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집중력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들

크고 중요한 문제는 보통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을 찾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해결책이란 아예 없는 경우도 많은데 그것은 사람마다 필요한 해결책이 다르거나 또 시간에 따라 필요한 해결책이 자꾸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그냥 포기하기보다는 작은 해결책들을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작은 해결책이 적어도 나에게는 근본적 해결책에 가깝다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으니까요.

 

오늘은 집중력 향상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작은 실용적 해결책 몇 가지를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뭐든 제가 체험하고 실천하는 것만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글에서는 예외적으로 제가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제시해 보겠습니다.)

 

 

공동 사무실

 

coworking_space_in_berlin

 

번역가의 최대 장점이 집에서 나 하고 싶은 모습으로 나 하고 싶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인데 왜 굳이 임대료까지 지불하면서 사무실을 낼까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집에서 일합니다. 그러나 집중력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어느 정도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전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보다는 어느 정도의 소음이 있는 커피숍 같은 곳에서 집중이 더 잘 되는 역설을 여러분도 체험해 보셨을 겁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정말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머릿속 소음도 포함)을 백색 소음이 어느 정도 덮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저 혼자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고 집중이 필요할 때마다 매번 커피숍 같은 곳에 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잠깐 동안 집중은 잘 되겠지만 실은 불편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요. 이런 이유로 번역가들 중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사무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놀이터 같은 산만함은 피하면서도 적당한 산만함으로 긴장감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누구와 사무실을 같이 쓰는가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번역 파트너(혹은 번역 파트너는 아닌 다른 번역가)와 함께 사무실을 쓰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사무실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둘 다 장단점이 있겠지요. 전자의 경우는 서로 이해하기 쉽고 급한 경우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실현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아주 우연히 다른 번역가가 가까이 사는 것을 발견한다면 다르겠지만요. 후자의 경우는 사무실을 같이 쓰는 사람들이 젊은 기업가들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 받으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사무실을 공유한다는 번역가를 두 명 알게 되었는데 그 분들의 말로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는군요.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무실 사용료가 고정적으로 나가게 되고 매일 이동 시간이 걸리는 큰 단점은 있겠지요.

 

 

스카이프로 만드는 (유사) 공동 사무실

 

Pseudo co-working office using Skype

 

공동 사무실을 통해 아침 인사도 하고 가끔씩 잠깐 잡담도 하고 싶지만 임대료가 아깝고 근처에 딱히 사용하고 싶은 사무실이 없거나 괜찮은 사무실이 있다 하더라도 같이 쓰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스카이프를 통해 그런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근무 시간을 정해 놓고(약 3-4 시간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카이프를 하는 것이죠.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스카이프를 예로 든 것이고 구글 행아웃 등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 컨퍼런스 콜 기능을 이용하면 서너 사람 이상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약속된 근무 시간이 되면 각자 로그인해서 잠깐 인사를 나누고 그 후로는 그냥 스피커를 틀어 놓고 각자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타이핑하는 소리 등이 들릴 것입니다. 일하다가 잠깐 (옆사람에게) 말을 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전화 통화를 길게 하면 “나가서 통화해!” 하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겠지요. ㅎㅎ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규칙을 정해서 다양한 실험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구 반대편 한국에 있는 번역가들과 이렇게 한 번 해 보면 얼마나 멋질까 가끔 상상해 봅니다. (나중에 실천할지도 모릅니다.)

 

 

오피스 메이트(동물)

 

dog

 

같은 사무실에 누가 있어서 긴장감과 집중력을 높여주는 것은 괜찮지만 그게 누구든 사람이라면 지나치게 산만하거나 불편하게 느낄 가능성이 언제나 있지요. 사실 저도 아내와 사무실을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일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면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면 어떨까요? 번역가들이 쓰는 개인 블로그를 방문해 보면 개를 오피스 메이트로 데리고 일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고양이도 있고요. 개는 적당하게 주의를 산만하게 하면서도 사람만큼 격식과 예절을 기대하지 않으니까 편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또, 개는 자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산책과 운동을 하게 해 주죠. 이 정도면 번역가에게는 상당히 괜찮은 오피스 메이트입니다. 음… 번역방개 삼년이면 외국어를 좀 하게 되는지 궁금해집니다.

