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들은 어떻게 어학의 달인이 되었을까?

글쓴이: 일본어 번역가 JB

 == 서평 ==

예전에 어떤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라온 질문 하나를 보았습니다. 세세한 내용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일본에서 몇 년을 살았고 일본어 능력시험 2급 자격증도 있는데 번역일이나 통역일을 할 수 있나요?’ 이런 식의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번역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었는지, 번역 실력과 언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면, 이번에 읽은 이 책을 소개해 주고 싶습니다.

처음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어학의 달인’이라니, 너무 자신만만하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읽은 후 다시 생각해 보니, 책 속에는 그야말로 ‘어학의 달인’들만이 줄 수 있는 어학 능력 향상 기술과 학습의 기술, 또한 번역사와 통역사로서의 경험도 한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처럼 친숙한 언어의 통역사들 뿐만 아니라 가까이서 접하기 어려운 독일어나 스페인어, 러시아어와 같은 다양한 언어 통역사들도 등장합니다. 언어가 가지각색인 만큼, 통역사들의 고충과 언어 공부법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들이는 중이며, 앞으로도 들여갈 통역사들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외국에 거주하는 중이며 인터넷도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지라 요즘 유행어에 딱히 민감하지 않은 저도 알고있는 유행어(?)가 있습니다. 바로 ‘팩폭’이란 말입니다.(리뷰를 쓰고 난 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알게 된 것인데, 팩폭이란 단어도 유행한 지 한참 된 모양이더군요…) 어쨌든, 영어 통역사이자 교사인 한형민 선생님은 ‘팩폭’을 연타로 날려 주십니다. 그 중 ‘몸무게 120kg, 키 165cm인 남성이, “나는 다른 부분보다 허벅지만 좀 가늘어졌으면 하니 허벅지 줄이는 운동을 해야지”라며 매일 허벅지 운동을 하면 허벅지만 줄어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 라는 비유가 와 닿는군요. 제 주변에도 ‘전 리스닝만 좀 모자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들려주고 싶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좀 매정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귀를 기울였을 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또한 많이 써 두셨습니다.

다른 통역사들의 이야기에도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읽다 보니 제가 공부했던 방법과 유사한 점도 많이 있었죠. 예를 들어 미드의 대사를 외워 나중에 사용해 본다든가, +1 단계로 공부하기, 다양한 콘텐츠 활용하기 등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제가 만난 어떤 미국인은 자신이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어가 그 중 하나라고 하여 대화를 일본어로 나누어 보았는데, 프리 토킹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기본 인사와 어느 정도의 일상 생활용 대화만 가능한데도 어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하다니, 한편으로는 그 자신감이 부러웠습니다.

겸손이 미덕인 우리나라의 외국어 학습자들 중 어떤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이상하게도 어떤 분야에 대해 지식이 별로 없을 때 사람들은 더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그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갖고 있던 자신감은 쪼그라들게 되고 말죠.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은, 러시아어 통역사인 정승혜 선생님 쓴 것입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부어대는 느낌이 들어도, 그것이 외국어다.’ 외국어 학습을 시작한 지 좀 된 학습자들은 초반에 가졌던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과 열정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초급은 벗어났으나 더 이상 실력이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처음에 세웠던 목표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지도 모르죠.

그런 분들이 이 책을 읽어 본다면, 저자들의 공부법과 경험을 간접 경험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학습법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한 저자가 쓴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좋겠지만, 책 한 권을 읽은 후 같은 직업군에 종사하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과 경험을 얻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물론 통번역사 지망생이나 현재 통번역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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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One comment

  1. 오, 한형민 선생님의 저서군요. 그 분의 온라인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실력이 뛰어난 국내파이시죠.. 저도 구입해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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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