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13: 원문의 분위기와 수준을 반영하는 번역

번역가는 번역을 할 때는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 원문을 쓴 사람과 독자를 두어야 합니다. 즉, 번역가는 번역을 할 때 원문을 쓴 사람의 입장과 필요와 의도를 이해하면서, 또 그들의 스타일을 반영하면서 번역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독자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친숙한 용어와 개념을 사용해서 번역을 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난데 없이 한 문장만 뚝 떼서 이것을 어떻게 번역하느냐고 물어보면 문장 해석은 해 줄 수 있지만 번역하기는 주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어나 구만 따로 떼어서는 번역을 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혼자 뚝 떨어져 있는 문장이나 구나 단어는 앞 뒤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문맥(context)이 없기 때문에 원문을 쓴 사람이 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알아채기가 힘들고 또 이 문장이나 구나 단어의 독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코스의 예문들에서 문장이 아닌 단어나 구에는 제가 번역을 붙이지 않은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번역을 할 때 원문의 저자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를 이해하면서, 즉 원문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따라가면서 번역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번역문에서는 빠다 냄새가 나고 어떤 때는 기계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원문을 쓴 사람의 경향, 교육 수준, 쓰고 있는 언어의 딱딱한 정도 등도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원문이 10대 아이들의 가벼운 대화인데 번역문은 70대 노인의 분위기를 풍겨서는 안됩니다. 원문이 쌍욕을 하면서 분노를 토하고 있는데 번역문은 밋밋하게 점잔을 빼고 있으면 안됩니다. 원문이 쌍욕을 하면 번역문도 쌍욕을 해야 합니다. 원문이 종교적 문구나 헌법 문구나 계약서 등이라면 번역문도 그 원문의 분위기나 격식을 차리는 정도를 그대로 반영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어렵지만 노력은 해야죠.

 

그림15

 

 

  • 원문: This runs counter to the spirit of the Constitution.
  • 그럭저럭 번역: 이것은 헌법의 정신하고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
  • 제대로 번역: 이는 헌법의 정신에 배치된다.

 

  • 원문: Last night, I was supposed to go to a party with my friends, but they flopped on me. They are all such floppers.
  • 그럭저럭 번역: 어제 밤에 본래 친구들이랑 파티에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가기 직전에 친구들이 다 취소했다. 그들은 모두 걸핏하면 막판에 취소를 한다.
  • 제대로 번역: 원래는 어제 밤에 친구들이랑 파티 갈려고 했는데 이 놈들이 막판에 빵꾸를 냈어. 거지 같은 새끼들.

 

  • 원문: Abba Father, thank You for bringing me into Your family. May I never disappoint You in the way I treat others. May they see in me the qualities of character that can only be attributed to Your presence in my life.
  • 그럭저럭 번역: 아바 아버지, 나를 당신의 가족으로 받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데서 당신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내 삶 속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그 성품을 다른 사람들이 내 속에서 보도록 해 주십시오.
  • 제대로 번역: 아바 아버지여, 저를 가족으로 받아 주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제가 다른 이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결코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게 하옵소서. 제 삶에 아버지께서 계셔서 생겨나는 오직 그런 성품이 다른 이들 앞에 드러나게 하옵소서.

 

  • 원문: My life is fucked up because of you, you asshole!
  • 그럭저럭 번역: 너 때문에 내 인생이 혼동에 빠졌다.
  • 제대로 번역: 개새끼 너 땜에 내 인생이 좆 됐잖아!

 

위 예문들은 다양한 수준의 formality를 보여줍니다. 원문이 찢어진 청바지에 통기타를 매고 있는데 번역문은 턱시도 입은 것처럼 느껴지면 그런 번역문은 정확도를 떠나서 벌써 꽝입니다. 그러므로 번역가는 원문의 수준과 분위기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별도의 리서치 없이 글만 보고도 다음과 같은 것을 알아 낼 수 있으면 실력이 있는 번역가입니다:

  • 글을 쓴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
  •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흥분해서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
  • 딱딱하고 공식적인 언어를 쓰고 있는지 아니면 편안하거나 다소 무례한 어투를 쓰고 있는지
  • 심지어 때로는 백인인지 흑인인지

 

위와 같은 것을 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안다고 해서 번역에 저런 차이를  늘 반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노력은 해야지요.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알았다면 번역에서 반영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이런 맥락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일 만한 요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문이 어떤 종류의 단어를 주로 쓰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만약 라틴어와 헬라어 어근에서 나온 단어들을 많이 쓰고 있다면 좀 딱딱하고 공식적인 글이라고 볼 수 있고, 이럴 때는 우리말에서는 한자어를 써서 번역을 하면 대충 분위기가 맞습니다. 반대로 앵글로섹슨어 계통의 단어들을 주로 쓰고 있다면 그것이 꼭 글쓴이의 교육 수준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글에서 편안하고 일상적인 어투로 말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그렇다면 한자어를 피하고 순우리말 위주로 번역을 하면 대충 분위기가 맞습니다.

 

예문을 좀 보죠.

 

  • 원문: MLB contends Congress has no jurisdiction over steroid use.
  • 그럭저럭 번역: MLB는 의회가 스테로이드 사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건덕지가 뭐가 있냐고 따진다.
  • 제대로 번역: MLB는 스테로이드 사용에 대해 의회가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해설: 원문에서 헬라어 라틴어 계통 단어가 4번이나 나옵니다. 이 정도면 재판의 소장이나 매우 권위 있는  매체의 뉴스보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럭저럭 번역에서는 ‘의회’를 제외하고는 순우리말만 사용했고, 그래서 뭔가 분위기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반면에 제대로 번역에서는 한자어가 많이 사용되자 분위기가 원문의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십니까?)

 

  • 원문: Honeybees use one of the most sophisticated communication systems of any insect.
  • 그럭저럭 번역: 꿀벌은 자기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진짜 잘 하는 벌레다.
  • 제대로 번역: 꿀벌은 매우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사용하는 곤충이다.

(해설: 제 요지를 분명히 하려고 약간 억지를 부려보았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원문에서 헬라어와 라틴어 계통의 단어를 네 개나  쓰고 있습니다. 제 짐작에는 학술 논문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 문장을 그럭저럭 번역을 해 놓으면 영 맛이 안 나고 분위기가 살지를 않습니다.)

 

  • 원문: Jack is on friendly terms with Sara.
  • 그럭저럭 번역: 잭은 새라와 우호적 관계에 있다.
  • 제대로 번역: 잭은 새라와 스스럼 없는 사이다.

 

원문의 분위기를 반여하는 번역
원문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번역

 

엄밀하게 말하면 term도 라틴어에서 왔다고 볼 수 있지만 매우 구어적으로 쓰이고 있고, 그것을 제외하면 하나도 헬라어나 라틴어 어근을 가진 단어가 없습니다. 즉, 모든 단어가 앵글로색슨어죠. 그러면 제대로 번역처럼 순우리말을 써서 번역하면 분위기가 산다는 겁니다. 저런 분위기에 굳이 한자어를 써서 “우호적 관계” 어쩌고 하면, 같이 커피 마시며 깔깔대는 남녀에게서 갑자기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정상회담 냄새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번역으로서는 꽝입니다.

 

헬라어와 라틴어 어근에 대해서는 다음 레슨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룹니다.

 

이번 레슨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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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