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 Bargain이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네, 당연히 그러시겠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셨나요? 하고 물어보면 대답하실 분은 아마 잘 없을 것 같네요. 이번엔 제가 미국에서 실제 경험해 본 Plea Bargain에 대해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합니다. 세상을 돌아가며 살면서 겪은 이런 저런 일화 중 하나입니다.

Plea Bargain이란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이기 때문인지 통일된 번역어는 없는 것 같고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을 조정하는 제도입니다. 미국에서 주차위반 등 교통위반을 하는 경우 벌금 납부 딱지를 교부합니다. 주행 중 교통위반을 하면 어느새 나타났는지 뒤에서 번쩍 번쩍 경광등을 켜고 경찰차가 따라와요. 한국에서는 경찰차량이 항상 번쩍거리고 다니지만 미국에서는 평소에는 경광등을 켜두지 않고 정차시킬 차를 뒤따를 때만 번쩍거립니다. 그래서 뒤에서 번쩍거리면 빨리 갓길에 정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공무집행방해죄 비슷한 괘씸죄까지 더해진다고 하네요(사실인지는 저도 궁금). 그리고 차량 조회가 끝나 운전석에 다가올 때까지 창을 내리고 가만히 운전대에 손을 얹고(내리면 안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야간이면 실내등을 켜 두어야 하고요. 다가와서 보험증을 보자고 하면(면허증보다 보험증을 요구하더군요) 천천히 콘솔박스를 열고 보험증을 꺼내 보여줍니다(저의 경우는 움직이지 말고 옆좌석의 와이프더러 열라고 했습니다. 미국은 총기 때문에…조심 조심 후덜덜). “귀하는 어쩌고 저쩌고” 하고 나서 딱지를 발부합니다. 제가 주재했던 뉴저지 주의 일반적인 교통위반 범칙금 납부 고지서는 길쭉한 표 모양의 양식인데 그 당시 80불짜리를 발부 받았습니다. 이것을 온라인으로 납부하면 그것으로 상황을 종결할 수 있습니다. 그 범칙이 처음이고 주재기간 동안 다시 교통위반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말이지요. 문제는 벌금만이 아니고 벌점도 함께 나오기 때문에 약간 고민하게 됩니다. 제 기억에 벌점 한도가 한국보다 여유가 없어 이 경우 벌점을 받지 않으려면 법원으로 가야 합니다. 딱지 뒷면에 Plea Bargain 절차와 관련된 내용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벌점을 받지 않는 대신 벌금을 더 내는 방법(형량 조정)입니다. 다음은 Plea Bargain이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법원을 방문하면 판사가 먼저 입장합니다. 판사가 여러 피의자들을 하나씩 불러 유죄 인정 여부를 묻습니다. 여기서 판사가 “어쩌고 저쩌고… 인정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No, I don’t”라고 부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때 “No”라고 한 사람은 전부 검사실로 가게 합니다. 미국에서는 검사의 역할과 권한이 우리나라 검사와 많이 다른 것 같았고 별로 무게를 잡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검사와 나눈 대화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벌점 대신 벌금을 내겠다는 얘기를 했었고 조정된 형량에 서명하고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판사와 대면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어쩌고 저쩌고 인정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조정된 형량에 대한 동의 여부입니다. 이번에는 “Yes, I do.”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벌점 대신 부과된 벌금 250불 정도(County 마다 벌금액이 다릅니다)를 납부하면 상황이 종결되지요. 제 바로 앞의 용감한 한국의 중년 여성 한 분이 검사한테 이 County는 왜 벌금이 이리 높으냐고 큰소리로 따진 덕분에 제 차례에 저는 따지지도 않았는데(경황이 없는데 뭔 따지길 하겠습니까?) 검사가 친절히 “이 벌금은 우리 County에서 한 푼도 쓰지 않고 주정부로 다 상납합니다”하고 친절히 설명해 주더군요. 한국의 여성 파워를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Plea Bargain은 기소 당국이 유죄를 입증하기 쉽지 않은 중범죄자가 유죄를 인정하면 감형해 주는 제도로 알고 있었는데 교통위반자와 같은 가벼운 범칙자들의 경우에도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전혀 자랑할 일이 아닌 경험이었지만 뜻밖에 동료들에게는 좋은 간접 경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족으로 또 이런 일 자체가 성가시다고 생각되면 대안이 될 만한 괜찮은, 그러나 비공식적인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은 기부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거주 County의 경찰청에서 기부 요청서를 보내오면(보통은 우편으로 받게 됩니다) 임의의 금액을 기부하는 겁니다. 답례로 기부 스티커를 제공해 주는데 차량에 부착합니다. 이 경우 범칙하더라도 1~2회 정도는 딱지 발부를 면해 준다는군요.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여러 현지인들로부터 들은 내용이기 때문에 아마 사실인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면 난리가 나겠지요?

벌칙금 고지 딱지에 Plea Bargain으로 적혀 있었는지 분명이 기억나지 않으나 Plea는 적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Plea의 뜻이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의 항변 등을 뜻하고 실제 절차가 형량 조정의 과정을 거쳤으니 Plea Bargain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형법 또는 형사소송법에는 없는 제도이긴 하지만 묵시적인 관행으로 운영된다고 하네요. 우리 말 번역어로 ‘유죄시인협상’도 있지만 ‘사전형량조정제도’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용어이니 원문을 괄호 속에 삽입하여 부기해 주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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