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번역가에게 고객은 몇 명이나 있어야 할까?

오늘은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고객이 몇 명이나 있으면 좋은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프리랜서 번역가의 직업에서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는 일이 끊어질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잠시 동안 일이 없는 것이야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한 달 단위로 혹은 세 달 단위로 보면 늘 일정한 정도의 일이 있죠. (물론 번역을 처음 시작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 이유는 번역가에게 여러 명 혹은 여러 곳의 고객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어느 날 갑자기 고객 중 한 곳이 파산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혹은 고객이 파산을 하지는 않더라도 무슨 이유로든 나와 거래를 중지하겠다고 통보를 해 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직장인이라면 자기 회사가 곧 파산을 하거나 혹은 그렇지는 않더라도 나를 해고하겠다고 통보해 온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지요.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 프리랜서 번역가이고, 그것이 이 직업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내 스스로를 해고하지 않는 한 내 직업에서 나를 몰아낼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요. 한 고객이 파산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런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할 것입니다. 또 혹시 고객이 내 번역이 마음에 안 들거나 내 번역료가 너무 높다고 느끼거나 해서 더 이상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해도 나는 다른 고객들이 얼마든지 있고 또 마음만 먹으면 미래에 또 다른 고객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기 때문에 걱정할 일이 전혀 없죠. (물론 번역의 질을 늘 높이려고 애쓰면서 일하는 번역가에게는 그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프리랜서 번역가의 이런 놀라운 장점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들도 있더군요. 한 명의 고객 혹은 매우 소수의 고객만 유지하는 경우입니다. 고객이 한 명인 경우는 소위 인하우스 트랜슬레이터가 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실력이 부족하여 누구에게 배우면서 좀 더 실력을 쌓으려고 생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저는 도대체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 아시는 분, 혹시 이해가 되시는 분은 설명 좀 해 주세요.) 번역가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다니…

 

또 다른 경우로서 프리랜서이긴 한데 한두 곳의 고객과만 거래를 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분은 11년간 오직 한 고객(최종 수요자, direct client)과만 거래를 했는데, 그 회사가 그만 문을 닫게 되어 갑자기 당황하고 있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살았다기보다는 재택근무를 하는 종업원으로 지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위의 경우들은 프리랜서 번역가라는 직업의 놀라운 장점들을 잘 생각해서 마음껏 누리지를 못하고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위와 같은 원리에 비추어 스스로 자신의 직업 안정성을 낮추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한 고객에게서 발생하는 매출액이 전체의 30%를 넘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40%가 넘는다면 당장 심각한 구조조정을 해야 하고요. 왜냐하면, 한 고객이 그 정도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의존도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고객과의 관계에서 나의 재량권과 협상력이 당연히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너무 바빠져서 번역료를 올리고 싶을 때, 그 정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객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되죠. 그래서 제안도 못 해보거나 제안했지만 ‘곤란하다’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그럼 다른 번역가를 찾아보기 바란다’라고 말하고 그 고객을 떠날 용기가 쉽게 안 나죠. 다른 프로젝트들 때문에 바쁜 시기라도 그 고객의 일은 받아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느낄 수도 있고요. 이런 식으로 비중이 너무 높은 고객은 결국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번역가가 그 비중 높은 고객과 대등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끌려가게 되기가 쉬우니까요.

 
 

 

그렇다고 고객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자신이 관리할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수의 고객을 유지하되 한두 고객의 비중이 너무 높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객 관리에서도 20:80의 법칙이 적용되니까요. 새로운 고객을 만드는 것이 좀 귀찮고 또 지금 고객이 상당히 맘에 든다 하더라도, 현재 그 고객이 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한다면 비즈니스 구조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필요한 조정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3 Comments

  1. 저는 중국어번역을 막 시작했습니다. Cat툴중 트라도스라는 게 있나본데 구입하면 어디서 사용법을 배워야 할까요? 그리고 proz라는 곳은 영어번역 위주인지 궁금합니다.

    • 트라도스는 자체에서 제공하는 매뉴얼 등으로 공부하셔야 할 듯 합니다. 인터넷의 각종 포럼에서 질문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SDL이 제품을 판매한 다음 그 제품을 교육하는 것으로도 한몫을 보는 회사다 보니 자체 프로그램 같은 것을 많이 갖추고 있긴 합니다만, 영어가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굳이 유료로 배우지 않아도 참고할 리소스는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유튜브의 SDL 공식 채널에서 제공하는 아래와 같은 영상들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댓글에는 하이퍼링크가 걸리지 않으므로 일일이 입력해서 직접 찾으셔야겠습니다.)

      Working with project packages in SDL Trados Studio 2017
      Working with SDL Trados GroupShare projects in SDL Trados Studio 2017
      Creating and managing a project in SDL Trados Studio 2017.
      How to create a translation memory in SDL Trados Studio 2017

      그리고 Trados Studio 2017은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관련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2011 이후로 프로그램이 큰 틀에서 많이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 사용법이라면 트라도스 2014, 2015 자료를 참고하셔도 됩니다. 아래 영상도 SDL 공식 영상인데, 오래된 자료지만 한번 흟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Learn SDL Trados Studio 2011 in 10 minutes

      그리고 김호빈 씨가 한글로 된 트라도스 활용법 코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6월 정도에 완성될 듯합니다. 그 코스를 기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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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