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Place Like Home, No Place But Home

저희 부부는 올해 초 어느 눈 내리는 날에 온타리오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 온 날

몇 년 동안 살기 좋은 곳을 물색한 끝에 동네 크기, 집값, 기후와 환경 등을 고려하여 정한 곳이죠. 저희 부부의 삶에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는 이사였지만, 그 중 상당히 중요한 것은 아내의 오랜 소원인 ‘뒷마당 텃밭’과 ‘넝쿨장미’였습니다. 그래서 뒷마당이 널찍한 집을 골랐습니다. 그래도 본래 계획은 겨울에는 집안 정리를 하며 지내다가 올 봄부터는 이 집을 전진캠프로 삼아 남부 온타리오의 크고 작은 모든 마을과 도시 구석구석으로 다 여행을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여름에는 친구와 함께 멀리 PEI 다녀올 계획도 세워두었고요. 텃밭은 일단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해서 조금씩 확대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빵!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한동안 뉴스에 빠져 지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저희 동네는 물론이거니와 캐나다 전체가 다 폐쇄된 상태였습니다. 여행은 물건너간 지 오래되었고 심지어 동네의 작은 공원과 산책로마저 모두 폐쇄된 상태라,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일도 커피숍이나 도서관에 가서 하는 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아주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 번역이란 직업은 어차피 온라인이라 일이 줄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르긴 하지만 다른 번역가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번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그러니 하루 종일 하는 일이 (말이 우습지만) 일입니다. 눈 뜨면 일 말고는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사이트 개편과 길드 창설도 진도가 잘 나가긴 했습니다. 한 한달 지나면 그런 생활에 적응이 좀 될 줄 알았으나 적응은커녕 주리가 더 틀립니다. 책도 질리고, 넷플릭스도 질리고, 만화도 질리고, 실내 운동도 질립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 짜잔~ 팬데믹의 들에도 봄은 오더군요. 눈이 좀 녹으면서 저희 부부는 본격적으로 집 수리, 집 단장, 집 가꾸기, 집 청소, 집 예뻐하기 등등(다 비슷한 말이지만)에 집중했습니다.

골동품에 가까운 궤짝에 페인트 칠을 했더니 그럴 듯한 가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정신 줄 놓고 멍하니 지내거나, 내가 어찌할 수도 없는 일에 안타까워하거나, 쓸데없이 화를 내며 지내거나, 맥주 때문에 복부지방이 늘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사는 수밖에 없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조금씩 하려던 뒷마당 텃밭 프로젝트를 좀 크게 벌여보기로 했습니다. (사재기가 아주 잠깐 있다 사라지긴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식료품 공급도 조금은 걱정이 되던 터라…

우선 꽤 넓은 뒷마당을 어떻게 구획을 지을지 의논했습니다. 자료도 많이 찾아보고 아내와 의논을 많이 했습니다. (실은 제 의견도 좀 들어갔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고 거의 전적으로 아내가… ㅠㅠ) 암튼 현재 구조와 햇볕의 방향을 고려해서 뒷마당 개편의 큰 틀을 짜고, 온라인으로 몇 가지 물품을 주문하고 외바퀴 손수레(정말 유용했음)와 땅 파는 기계(쓸모없었음)도 하나씩 사서 본격적으로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돌 골라내기
민들레와의 전쟁!

씨앗을 준비합니다. 그 동안 모아둔 것, 온라인쇼핑과 curb-side pickup으로 산 것을 모아 싹을 틔우려고 애를 씁니다. 씨앗아, 제발…

실내에서 싹 틔우기
창가에서 햇볕받고 자라는 귀염둥이들

목련 하나, 라일락 4개, 블루베리 3개, 라벤더 2개… 군대에서 땅 판 이래로 이렇게 땅을 많이 판 것은 처음입니다. 벌써 나무를 10그루나 심었고, 큰 화분에 심긴 식물도 2개를 심었으니 큰 구멍만 12개를 팠네요. 그래도 얼핏 보면 별로 표시도 안납니다.

이건 블루베리 나무
이건 Korean dwarf lilac이라는 건데 상표가 Miss Kim입니다. ㅎㅎ
이건 하얀 목련 나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까졌습니다.

어부의 후손인 저는 농사에 익숙지 않아 기진맥진 죽을 지경인데, 농부의 후손인 아내는 도무지 지칠 줄을 모릅니다. 결국은 아내가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본래 계획은 아내가 하고 힘든 일은 제가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계획도 아내가 하고 힘든 일도 아내가 하고 저는 그저 구덩이만 판 셈입니다.

