. 그래서 저는 자동으로 켜지는 프로그램 리스트에서 스카이프를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필요할 때에만 수동으로 켜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비딩에 나오는 에이전시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비딩할 때 스카이프 아이디를 반드시 포함시키랍니다. 신속하게 연락하기 위해서라면서요. 전 그런 에이전시랑은 일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종종 스카이프를 사용합니다. 음성통화도 하고 인스턴트 메시징을 주고받기도 하죠. 어떤 문제에 대해 실시간으로 집중적으로 대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그것이 효율적입니다. 물론 그런 스카이프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이메일로 예약을 해서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고 아예 스카이프를 켜 놓기를 요구하는 것은, 그것을 주된 통신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고, 그것은 에이전시가 프리랜서 번역가의 시간을 통째로 소유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연락할 테니 대기하라는 것입니다. 번역가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사람이라도 그것은 기분이 좋지 않은 일입니다. 하물며 번역가는 심각한 집중력을 통해 질이 높은 지적 생산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번역가를 수시로 호출하여 자기가 필요한 것 이런저런 것 물어본 후 끊고 좀 있다가 또 묻고 하는 것은 번역가의 일에 대해 무지하거나 존중감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혹은 PM이 자기 편의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일, 행복한 삶을 유지하려면 그런 에이전시와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웹 서핑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사람의 가장 큰 유혹은 인터넷입니다. 아, 이 무한한 정보와 지식의 바다… 오늘날 번역가는 인터넷이 시장이고 인터넷이 일터이고 인터넷이 번역료를 받는 수단이고, 인터넷이 어학 사전이요 백과사전입니다. 하지만 일을 해야 할 때는 웹상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리서치라고 억지를 부려서도 안됩니다. 물론 때로는 구글에 가서 뭔가를 찾아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을 찾았으면, 그 사이트를 ‘즐겨찾기’같은 것으로 북마크를 해 두고 다음에는 그런 사이트로 바로 가는 치밀성을 보여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분야별 전문 사전이나 전문 사이트들은 다 손 안에 넣어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쓰는 CAT tool인 플루언시(Fluency)는 그 인터페이스 안에서 그런 사이트들에 접근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rebooting(비유적 의미의) 시간과 노력이 절약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것이 제가 Fluency를 좋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일을 하다 창을 최소화하고 나가서 다른 것 하다가 돌아와서 다시 아까 내가 뭘 하려고 인터넷을 찾아보았는지 기억하는 것, 이것은 번역가의 최대 시간 낭비 요소입니다.
 
번역가의 시간, 번역가의 집중력, 번역가의 에너지…
 
그것이 번역가는 가진 모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그것을 스스로 보호해야 합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2 Comments

  1. 번역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작게 틀어 놓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젖소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환경에서 나온 우유가 더 맛있다는 예기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