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의 매력과 단점: 통역 이야기 시리즈를 시작하며

잘 모르시겠지만 실은 제가 옛날에 통역을 했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만둔 지 오래 되어서 실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제 통역 얘기를 행복한 번역가 사이트에 연재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일천한 통역 커리어지만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될 만한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연재를 시작합니다.

통역을 그리 오래 한 것도 아니고 지금 계속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 열 번 정도면 이야기가 바닥날 것 같습니다. 통역 분야에 대한 간단한 소개, 한국/한국어와 캐나다/영어 사이의 문화 차이,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번역 분야와의 비교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본격적인 경험담을 시작하기 전에 이번 포스트에서는 통역의 매력과 통역의 단점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통역의 매력

보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제 생각에 통역의 가장 큰 매력은 ‘보람’이 아닐까 합니다. 통역이 필요한 상황은 이런 겁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두 당사자가 어떤 필요 때문에 소통을 해야 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필요는 절실한데 절벽과 같은 언어의 담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죠. 그 때 통역가가 등장해서 두 사람 사이의 언어소통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그로써 두 사람의 필요가 충족됩니다.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지만 통역이 끝나면 늘 양쪽으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듣습니다. 물론 입에 발린 인사일 수도 있지만 진심어린 인사일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것은 통역가가 그 상황을 해결해 주었고, 그 가치가 쌍방 당사자에게 느껴졌기 때문일 겁니다. 

번역도 언어 소통의 역할을 합니다만 통역만큼 현장성이 있지는 않죠. 즉, 번역은 긴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통역만큼 일을 한 번에 해결하고 마무리를 지어주는 보람은 사실 느끼기 힘듭니다. 두 당사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기도 하구요.  

긴장감

그게 무슨 매력이냐 하실 수도 있지만 매력일 수도 있습니다. 통역을 할 때마다 몸에 에너지가 차 오릅니다. 끝나고 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느껴지는 은은한 충족감과 만족감이 있고요. 이런 긴장과 긴장이완의 싸이클은 생활에 리듬감과 활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통역할 때 옷을 대충 입고 다녔습니다만 여자분들은 화장도 아주 예쁘게 하고 다니시더군요. 지나치지 않은 약간의 긴장감은 일을 즐겁게 해 주고 생활을 활력 있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지적 호기심  충족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심리적 동기에는 다른 사람, 다른 문화,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호기심이죠. 비록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전문 지식을 쌓을 수는 없어도 얕고 폭넓은 지식, 상식, 잡식은 많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고요. 통역을 잘 하려면 그런 얕고 폭넓은 지식이 필요한데 거꾸로 통역을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역을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하고 나면 어떤 사람, 상황, 기관의 사정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알게 된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면 안되지만 지적 충족은 확실히 됩니다. (물론 이건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역의 단점

현장에 있어야 한다

이건 세상 대부분의 직업에 해당되는 것이니까 딱히 통역의 단점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번역과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번역과는 달리 통역은 (대부분의 경우) 현장에 통역가가 직접 가야 합니다. 그래서 긴장감도 있고 박진감도 있고 옷을 잘 차려입고 가는 재미도 있긴 하지만 대신 교통체증, 주차, 기다리는 시간 등의 달갑지 않은 것도 많지요.

기술을 이용할 여지가 별로 없다

통역과 번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하는데, 번역은 최근에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쉬워진 측면이 많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쉽고 캣툴도 있고 기계 번역도 이용할 수 있고 협업도 쉽고 프로젝트 관리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통역은 제가 보기에는 한 이천 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 통역가가 앉거나 서서 듣고 말하고 듣고 말하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 IT와 인터넷 환경을 창의적으로 이용하여 생산성, 효율을 올리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단가를 높게 받는 수밖에요. 이런 이유로 통역가가 받는 보수가 많아질지 적어질지는 물론 모르는 일입니다. (유명한 예술가가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만든 작품이 비싼 것처럼 이런 이유로 통역가의 보수가 많아질 수도 있지요.)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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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