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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레슨에서는 대명사를 없애거나 본래 명사로 되돌림으로써 번역된 문장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법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대명사는 한국 사람의 시각으로 보기에도 명확한 기능이 있었습니다. 주어나 목적어로 떳떳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없애는 것이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죠.
그러나 소유 형용사는 한국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저거 도대체 왜 쓰지?’할 정도로 기능이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영어에서는 한국어 사용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소유 형용사를 정말 많이 씁니다. 물론 소유 형용사들이 아무 기능도 없이 그저 쓸 데 없이 쓰이는 것만은 아닙니다. 소유 형용사 때문에 뜻이 또렷해 지는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영어에서는 관사 대신에 소유 형용사를 쓸 수 있는 곳에서는 일단 다 소유 형용사를 씁니다. 그러다 보니 이건 뭐 번역문이 온통 ‘그의’ ‘그녀의’ ‘그들의’ ‘그것의’ 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휴, 빠다 냄새….
앞에서 이미 대명사를 많이 줄여야 한다고 말씀 드린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소유 형용사도 정말 필요한 경우(실은 그리 많지 않음) 외에는 모두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대명사는 주어와 목적어로 쓰이기 때문에 단순히 없앨 수가 없고 상당한 경우 그 대명사가 가리키는 명사로 대체해 주었지만, 소유 형용사의 경우는 그렇게 하면 문장이 여전히 어색하고 너저분하며 빠다 냄새도 줄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과감히 제거해 보십시오.
‘헉! 정말 그래도 될까?’ 하는 분들이 계시죠?
제가 뭘 믿고 감히 저렇게까지 말하나 하는 생각이 드시죠?
그런 분은 일단 생략한 다음에 그것을 다시 영어로 옮겨 보십시오(back translation). 영어로 번역하면 그 자리에 다시 소유 형용사를 넣게 될 것입니다. 즉, 그 소유 형용사는 ‘영어 문장’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따라 나오는 어떤 요소이고 한국어에서는 필요 없는 것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것이 무엇을 빼도 되는가, 혹은 어느 정도까지 의역을 해도 되는가에 대한 저의 기준입니다. 예컨대 전화 통화 끝에 나오는 “Bye for now.”를 “그럼 수고하세요.”나 “그럼 나중에 또 통화하죠.”로 번역하는 것은 상당한 의역이지만, 그 맥락에서 다시 back translation을 했을 때 통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안녕.”, “일단 끊자.”등보다는 훨씬 더 괜찮은 번역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제 소유 형용사가 얼마나 번역문에서 빠다 냄새를 풍기는 요소인지, 그리고 그런 소유 형용사를 아예 없애 버려도 정말 괜찮은지를 예문을 가지고 살펴 봅시다.
- 원문: Monica, her best friend at one time, is now her worst enemy.
- 그럭저럭 번역: 한 때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모니카가 지금은 그녀의 최악의 원수이다.
- 제대로 번역: 한때는 가장 친했던 모니카가 이제는 최대 적수가 되었다.
(해설: 그럭저럭 번역에 두 번이나 나왔던 ‘그녀의’를 두 번다 없애 버렸습니다. 그 결과, 뜻이 소실된 것이 있나요?)
- 원문: John wouldn’t turn his back on his best friend.
- 그럭저럭 번역: 존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 제대로 번역: 존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등을 돌릴 사람이 아니다.
(해설: 가장 친한 친구가 존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런데도 굳이 ‘그의 가장 친한 친구’나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 원문: You can’t sell products that have had their day.
- 그럭저럭 번역: 당신은 자기 전성기가 지난 상품들을 팔 수 없다.
- 제대로 번역: 상품의 전성기가 지나고 나면 팔기 어렵다.
- 좀 더 다듬은 번역: 한물 간 상품은 팔리지 않는 법이다.
(해설: their day에서 their는 상품을 가리키는 것인데 상품의 전성기라고만 해도 어느 정도는 나아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원문: He wasn’t afraid to suffer to achieve his dream.
- 그럭저럭 번역: 그는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제대로 번역: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해설: 문맥상 꿈이 그 사람의 꿈인 것이 명백하므로 이런 곳에서 ‘그의’를 써 주면 정말 빠다 냄새 많이 납니다. 사실 다른 것은 그대로 두고 ‘그의’ 한 단어만 빼 주어도 문장의 품격이 달라집니다.)
- 원문: Her smile is her best feature.
- 그럭저럭 번역: 그녀의 미소가 그녀의 최선의 특징이다.
- 제대로 번역: 걔는 웃을 때가 제일 예쁘다.
(해설: 여기서도 그럭저럭 번역에 두 번이나 나왔던 ‘그녀의’를 두 번다 없애 버렸습니다. 이번에도 살펴 보십시오. 무엇이 소실되었나요? 그리고 제대로 번역을 영작 하면 정확하게 원문이 됩니다.)
- 원문: Parents are obligated to support their children.
- 그럭저럭 번역: 부모는 그들의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 제대로 번역: 부모는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해설: 여기서는 소유 형용사가 딱 한 번 나오지만 저 한 번의 소유 형용사가 문장 전체를 빠다 냄새가 진동하게 만듭니다.)
신문 같은 데서 영어 문장을 번역한 것이 너무 티가 나는 문장을 가끔 보게 되는데, 그럴 때 도대체 이 문장의 어떤 요소가 이토록 이 문장을 느끼하게 만들까 살펴보면 많은 경우에 앞의 레슨에서 설명 드린 대명사와 이번 레슨에서 설명 드린 소유 형용사입니다. 이 요소들만 잘 처리해도 여러분의 문장이 훨씬 자연스러워질 겁니다.
여러분이 저 문장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국어로 썼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부모는 그들의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그런 문장을 쓰시겠습니까? 아닐 겁니다. 그런데도 많은 번역가들이 번역문에서는 저렇게 너저분한 불필요한 요소를 치렁치렁 늘어 놓습니다. 사실 그런 이유는 미적 감각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영어 원문에 있는 어떤 요소를 없애고 문장을 과감하게 재형성해 볼 용기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은 원문의 노예라고 생각합니다. 번역가더러 원문의 노예가 되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원문의 뜻을 담고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표현해 내는 사람이 훌륭한 번역가입니다.
사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것이지 남의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대로 번역이 제대로 번역한 겁니다. 원문에서 their가 들어가는 것은 영어의 습관이요 특징입니다. 영어에서는 저 their가 없으면 이상합니다. 그러나 한글에서는 팍! 없애십시오. 그리고 원문의 노예가 아니라 문장을 자유자재로 주물러서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번역가가 되십시오.
이번 레슨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