 

 

백색 소음

 

white noise

 

모르는 사람도, 다른 번역가도, 개도, 누가 스카이프로 말 거는 것도 다 싫다면 아예 나만의 백색 소음을 틀어놓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소음은 부정적인 함의가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백색 소음은 있는 듯 없는 듯한 소음이고 종종 리듬이 있는 소음이어서 집중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래 저는 멀티태스킹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백색 소음을 듣는 것은 “태스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다소 억지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물론 백색 소음도 늘 있으면 괴롭겠지만 특정 종류의 일을 할 때 잠깐 동안 듣는 것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는 백색 소음을 제공하는 사이트가 넘쳐납니다. 물 흐르는 소리, 새 소리, 비오는 소리, 바람 소리, 천둥 소리(안 그럴 것 같은데 천둥 소리는 놀랍게도 마음을 정화해 주는 효과가 있음), 카페의 사람 소리(문 여닫는 소리도 포함) 등 별의별 백색 소음이 다 있습니다. 물론 저런 것은 엄밀한 의미의 백색 소음은 아니지만 확대된 의미의 백색 소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그것도 상당히 괜찮은 백색 소음입니다. 옛날에는 백색 소음도 광고 때문에 많이 꺼렸는데 요즘은 AdBlock으로 광고를 차단했더니 백색 소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즐겁습니다. (참, 아직 AdBlock을 설치하지 않은 분들은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 다른 브라우저는 몰라도 크롬에서는 완벽하게 작동하는 무료 앱입니다.)

 

 

규칙성이 주는 몸의 리듬

 

running-on-the-beach

 

집중력은 정신력에서 올까요, 아니면 체력에서 올까요? 물론 몸과 마음이 서로 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런 질문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만, 그래도 누가 꼭 집어서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체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단기적으로야 어떤 상황에서든 집중을 할 수 있겠지만 번역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항상 정신력에 의지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저절로 되는 것도 있어야지요. 아니, 대부분은 저절로 집중이 되는 시간에 일해야지요. 그런 면에서 자신의 리듬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이나 아침에, 어떤 사람은 오후에, 어떤 사람은 저녁에 집중이 잘 됩니다. 또 사람마다 특별히 집중이 잘 안되는 시간도 있습니다. 저는 저녁에 집중이 제일 잘 되고 오후에 집중이 제일 안 되는 편입니다. 그래서 주로 오후는 낮잠, 운동, 산책, 쇼핑, 오락 등으로 채우고 또 몸으로 하는 일도 주로 오후에 합니다. 오전과 저녁에는 집중력이 좋으니 일을 하는 편이고요. 또 일도 어느 정도의 집중력만 있으면 되는 일이 있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은 어차피 오래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고려해서 일을 안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저런 요소들을 고려해서 일을 해 나가다 보면 어느 정도 몸이 따라 줍니다. 즉 평소에 집중해서 일을 하는 시간이 되면 몸도 어느새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또 평소에 긴장을 풀고 쉬는 시간이 되면(그리고 적절한 신호를 몸에게 주면), 그 때까지 에너지를 팍팍 공급해 주던 몸이 스르르 힘을 뺍니다. 저는 밤에 자기 전에 정해 놓고 하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런 일을 하다보면 금새 하품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굳이 작정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시계를 보고 (그리고 제가 보내는 신호를 받아서) 알아서 긴장을 푸는 것이지요. 물론 여기서 말씀드린 것은 순전히 저 개인의 리듬이고 여러분의 리듬은 저와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리듬을 따라 살다보면 집중력도 더불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평소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아 늘 놀거나 자거나 운동을 하는 시간에 억지로 커피 마셔가면서 자신을 다그쳐봐야 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미래에서 에너지를 빌려오는 셈이니 결국에는 이자까지 치러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죠. 따라서 그런 때는 차라리 쉬고,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 일을 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집중력을 올리는 어떤 비결이 있으신지요?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2 Comments

  1. 유익하고 공감이 가는 칼럼 매우 고맙습니다.

    저는 주로 밤에 일하는데, 밤에는 “조명”도 집중력 향상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밤에 일할 경우 가끔 졸립기도 한데, 그럴 때 제 경우에는 하드락이나 재즈 등도 집중력을 위한 좋은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분들이 자기만의 최고의 방법으로 최선의 성과를 내시면 좋겠네요 !!^^

  2.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서 언제나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연륜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저는 체력 향상에 한 표를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같은 상황(코로나19 팬데믹)에서는 외부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시간을 정해 놓고 단순하지만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운동이 어떻까 싶습니다. 매일 오후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5000보 이상 꾸준히 걷기를 하고 있는데, 체력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역사 대하 소설로 유명한 ‘조정래’ 작가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몇 년에 걸쳐 집필을 했는데, 앉아서 장시간 글쓰기를 하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본인에게 탈장 증세가 있는 것도 모르고 탈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 집필에서는 고민끝에 ‘국민체조’를 시작했는데 이게 전신을 움직이는 스트레칭이라서 특히 목과 어깨 근육을 풀어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Leave a Reply to dukgyu.leeCancel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