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일석이조 추구를 통한 외국어 공부

 
일석이조는 언제 어디서나 일이 많고 바빴던 제가 만성적 시간 부족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십 년 전에 수립한 시간관리 원칙입니다.

 

 

일석이조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냐 하실지 몰라도 제게는 너무도 소중한 원칙이고, 또 돌이켜 보건대 이 원칙이 저를 원하는 곳으로(만성적 시간 부족에서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삶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준 것 같습니다.

 

일석이조는 그야말로 하나의 행동으로 두 가지 이득을 얻는 행동입니다. (문자적 의미는 잔인하니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절약될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시간문제에 진지하게 들이대고, 골똘히 생각하고, 끈기 있게(몇십 년 동안)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실천하는 시간관리에서의 일석이조, 특히 외국어 공부와 관련하여 간단히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번역가가 번역가 아닌 사람과 구분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국어가 아닌(적어도) 다른 한 가지 언어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전을 찾아보고 겨우 뜻을 이해하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서, 그 의미를 다른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숙련도 내지 숙달도를 가진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그것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별 가치 없는 잡기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번역이 필요한 수요자에게는 너무나도 값진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그렇게 값진 것이기에, 그 수요자들이 돈을 주고 번역 서비스를 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런 능력은 결코 하루 아침에 길러지지 않습니다. 아니 하루 아침이 아니라 수 년 안에도 길러지기 힘듭니다. 언어는 참으로 방대한 세계입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계속 발견되고 한 발자국 바깥으로 내디디면 또 모르는 분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적어도 한 십 년은 갈고 닦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설령 운이 좋아서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번역가가 되려면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번역을 하는 경우에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영어를 더 연마해야 하고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한국어를 더 연마해야 합니다. 이런 오랜 연마 과정을 통해서 번역가는 비로소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아마추어들은 도저히 따라오기 힘든 깊이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기업 용어로 얘기하자면 이것이 바로 번역가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입니다.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번역가의 길을 가려면 정말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외국어를 연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얘깁니다. 진짜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긴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영어(저에게는 이것이 외국어입니다)를 연마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인데, 저는 바로 여기서 일석이조를 말하고자 합니다. 사실 자신의 장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밤낮 없이 그것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쉬어야 하고, 놀아야 하고, 재충전을 해야 하니까요. 취미생활도 해야 하고요. 글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여기서 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취미와 오락을 전부 영어로 바꾸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뭐 그런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시겠지만, 일단 그렇게 생각한 다음에 곰곰이 생각하고 길을 찾고 뒤지고 시도해 보면 다 길이 있습니다.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괜찮은 일석이조의 길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일단 저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는 무조건 영어로 봅니다. 심지어 한국 영화도 영어 자막 틀어 두고 봅니다. 두 번째, 영화 보러 개봉관 갈 시간도 아까우려니와 그렇게 보면 알아듣지 못한 것은 그냥 지나가 버리지 않습니까? 케이블 티브이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서 보면 영어 자막도 제공되고, 심지어 중간에 사전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영화를 보면 하루 두세 시간 영화 보고 나서도 별로 양심의 가책(?)도 안되고, :-P 또 실제로 몰랐던 것 한 보따리도 건질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하는 영화도 자막 틀어 놓고 보면 몰랐던 것이 마구 나옵니다. (그것 다 찾아 보려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면 정말 많이 배웁니다.) 이렇게 영화를 무조건 영어로 본다는 것은 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종의 포기(그냥 영화만 보는 것에 대한)이기도 한데,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서 실제로 나중에는 내가 뭘 포기했어야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새로 결심하고 시작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정말 나의 취미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또 하나는 라디오입니다. 라디오의 최대 장점은 책상이나 화면 앞에 붙어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죠.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 방 청소하는 시간, 실내에서 운동하는 시간, 그런 시간에 라디오를 틀어 놓으면 이것도 대단히 훌륭한 일석이조입니다. 물론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시사 정보가 주가 되는 채널을 사용해야겠죠? 캐나다에는 CBC라는 매우 훌륭한 국영 채널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뉴스도 듣고 정보도 얻고 오락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Podcast도 물론 해 주고요. 좋은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요. 시간만 있으면 무한정 듣고 싶을 정도로 좋은 라디오 채널입니다. 세금 내는 것이 아깝지 않은 방송국… 한국에 계신 분들도 podcasting은 이용하실 수 있으니까 시도해 보십시오. (제가 즐기는 프로는 Ideas, Sunday Edition 등입니다.)

 

저와는 반대로 영어가 모국어인 분들은 한국어를 이런 식으로 습득해 가면 되겠지요. 저는 제가 아는 후배 번역가에게 DramaFever라는 것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한 달에 얼마를 내면 한국의(실은 세계 여러 나라의) 드라마를 고화질로 무한정 볼 수 있습니다. 뭐 선전하는 것 같지만 사실 좋아요. 물론 자막이 그리 좋지는 않더군요. 뭐 그래도 영어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국어 소리를 듣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큰 상관은 없죠. 사실 저는 지금도 저희 아이들에게 방학 때 집에 있는 시간은 다른 것 하지 말고 드라마피버나 실컷 보라고 합니다. 어릴 때는 용돈을 미끼로 유혹하기도 했었죠. 지금은 용돈과는 연계시키지는 않는데 그래도 이제는 방학 때에는 꽤 자발적으로 보더군요. (제 충고를 잘 받아들여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번역가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취미 생활을 만들어 가면 되겠지요.

 

지금까지 주로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석이조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여러분의 상황에 맞게 외부에서의 일석이조 추구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요. “에이, 그런 것 별 재미없어 보이는데?” 하는 분은 다른 것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저 저는 제가 하는 외국어 공부법을 소개해 드렸을 뿐이니까요. 다만, 일석이조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 다시 말해서 작정하고 길을 찾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작정하고 찾으면 꼭 길이 있습니다. 길 하나를 찾으면 또 다른 길도 보이는 수가 많고요. 이렇게 일석이조를 통하지 않고는 도대체 오늘날의 이 바쁜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장기적인 실력 쌓기인 외국어 공부를 해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베짱이 얘기 해 드린 것 기억나시나요? 즐겁게 음악 연습하는 베짱이처럼, 당장에는 별 쓸모없는 것 같은 외국어 공부도 작정하고 오랫동안 꾸준히 해 나가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종의 재미있는 취미 생활로 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번역가의 핵심 역량을 튼튼히 키워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3 Comments

  1. 저도 학부 시절에 에드먼턴에서 어학연수하면서 CBC 뉴스를 자주 봤었는데요, 하..어찌나 알아듣기 힘들던지..^^
    넷플릭스!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말 좋은 곳이군요!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 때 등), 놀고 싶을 때는 두 번째 방법을 쓰시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직장인과 프리랜서를 위한 외국어 공부와 시간관리라는 글에서 좀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그 글도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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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