남편이 자전거 타고 놀러나간 사이에도 쉼 없이…
데크 앞에도 꽃밭을 만들었는데 절반의 성공. 뒷 줄 아이들이 영 비실비실… Damn it, grow!!!
옆집 앞마당에서 저희 뒷마당으로 장거리 이사를 온 식물들(이름이 뭐라더라…)

그래도 제가 arbor(덩굴 식물이 타고 올라가도록 만든 것)라는 것도 만들어(조립) 뒷마당 한 가운데 세웠습니다. 설명서에는 조립과 설치에 30분 걸린다고 되어 있는데 둘이서 4시간 동안 일해서 겨우 마쳤습니다. 전기 드릴까지 동원해서요.

 
가장 뿌듯한 순간!

그런데 나중에 보니 중간 부분을 잘못 끼웠더군요. 그걸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길 간절히 기도했는데 결국 어느 날 발견해서 다시 하라고 합니다. 아직은 이런저런 궤변(본래 디자인이 저런 거다,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가니 더 역동적이다 등등)을 늘어놓으며 버티고 있는데 제가 생각해도 논리가 좀 빈약합니다. 결국 “밥 안줘!” 하고 협박하면 그때는 하는 수 없이 해체해서 다시 조립해야죠. ㅠㅠ

뭐가 잘못되었는지 보이시나요?

농사. 이건 아내의 몫입니다. 팬데믹으로 온 세상이 흉흉한데 아내는 집안에서 각종 컵과 종지와 빵 굽는 틀에 씨를 심어 싹을 틔웁니다. 시큰둥하던 저도 막상 싹이 나니까 관심과 애정이 많이 가더군요. 저렇게 집안에서 키우다 기온이 좀 높은 날에는 뒷마당 데크에 내다 놓고 바깥 공기를 쐬게 합니다. training이라고 한답니다. 식물도 훈련을 받아야 하는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트레이닝’ 중인 어린 것들
얘들도 훈련 중…
바람 쐬러 나온 토마토

이제 실제로 밭에 심을 차례. 몇 날 며칠을 땅을 일구어 잔돌을 골라내고 퇴비를 섞어 넣은 후, 평평한 데 심을 것은 평평한 데 심고, 봉긋한 둔덕에 심을 것은 흙을 북돋아 저렇게 높은 데 심습니다.

식물들, 드디어 밭에 심기다! 저건 아마 파와 청경채일 겁니다.

그런 후에는 아내는 혹시라도 밤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까 노심초사 걱정합니다. 그것 반만이라도 남편 걱정 좀 하지! 하려다가 식물에 질투하는 제가 스스로 한심해서 입을 다물고 맙니다. 혹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어쩔거냐고 물었더니 텐트같은 걸 쳐서 덮어줘야 한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절대로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제가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드디어 아마존에 주문한 keyhole raised garden bed라는 것이 도착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뒷마당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집안 음식물 찌꺼기로 컴포스팅을 해서 식물을 키우는 아프리카식 생태적 농사법이라고 합니다. 저걸로 상추와 깻잎 등 음지식물들을 키운답니다. 하지만 이것도 만드는 과정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조립 후에도 흙과 그 외의 많은 것을 층층이 섞어 넣어줘야 해서… 

흙과 잔가지, 카드보드 박스 등을 층층이 넣어야 한답니다.

허리 아파서 저건 도저히 다 못하고 일단 하루 휴식. 온 몸에 근육통이… 그래도 저것만 하면 힘든 건 일단 끝나겠지 하는 희망에 다시 빨리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5월 22일. 아, 오늘부터 저희 동네 공원을 다시 열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읽었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 다른 마을로 여행은 못해도 동네 산책로만 돌아도 2시간은 걸리니까 운동은 그것으로 땡입니다. 이제 이 텃밭은 아내에게 맡기고 저는 다시 바깥으로 나가야겠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 흉흉한 시기에 저는 뒷마당을 가꾸고 뒷마당은 제가 우울하거나 절망하거나 미치지 않도록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그까짓 식물, 우리 부부가 여름 내내 가꾸어도 사실 시장에서 사면 50불도 안 될 겁니다. 그동안 뒷마당에 들인 엄청난 시간과 수월찮은 비용을 생각하면 크게 밑지는 장사입니다. 하지만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것을 저희 부부는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팬데믹 동안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틈만 나면 나와서 땅과 씨름하다 보니 팔, 다리, 어깨, 허리에 근육이 생기고 마음에는 보람과 자부심이 차오릅니다.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이 정원과 함께 견디어볼랍니다. 

