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번역 에이전시 분별하기

프리랜서 번역가가 어쩌다 한 번 별로 좋지 않은 agency와 거래를 했다고 해서 뭐 큰일 나는 것은 아닙니다.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agency가 고객이지 고용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일을 하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으면 정리해버리면 되지요. 그러나 이미 작업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을 때까지는 일단 좀 참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다가 번역료를 무사히 받은 다음에는 다시 거래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실수를 통해 배우면 됩니다. (사실 어느 정도의 실수는 필수적입니다. 시행착오는 피하면 좋겠지만 완전히 피할 수야 없습니다. 저도 수없이 많은 실수를 했구요.) 그러나 처음부터 좋은 agency를 고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당연히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블루보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좋은 에이전시를 골라낼 수 있는 몇 가지 추가적인 기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나쁜 에이전시 판별하기

큰 에이전시는 좋은 에이전시인가? 

 

 

비딩을 요청하는 광고문을 보면 가끔 자기네가 얼마나 큰 규모의 회사인지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런 문구는 프리랜서 번역가의 판단을 흐리는 쓸모없는 정보입니다. 크다고 해서 좋은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좋은 에이전시는 좋은 요율을 제공하고, 필요한 정보 등을 적시에 제공하며(커뮤니케이션), 번역가의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에이전시입니다. 그런데 종종 큰 에이전시는 요율을 깎으려고 애쓰고, PM이 바쁘다 보니 대량 메일을 발송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엉뚱한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나의 질문이나 요청에 제때에 답을 못하는 수도 많습니다. 그렇게 보면 자기네 회사가 세계 여러 곳에 얼마나 많은 지사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광고가 얼마나 쓸모없는 광고인지 알 수 있습니다. 큰 에이전시가 좋은 에이전시이기도 한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자기네 내부적인 일 흐름을 잘 정리해 두어서 번역가의 일을 간편하게 해 주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서 인보이스를 받지 않아도 되게 한다든지, 인보이스가 등록되고 나면 대금 지급이 자동으로 되게 만든다든지 등의 내적인 혁신을 이루었을 때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많은 경우 큰 에이전시들은 일에 지친 PM, 관료주의적인 일 처리, 고압적인 자세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때도 많습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상습적으로’ 약속하는 에이전시는 아닌가?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일의 지속성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작지만 같은 종류의 일이 반복적으로 있는 것은 확실히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회사들은 자주 비딩을 띄우고, 띄울 때마다 그런 문구를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그것은 곧 그런 문구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식으로 비딩 요청을 반복하는 에이전시들은 좋은 번역가와 연결의 끈을 만드는 것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몇 개의 프로젝트들을 싸게 처리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는 급이 낮은 에이전시들입니다.

 

온라인 플랫폼(CAT tool)을 공짜로 쓰게 해준다고 강조하는 에이전시는 아닌가? 

 

 

이것은 번역가가 에이전시의 시스템에 로그인해서 작업을 하고 나가게 하는 시스템인데, 제가 CAT tool에 대해 쓰면서도 이미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혜택이 아니라 번역가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익숙지 않은 새로운 CAT tool에 익숙해져야 하고, 작업이 끝나고 나면 아무런 TM도 건지지 못한 채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단어 수, 반복률(repetition rate) 등을 계산하는데 있어서도 전적으로 에이전시가 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믿고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것은 번역가가 언어 서비스 제공자의 지위를 스스로 버리고 정신적인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고 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 서비스 제공자는 어떻게 일할지, 그 일의 대가로 얼마를 받을 것인지를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 상대방과 협상을 할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그 일의 내용이 무엇인지, 양이 얼마나 되는지, 반복이 얼마니까 얼마나 디스카운트를 해 줄지에 대해 아무런 통제권이 없다면 그야말로 참 한심한 계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워드 카운트에 대해서는 따로 소스 문서를 보내서 확인을 받을 수 있긴 하지만요).

 

이런 에이전시들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2. 좋은 에이전시 판별하기

나쁜 에이전시를 알아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좋은 에이전시는 첫눈에 알아보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래에서는 좋은 에이전시를 알아보는 방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블루 보드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가?

블루 보드에 대해서는 따로 써 둔 글(Proz의 블루 보드 이용시 유의할 점 7가지)이 있으니 참조하십시오.

 

번역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저가 시장에서 가격경쟁을 하면서도 그 시장에서 나름대로 번역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지불을 제때에 함으로써 좋은 점수를 유지해가는 에이전시도 있기 때문에 해당 에이전시의 시장 전략을 어느 정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저가 시장에서 나름대로 번역가를 잘 대접하면서 좋은 점수를 유지해 나가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주로 특정 국가의 에이전시인데 제가 굳이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물가가 비싼 국가에서 사는 번역가로서는 그런 에이전시와 일을 해서는 생활해 나가기도 힘들겠죠.

 

전문화된 작은 에이전시인가? 

이는 어느 한 분야에만 특화해서 그 분야의 번역만을 전문으로 해 나가는 에이전시들을 말합니다. 예컨대 학술 논문만 번역한다든지, 자동 음성 녹음 반응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그와 관련된 번역만 한다든지, 온라인 강의 시리즈만 번역한다든지, 의료 기기 전문 에이전시라든지, 임상 시험 분야만 번역한다든지, 특허만 다룬다든지 등등이런 회사들은 그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에이전시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시장 지배 능력이 있고 따라서 번역가에게도 훨씬 높은 요율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 분야의 번역을 해낼 수 있는 전문번역가를 찾으려고 애쓰고, 찾으면 대접을  해 줍니다.

 

이런 기준으로 계속해서 에이전시들을 골라 나간다면 몇 년 후에는 최상의 에이전시들과만 일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