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io 05. 근황, 사는 이야기

EPISODIO 05. 근황, 사는 이야기 : 잠시 한국에 왔습니다.

 

 

사진 : 1년 만에 온 인천공항

 

 

 ¡Hola! 호미입니다.

 

 중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던 3월 초반에는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7월이나 8, 한 여름이 되면 나아질 거라는 얘기 말입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바이러스가 살기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는 게 그 당시의 근거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아닌 것으로 판명 되었고, 오늘 7 23일에 저는 지금 한국에서 자가격리 2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확진자가 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드리드인천 구간 직항 티켓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한항공이 8월까지 마드리드 구간을 비운항 결정하면서 어쩔 수 없이 대체 항공편을 통해 파리를 경유하여 왔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지낼 때는 거의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 감염의 걱정이 별로 없었는데 막상 국제공항 세 군데를 거칠 생각을 하니 출발 전 날에는 약간 긴장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탄 비행기에 승객이 많지 않아서 동반가족이 없는 한, 1인당 3개의 좌석을 주고 서로 떨어져 앉게 했는데 거의 모든 승객이 그런 식으로 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파리 경유는 특별한 사항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없어서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체크인 할 때에 직원이 말하기를, 코로나 사태 때문에 들고가는 짐이 많은 경우 짐검색 컨트롤에서 불편할 수 있다며 기본 수화물 기준의 무게와 개수를 초과 했는데도 불구하고 공짜로 짐가방을 모두 부쳐줬습니다. 그런데 정작 파리에서 국제선으로 갈아탈 때 검색대를 지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두손 가볍게 인천까지 왔습니다.

 

 

사진 : 인천공항 검역소에서 저에게 붙여 준해외 입국자라는 낙인 스티커입니다.

 

 

 인천공항에서 KTX 광명역, 광명역에서 곡성역, 곡성역에서 격리하는 곳까지 동선이 길었는데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들은 별도의 동선을 따라 공무원과 경찰의 도움을 받아 이동하도록 관리되었습니다. 동선이 너무 잘 짜여 있어서 놀랐습니다. 인천공항에서 관련 앱을 설치하자마자 목적지 관할의 담당 공무원이 지정되고 그 때 부터 바로감독에 들어갑니다. 원래 계획은 가족 집에서 방만 따로 쓸 예정이었는데, 인천에 도착해서 담당 공무원과 통화하니 그건 불가능하다고 갑자기 근처 지정 시설로 보내져서 저는 지금 섬진강 줄기 강물이 보이는 산 중턱 어느 펜션에 있습니다. 곡성역에서는 방호복을 입은 군청직원이 구급차에 저를 실어서 시설까지 이동했습니다. 살아있는 병균 그 자체 취급을 받았습니다. ㅎㅎㅎㅎ 시설에 도착하니 이미 제 신상정보가 적힌 서류 뭉치가 있었고, 다음 날 아침에 코로나 검사를 한 후 당일 오후에 바로 결과를 받았습니다. 스페인에서는 검사 후 결과를 받기까지 2주가 걸린다고 들었는데잊고 지낸 한국의속도를 여기 산속 시골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 지금 내 위치. 여긴 어디인가

 

 

 6월에는 개인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걱정과 불안에 밤새 잠 못 이루던 날 쓴 일기가 6월 중 가장 힘들었던 밤을 상기시켜 줍니다. 난생 처음 겪는 상황 때문에 눈물나게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었고, 서 웹툰 번역을 시작했지만 허무하게 금방 끝이 나 버리고 말았고, 뉴스에서 남의 일처럼 보던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하는 등높은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80년대 생들의 30대 인생사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지금까지 삶에서 가장 무기력한 시간을 겪었습니다. 좌절감 만큼이나 큰 희망을 다시 품으며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매일같이 반복했던 한 달 이었습니다.