오늘, 조용한 토요일 아침에 뒷마당에서…
직접 만든 아보(아직 안 고쳤음) 아래서 행복한 남자

꽃밭에 뿌린 씨앗들은 과연 싹을 잘 틔워줄지, 아보 밑에 심은 넝쿨장미가 잘 자라줄지, 한눈 파는 사이에 혹시 민들레가 다시 왕창 자라지나 않을지, 다람쥐 녀석들 때문에 과연 블루베리와 토마토를 한 알이라도 먹을 수 있을지, keyhole raised garden은 과연 의도한 대로 퇴비생산이 잘 될지 아니면 너구리들의 식당이 될지 사실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얼굴이 타고 손바닥이 까지도록 일을 하는 과정 자체에서 저희는 이미 보상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개고생(!)을 하려고 이 큰 뒷마당을 산 겁니다. 비록 집밖에 나갈 곳이 없어서 벌인 대공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땀 흘린 만큼 여기가 과연 내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집 만세! 우리 뒷마당 만세! 우리 텃밭 만세!

 

[덧붙임]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독자도 많다는 걸 제가 자꾸 망각합니다. 그래도 제목을 번역하면 맛이 없어져서(잘 번역할 자신도 없고…) 그냥 설명을 덧붙입니다. 영어 격언에 “There is no place like home.”이란 것이 있는데 세상 어디에도 자기 집만한 곳은 없다는 말이죠. 줄여서 “No place like home”이라고도 합니다. 뒷 부분(no place but home)은 저렇게 줄인 말에 이어 붙여서 말장난을 한 겁니다. 영어에는 운율을 맞춘 저런 말장난이 많은데, 앞에 한 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코믹하게 뜻을 뒤틀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스트 마지막에 있는 “비록 집밖에 나갈 곳이 없어서 벌인 대공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땀 흘린 만큼 여기가 과연 내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문장의 느낌을 영어 제목으로 표현해본 겁니다.

[7월 중순 업데이트]

어린 식물들을 겨우 심은 상태에서 쓴 포스트라서 나중에 업데이트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예상과는 달리 여름이 되었는데도 뒷마당이 맨날 바뀌는 바람에 적절한 시점을 잡지 못해 어느새 7월 중순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다들 잘 자라주어서 무성/풍성/푸짐/넉넉한 뒷마당이 되었습니다. 이 사진들이 (무슨 종류든) 씨앗을 심는 모든 분들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아보는 결국 다시 작업해서 제대로 만들었고 거기에 나팔꽃과 장미가 열심히 감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봄에 예뻤던 가장자리 흰 꽃들은 지고 다소 초라해졌지만 대신 다른 꽃들이 열심히 자라서 꽤 풍성한 꽃밭이 되었습니다. 태양광 등을 꽃아두어서 밤 되면 상당히 운치가 있습니다.

이건 근대인데 이미 여러 번 수확했습니다.

토마토가 어마어마하게 크게 자랐습니다. 지금까지는 화분에서만 키웠는데 올해는 땅에 심으니까 아무래도 잘 자라나 봅니다.

나팔꽃.

릴리.

상추도 벌써 여러 번 수확해서 먹었는데도 금방 폭발할 듯이 잘 자랍니다. 

이건 열무인데 김치를 담아서 이번 여름 폭염 동안 냉면을 잘 먹었습니다. 이것도 여러 번 수확했는데 여전히 꽤 풍성합니다.

이건 호박입니다. 한국에서 보는 큰 호박은 아니고 주키니라는 길쭉한 호박인데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 밑에 아주 실한 호박이 몇 개 달려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하나 땄습니다. 저울로 재어보니 824그램입니다. 시장에서 산 주키니 몇 개를 냉장고에서 꺼내 달아보니 평균 200그램 정도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놈을 기른 셈입니다.  아내는 신이 나서 이 사진을 사방에 뿌리고 있습니다. ㅎㅎ

정원이 쉴 새 없이 변한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한 말입니다. 아직도 자리를 찾지 못한 식물들이 화분에서 자라고있습니다. 조만간 어느 구석에 심기겠지요. 아마 산딸기 같습니다.

저건 저희가 심은 건 아니고 본래 있던 식물인데(이름 모름 ㅠㅠ), 음지에 조용히 있더니 며칠 전에 갑자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졸고 있는 강아지. 그 밑에는 요가하는 개구리 한 쌍과 사이 좋은 고슴도치 한 쌍.

다람쥐 한 쌍, 새 한 쌍. 출처불명의 골프공 하나. 

 

 

저희 정원에 자주 오는 녀석인데 오늘은 아침부터 늘어져 쉬고 있네요. 봄에 뿌리 식물의 뿌리를 많이 파먹은 녀석으로 의심되어 아내는 저 녀석을 상당히 미워합니다. 밭 일구다보면 갑자기 복숭아 씨도 나오고 심지어 땅콩도 나오고 하는데 다 저녀석 짓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One comment

  1.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렀는데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번역 초창기 시절, 우연히 검색으로 알게 되어 종종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코로나 이후 번역 일감이 거의 끊기기도 했고, 회의감이 들기도 해서 번역 업계를 떠날까 하다가 초심으로 돌아가 불어와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곳에 오니 뭔가 신선하네요! 자주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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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