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번역가의 생활을 혁신해 봅시다

우선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전 무지하게 재미있는데 제 아이들은 재미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재미없을 가능성도 열어 두겠습니다.)

이야기 1

제정 러시아 때 수도를 방문한 어느 외국인이 보니 공원 벤치 옆에 군인이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왜 지키고 서 있는지 몰라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조금 있으니까 다른 군인이 와서 교대 의식을 하고 이어서 지키더랍니다. 도대체 저 공원 벤치가 얼마나 중요하길래 저렇게 군인들이 와서 지킬까 하고 궁금해진 이 외국인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군인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저 아주 옛날부터 그렇게 해 왔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작정하고 조사를 해 보았더니(어떻게 했는지는 모름), 일의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오래 전에 황제가 이 벤치 앞을 지나갔는데 그때 마침 그 벤치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황제가 주위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페인트 칠한 것을 모르고 거기 앉으면 곤란할 테니 누가 좀 지키고 서 있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군인들이 지키기 시작했는데, 페인트는 마르고 그 세대 사람들이 다 죽은 후에도 군인들은 계속 와서 벤치를 지켜왔던 것입니다.

이야기 2

유럽의 어느 오래된 마을의 성당에 외지인이 방문을 했는데, 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전에 그 성당의 지도자들이 고양이를 한 마리 데리고 와서 성당 문에 매어 두고는 미사를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방문객은 그 이유가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는데 역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저 매우 거룩한 종교적 전통의 일부이니 질문도 하지 않고 대를 이어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외지인이 조사를 해 보았더니(어떻게 조사를 했는지는 역시 모름), 일의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오래전에 이 성당에 소속된 어느 나이 많은 신부님이 고양이를 길렀는데, 미사를 드리러 갈 때 고양이가 자꾸 성당에 따라 들어오니까 아예 데리고 나와서 성당 앞에 묶어 놓고 미사를 드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신부님도 고양이도 다 세상을 떠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고양이를 구해다가(?) 묶어 놓는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이야기 3

어느 집에서 엄마가 닭 요리하는 것을 어린 딸이 지켜봅니다. 그런데 엄마는 닭을 세 토막으로 잘라 솥에 넣었습니다. 딸이 왜 그렇게 닭을 잘라서 넣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한 번도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그저 외할머니가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 왔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딸은 외할머니에게 물어보았는데, 외할머니 역시 엄마와 똑같은 답을 했습니다. 모른다고, 자기 ‘엄마'(외 증조할머니)가 그렇게 하셔서 자기도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의 외증조할머니가 아직 살아 계셔서 그분에게 물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이 끔찍해서 그림은 생략)

답은 이랬습니다. “옛날에는 큰 솥이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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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들은 여기저기서 읽고 듣고 한 것들을 제가 모아 본 것인데, 혼자서도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는 습관대로 전통대로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고 사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사는 것인지 전통이 나를 타고 사는 것인지 모를 때도 있지요. 사실 전통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이유는 아마도 훌륭하거나 적어도 불가피한 것이었을 겁니다. (황제의 친절한 배려, 고양이에 대한 신부님의 애정, 작은 솥으로 닭을 요리할 필요 등)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전통은 낡은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전통을 바꾸거나 심지어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얘기가 전통으로 가면 거창해지지만 그런 거창한 얘기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고요, 우리 삶의 작은 부분에 대해서도 “이건 왜 이렇게 해야 하지?” “왜 다들 그렇게만 하지?” “나는 왜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삶도 위의 이야기들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번역 일과 관련해서도 저는 늘 의심하고 생각하고 궁리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군요. 바쁘게 지내다 보면 그런 것 생각할 시간이 없죠. 생각한 것도 잊어버리고 지나가고 다음에 그런 상황이 다시 생기면 그때에야 “아,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었지…” 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하는 일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 좀 본격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정해 두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으로요. 이제 한 2년 정도 실천해 왔는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늘 열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계기를 통해서 나름대로 불필요한 것은 없애고, 방향을 재조정하고, 과도한 것은 줄이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고 해 왔습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 제가 일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일을 즐기면서 해 나갈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해 왔습니다. (고백하자면, 이 토요일 오전 ritual을 늘 실천에 옮기지는 못 합니다. 겨울에는 그런대로 지켜왔는데, 여름이 되니 토요일만 되면 바깥에 나가고 싶어서… 그래도 크게 보면 대충 토요일 오전은 이렇게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생긴 일들이 꽤 많지요. 어떤 에이전시를 갑자기 자르기도 하고, 코스를 하나 만들기도 하고, 무슨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기도 하고, 피드백 받는 방법을 바꾸기도 하고, 어떤 종류의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기도 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해서 파일 저장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도 하고, 심지어 저의 전문 영역을 바꾸거나 그 안에서 미세한 조정을 하기도 하고, … 뭐 그런 변화들이 생겨왔지요.

또 하나 제가 지켜 나가는 전통(?)은 매달 1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전통을 깨기 위한 전통을 만들었네요.) 저는 여기에 이름도 붙였습니다. ‘Professional Appreciation Day’라구요. 좀 그럴 듯하죠? (토요일 오전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이름을 하나 붙여야겠습니다.) 취지는 번역가로서 살아가는 것의 장점을 마음껏 누리면서 일을 함으로써(이 날은 주말이 될 확률이 많지는 않으니까 대개는 일을 하죠) 스스로 이 일에 대한 만족감과 감사한 마음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는 좀 창피해서 여기 적기가 그렇습니다. 각자 알아서 상상하시면 됩니다.

아무튼, 여러분도 이런 작은 장치들을 나름대로 마련하셔서 그냥 일에 따라 삶이 auto-pilot으로 마구 흘러가지 않도록 멈추는 시간,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 그리고 바꿀 것을 바꾸어 나가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2 Comments

  1. 번역일을 떠나서 제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 저는 1번 이야기 읽고 한 10초 멍하니 있다가 터졌습니다.. ㅎㅎㅎ
    다른 사람한테 예기해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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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