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내와 빨래 건조대 사러 나갔다가 날씨가 하도 화창해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드라이브를 겸해서 가끔 가는 공원을 찾아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 한 때를 즐겼습니다.
사람은 참 단순한 것 같습니다. 날씨가 춥고 우중충하면 마음도 위축되고, 날씨가 이렇게 화창하면 힘이 솟고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고… 사람이 얄팍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고, 우리가 그만큼 자연에 깊이 연결된 존재라서 그렇다고 보면 좋겠죠.
저 갈대 무리는 겨우내 저렇게 서로 의지하며 서 있었나 봅니다. 눈도 그렇게 많이 오고 바람도 그렇게 많이 불었는데… 대견해서 한 장 찍어 보았습니다.
이 사진은 조금 더 가면 개 놀이터가 있다는 표지판입니다. 풀어 놓고 개들끼리 마음껏 뛰어 노는 곳입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잘 못나왔을 테니 개들도 좀이 쑤셨겠죠.
놀이터에 채 못 가서 그런 놈 하나를 만났습니다. 주인 허락을 얻어 잠깐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이 놈의 에너지를 좀 느껴 보세요. (화면 하단 왼쪽에 있는 버튼 클릭.)
쏟아지는 햇볕을 좀 받아봤습니다. 햇볕은 은총입니다. 내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은총. 햇볕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참 좋습니다. 저렇게 햇볕을 받으며 앉아 있으면 뭐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햇빛과 비를 악인 선인 가리지 않고 내려 주신다더니, 좀스러운 제 어깨 위에도 따스한 햇볕이 가리지 않고 와 닿아 사랑과 희망을 속삭입니다.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언어 이전의 언어로. 그래도 미욱한 제가 알아듣고 눈물이 다 나려 합니다.
이 공원은 본래 농장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빈 터가 많습니다. 좁은 땅에 살다 이민 온 저로서는, 저런 넓은 빈 땅만 보면 저기에 뭐라도 심었으면, 저기에 뭐라도 지었으면 맨날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이제는 저런 빈 땅 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합니다.
사진 찍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몰래 한 장… 아내는 제 블로그를 절대로 안 보기 때문에 괜찮을 겁니다.
여기는 농장 주인 가족이 살던 집입니다. 참 소박하죠? 지금은 빈 집이지만, 이렇게 큰 땅을 공원으로 기증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 우리도 고마운 마음으로 둘러 보고 갑니다.
Phyllis Rawlinson이라는 할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여기 사셨고 리치몬드 힐 타운에 기증해 주셨다는 내용이 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끝도 없는 공원은 사진기 없이 부지런히 걸으면 한 시간, 사진기 가지고 돌면 3시간이 걸리는 공원입니다.
걷다 지쳐 늘어져 있다가 사진기를 보고 급히 자세 수정. 그래도 지친 표정은 채 감추지 못했네요.
여기는 피크닉 하는 곳인데 그늘도 있고, 고기를(그리고 야채도!) 구워 먹을 수 있는 시설과 화장실이 있습니다.
거기를 지나 숲으로 조금 들어가면 작은 연못들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이렇게 오리를 볼 수 있습니다. 저희 동네에 오리가 왔길래 여기도 지금쯤은 와 있겠다 싶었는데 과연 한 쌍이 저렇게 다정히 놀고 있네요.
여기는 불을 피울 수 있는 곳입니다.
어린 건 뭐든 예쁜가 봅니다. 지금은 풀보다도 작지만 크게 자라겠죠?
작은 개울과 여기 저기 흩어진 작은 연못 몇 개 뿐인데도 저만한 고기가 사나 봅니다. redside dace라는 저 물고기의 개체 수를 늘리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얘기.
겨울의 흔적을 보여 주는 앙상한 나무. 저 나무가 몇 주 뒤면 새싹을 내고 또 몇 주 뒤면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 줄 겁니다. 그래서 봄은 설레는 시간입니다. 시련이 있어도, 마음에 상처가 있어도, 아픔이 있어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 주니까요.
다들 바쁘셔도 짬을 내서 봄을 느끼고 즐겨 보십시오.
사진인 걸 알고 봐도 그림 같습니다.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