 어차피 프리랜서의 삶을 꿈꿔 왔기 때문에 단순하게 집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지내는 생활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러나 직장일을 병행하며 차츰 프리랜서로 전환하기로 계획했던 경제적인 부분은 전혀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통장 잔고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만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족,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고민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달했던 질문이한국이냐스페인이냐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힘들 때 자연스럽게 본인이 원래 있던 곳으로 가는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스페인에 오기 전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대한민국 보통의 30대의 삶, 즉 돈 벌고, 주말에 친구들이랑 나가고, 취미생활하고, 결혼과 육아 등 비슷한 고민을 하며 지내던 시간을 다시 떠올리며어쩌면 이제라도 다시 그 삶을 되찾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마드리드의 삶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이도 저도 죽도 밥도 아니게 되는 상황만 만들게 될 뿐이라는 결론을 만났습니다. 마드리드에서의 삶이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이미 목표가 정해진 이상 제가 하기로 한 일은 해야 하니까요. 사실 어떻게서든 한국에서도 번역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 전문 번역사가 아닌 제가 현재로서 하기로 한 일은 정해진 기간 동안 현지인들과 얽히고 설켜 살면서 스페인어를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로나의 저주를 코로나의 축복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복시키는 힘이 나한테 있을지 한 번 시험해 보는 중입니다. ‘한국이냐스페인이냐,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디에 있든 오늘 뭘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무기력한 날들을 우울하지 않게 보냈던 시간이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원래도 저에게 지겹지 않은 것이 스페인어 공부지만 결국 이런 상황에서도 저에게 가장 힘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위로를 주기 보다는, 무기력하고 불안한 시간을 괴롭지 않게 보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아무래도 한국 사람인지라, 이 나이에 아무도 몰라주는스페인어 공부소속 없이’ ‘혼자서, 스스로하고 있으니 누가 들으면 나를 한심하게 보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그 죽일놈의대한민국의 보통의 30라는 기준에서 말이죠 ㅎㅎㅎ 그렇지만 내가 나 자신을 한심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엄마가 이 말을 들으면 푼수때기라고 등짝 스매싱을 날릴지도…)

 

 돌아보면, 3 13일 스페인 정부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로 집에서만 지내던 일상은 6월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던 마음 가짐이 달라져서 5월 말, 6월부터 고민과 불안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5월 말에 회사로 부터 받았던 통보로 인해 회사로 복귀할 거라는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그 전과 후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돌아갈 곳이 있으니 얼마간은 놀고 먹어도 괜찮고, 오히려 이렇게 쉴 시간이 언제 있겠냐는 생각으로 지냈지만 더 이상 그렇지 못하게 되었죠. 현실적으로 지금 내가 쓰는 돈이 나중에 금방 채워질 만한 상황이, 수입이 있을 거라는 기약 없이 당장 지출만 계속 하는 상황으로 바뀌는 것은 모든 것을 매우 불안하게 했습니다. 내가 의도치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탓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게 제일 쉬우니까요.

 그렇지만 금방 눈을 번쩍 뜨게 해주었습니다. 오히려 이 시간을 회사 다니며 할 수 없었던 것들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불안감이 밀려오는 순간 한 번, 믿음과 희망으로 다시 마음을 다지는 순간 한 번이런 순간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식 교차하지만 동시에 조금씩 제가 할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며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제가 했던 활동들이 공개할 만한 수준의 작업은 아니지만 나누고 싶은 부분이 정리가 되면 블로그에 포스팅 해볼 예정입니다.

 

 한국에는 한달 반 정도 지내다 9월에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과 남동생의 결혼식 때문에 친구랑 가족들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코로나 이전 상황이라면 휴가를 써야 하고, 또 길게 쓸 수 없어 친구 결혼식은 못가고 남동생 결혼식만 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오래 나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코로나 테스트 결과도 음성 판정이 나와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며칠 전 친구와의 통화에서 친구가 저에게 이와중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잘 지내는 걸 보니 장하다, 응원한다고 말해주어서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 뉴스를 통해 정리해고, 파산 등의 소식을 들을 때면 감히 많은 분들이 이 시기를 힘들게 버티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죽으란 법은 없으니 서로 다독이며 응원하며 이겨내기를 바라 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이죠. :-D 

 마지막으로 6월에 상황이 조금씩 풀리면서 다시 일상 공간을 회복하며 여기저기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공유해 봅니다.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호미 en 곡성군, el 23 de julio

*’호미’는 제 성과 이름 두 글자 중 첫글자만 조합한 단어의 알파벳 표기를 스페인식으로 발음한 저의 별칭입니다.

 


 

 

 

호미
호미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스페인어 번역가 꿈나무입니다.

2 Comments

  1. 호미 님, 응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긴 대로,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아야 죽을 때 후회가 없습니다. 옛날에 한국에 ’20대에 해두어야 할 일’ ’30대에 해두어야 할 일’ 뭐 그런 시리즈로 책이 출판된 적이 있는데 저는 읽지도 않았지만 표지 보자마자 확 집어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런 것은 다 사람들을 족쇄에 가두어두는 이데올로기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사는 것은 오직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어머님이 등짝 스매싱 날리시면 누가 그러더라고 하세요.ㅎㅎ) 그리고 프리랜서는 본래 고용자가 없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고객을 만들어내고 그걸로 평생 먹고 사는 사람이죠. 나를 고용해준 사람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세상을 재편하는 거죠. 한국 생활 재미있게 하시고 마드리드 돌아가셔서 뭐든 붙들고 열심히 자신의 길을 뚫어내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 언제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한번 이렇게 힘을 얻고 뚫어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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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