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CES 쇼에서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 기능의 하나로 통역 모드(Interpreting mode)를 추가한다고 밝혔습니다.
2020년 2월부터 44개국 언어로 가능한 통역 모드로 구글은 음성 인식 – 번역 – 통역을 연결한 엄청난 기능으로 마이크로 소프트의 코르타나, 아마존의 알렉사, 애플의 시리 등을 제치고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에 의한 ‘실제 사용 가능한 수준의’ 통역을 실현한 첫 회사가 되었습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하고 실제로 제 아내와 통역 모드를 시험해 볼 때까지는 실용성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래의 점만 충족시킨다면 일상생활이나 여행 시 사용하여 전혀 불편하지 않을 정도까지 왔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 구글과 연결해야 하므로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주위의 소음이 없어야 합니다.
- 발음이 정확해야 합니다.
- 문법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 합니다.
- 애매한 표현이나, 의성어나 의태어는 최소로 사용해야 합니다.
통역과 번역으로 먹고사는 저의 입장은 여러분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우선 걱정이 앞섰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성장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인공지능의 발달로 통역과 번역이라는 직업군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여 여러 관점을 검색하고 종합한 결론은…
- 인공 지능에게 출력 방법만 다른 통역과 번역은 같은 과제(Task)입니다. 이것은 구글 어시스턴트의 ‘통역 모드’를 사용해도 ‘번역’ 메시지와 함께 표기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역과 번역의 직업군은 같은 운명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 현재 구글은 전반적으로 안드로이드-크롬 베이스로 돌아가고 있어서 PC의 OS를 독점하다시피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에서 원활하게 사용할 수 없고 업무의 실용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결국 인공지능의 통번역 실용화가 가능하도록 각 플랫폼의 통합 또는 호환성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기계적이거나 일상적인 언어의 번역과 통역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일반 통역이나 번역 기회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 그렇다 하더라도, 인공 지능의 출현으로 인해 통역과 번역의 직업군이 사라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사회나 문화, 경제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인공 지능의 언어 소통 기능의 발달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더 많은 컨텐츠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므로, 이미 영화계나 음악계에서 이미 경험한 것과 같이, 번역과 통역이라는 직업군에 대한 전문성을 심화하고 그에 관한 필요 가치를 더 키우리라 예측합니다. 물론, 지금과는 많이 달라진 직업 특성을 지니게 될 것이니 그에 맞는 자격과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에 관해 조금 생각해 보자면…
2001년에서 2005년까지 미국의 TV에서 연재되었던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 시리즈’에서 나온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가 언어학자(linguist, 통역+번역)의 역할을 수행하던 호시 사토(Hoshi Sato)입니다. 린다 박(Linda Park)이라는 한국 배우가 맡았던 이 배역의 극 중 역할은 우주로 모험을 떠나게 된 인류 최초의 탐험 우주선에 동승하여 앞으로 조우하게 될 외계인과 의사소통을 돕는 것입니다. (사진은 Paramount Pictures의 스타트렉 시리즈의 에피소드에서 빌려왔습니다)
극 중에서 호시는 항상 통역기를 들고 다닙니다. 그것은 2001년 시리즈 제작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인공 지능 통-번역기입니다. 이 통-번역기는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수많은 외계 언어를 통-번역할 뿐만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언어도 짧은 시간 안에 스스로 연구하여 어느 정도 데이터를 계속 입력해주면 통-번역의 정확성이 점점 올라갑니다. 이런 엄청난 장비가 있는데 왜 언어학자가 필요할 것으로 설정했을까요? 단순히 장비를 운용할 기술자에 불과한 걸까요?
호시의 임무는 단순한 언어 소통을 넘어서 외계인의 문화와 전통을 연구, 관찰하고 선장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정보를 보고하는 것이었죠. 이 시리즈의 시간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130~150년 정도 후의 미래입니다. 미래 기술 예측으로 유명한 스타트렉 시리즈가 왜 언어학자를 극 중 중심인물 중 하나로 지정했을까요?
그것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의사소통과 그에 따른 의사 결정의 주체가 항상 인간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고’와 ‘판단’을 도와줄 정보를 제공하는 기계는 보조의 기능이고, 그 정보를 취합해서 결정에 필요한 가치있는 근거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역할로 남는다는 것이죠.
인공 지능을 갖춘 로봇 셰프가 아무리 완벽해도 인간의 미각을 갖추지 않고는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낼 수 없고, 기억의 맛을 재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미래의 요리사라는 직종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음식 제조를 로봇 셰프에 넘기고 새로운 메뉴 개발과 실험 등에 더 치중하는 직종으로 바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인공 지능이 발달해도 인간은 인공 지능이 ‘다른 모든’ 프로그램을 스스로 짜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란 직업군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프로그래머의 작업을 도와 정확성과 효율을 높히는 방향으로 인공지능의 활약이 펼쳐질 거로 예상합니다.
결국, 번역가와 통역사도 일정 기간을 거쳐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언어 전문가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인공 지능의 언어 소통 기능의 추가와 발달로 번역가와 통역사의 역할은 기존과 많이 달라질 것인데, 그들이 손쉽게 해낼 언어의 기계적/반복적 기능보다는, 대화에 참여하는 각 개인의 유기적 환경 전반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훈련을 계속해야 언젠가는 다가올 변혁에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 일을 시작한 후 기계 번역 품질의 발전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통적인 번역가 직업의 마지막 열차 칸에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통번역가뿐만 아니라 인공 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군이 대단히 많습니다. 창작 분야조차도 인공 지능이 언젠가는 점령해가겠지만, 그래도 인간이 나름대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창작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번역가 길드도 창작 쪽에 힘을 계속 기울이시길 부탁드립니다.
동감입니다. 번역가 길드의 프로젝트에 ‘리믹스+연도’라는 분류룰 만둘었고 가능한 모든 번역 작품에 개작 상품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통번역가라는 직업군은 비교적 근대에 들어 생겨 역사가 짧은 면도 있습니다. 존재했던 기능이지만 지금과 같은 별도의 직업군은 아니었죠. 역사를 보면 언어를 막론하고 지금과 같이 전문적인 통번역가가 있지는 않았고, 언어 능력이 뛰어난 지식인이 그 역할을 해오다가 문화/경제의 교류가 폭증하며 그에 필요한 숫자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직업군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통번역가라는 직업군에 대한 관념을 서서히 깨부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행번 길드의 시도들이 지식 상품의 제작과 소비의 패턴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요.
얼마전 읽었던 재밌는 기사가 생각이 나네요. 이집트에서 커다란 유적을 발굴하다 보니 벽면에 고고학자의 눈에 익숙한 상형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풀어내기가 힘들어 고대 이집트어 전문 언어학자를 초대해 조사해 본 결과, 그냥 말도 안되는 그림들을 나열한 의미가 없는 짝퉁이었다고 합니다. 이집트 문명의 후기에 돈 많은 사람들이 왕들을 흉내내어 그런 유적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었습니다. 당시에 제대로 된 지식인을 고용하는 것은 매우 비쌌다는 얘기고 그만큼 그들이 대접을 받았다는 증거겠지요. 문명의 흥망성세도 역사처럼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