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료 인상 방법

어떻게든 자신의 기준 번역료를 정하고 그것을 가지고 어느 정도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갈수록 번역의 질도 높아지고 일을 처리하는 실력도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 누구도 그 어떤 에이전시도 먼저 나서서 여러분의 번역료를 올려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에이전시의 이익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에이전시의 이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이전시의 이익(A) = 최종 수요자의 지불 가격(B) – 번역가의 번역료(C) – 에이전시의 운영 비용(D)

 

위의 구조를 보면 에이전시의 이익이 증가하려면 B를 올리고 C D는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B를 증가시키려면 에이전시로서는 좋은 번역가와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에이전시에게 좋은 번역가와의 연결은 없어서는 안될 최고로 중요한 자산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으뜸가는 자산이 바로 번역가인 것입니다.

 

그림2
 

 

이런 상황에서 에이전시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요? 번역가에게 한 편으로는 번역의 질을 강조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번역료를 싸게 지급하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지요. 쉽고도 자명한 이치.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에이전시와 10년을 일해도 늘 고맙다, 최고다, 그런 말은 해도 번역료를 자기들이 먼저 올리자고 제안하는 일은 단언컨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번역가가 나서서 가격을 인상해 달라고 하면, 늘 판에 박힌 말을 하지요. ‘요즘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고요. 번역가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기도 힘들고, 알아들어도 진짜 그런지 확인해 볼 길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번역가에게 그런 말은 의미 없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번역가가 에이전시의 종업원이라면 그런 말을 좀 심각하게 듣고 정말 경쟁이 치열할까 하고 걱정해 볼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누누이 강조했듯이 번역가는 에이전시의 종업원이 아닙니다. 에이전시와 번역가들은 서로 다대다의 상황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서로 계약을 맺는 사이일 뿐입니다. 그래서 프리랜서잖아요. 오랫동안 서로 관계를 맺어 오다 보면, 마치 에이전시가 번역가의 수입원, 돈줄처럼 보이는 수가 있는데, 그건 일정 부분 맞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착시’ 현상입니다. 번역가의 근원적인 수입원은 어디까지나 최종 고객이며 그 최종 고객을 만족시키는 번역가의 능력과 정성이 그 수입을 발생시킵니다. (물론 번역가의 수입뿐만 아니라 에이전시의 수입도 번역가가 발생시킵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에이전시는 번역가의 마케팅 부서로 보아야 하며, 그런 관계도 당면한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적용되는 것이지 그것을 넘어서서는 서로 어떤 의무도 없고 권리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번역가는 자신이 받는 가격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구에게 이용당해서도 안 되고, 의지해서도 안 되고, 속아서도 안 됩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번역료를 올려갈 수 있을까요?

 

1. 전제

우선 번역가가 자신의 작업에 정성을 기울이고 지속적으로 좋은 번역을 해낸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로 깔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번역료를 올릴 수는 없으니까요.

 

2. 언제 번역료를 올릴 것인가

번역료를 올릴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너무 바쁘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번역가가 너무 바쁘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다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위에서 제시한 식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에이전시의 이익(A) = 최종 수요자의 지불 가격(B) – 번역가의 번역료(C) – 에이전시의 운영 비용(D)

 

높은 가치를 발휘하는 좋은 번역가가 그 가치보다 낮은 가격만 받아 간다면, 에이전시 입장에서 세상에 그렇게 좋은 번역가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B)는 높아지고 (C)는 낮은 것이니, (D)가 일정하다면 (A)는 당연히 커지겠지요. 그런 번역가는 에이전시에게 황금알을 낳은 거위 같은 존재이고, 그래서 아무쪼록 그 상태로 계속 가기를 바라겠지요. 그러니까 그런 번역가에게 에이전시는 계속 일을 공급합니다. 꾸준히 일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일을 쏟아부어 주고 싶을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 더 끼워넣어서 해 주기를 원하고 심지어 주말에도 일해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게다가 한 에이전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 번역가와 연결된 모든 에이전시가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번역가에게는 일이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 대해 이 번역가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아, 세상이 드디어 나를 알아보고 인정해 주는구나!”하는 흐뭇하게 즐겨야 할까요? 아니요, 그러면 안됩니다. (물론 잠깐은 즐겨도 괜찮겠지요. 사람이 즐기기도 해야 하니까. 커피나 포도주 한 잔 하시면서 흐뭇해 하신다든가, 평소에 보고 싶었지만 바빠서 미루어두었던 책이나 영화를 한 편 본다든가, 만나고 싶은 사람과 데이트를 한다든가, 하여튼 스스로의 성공을 축하하고 celebrate하십시오. ㅎㅎ)

 

 
 

하지만 일이 자꾸 들어와서 점점 바빠지는데 마냥 좋아하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기 싫은 프로젝트를 거절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지만 하고 싶은 것도 시간이 없어서 계속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죠? 또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정한 기준 시간을 넘어서서 무리하게 계속 일만 하면, 여러 모로 손해를 봅니다. 얼핏 생각하면 내가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고 수입도 늘어나니 좋은 일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아서는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선은, 번역가의 길은 마라톤인데 그 마라톤을 할 체력을 소진합니다. 또 자기 계발을 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또 그렇게 일만 하면 괜히 우울해지고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일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마지막으로 자기가 받을 수 있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에이전시에게만 돈을 벌어 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너무 바빠졌다면, 번역료를 올릴 때가 된 것입니다. 번역료를 올리면 그 효과는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일이 줄어드니 휴식 및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거나, 혹은 수입이 더 늘어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기간에 그런 것이고, 시간을 조금 두고 이런 행동을 반복해서 해 나가다 보면, 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일어난다고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간도 생기면서 수입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3. 어떻게 번역료를 올리나?

우선, 무슨 이유로든 제일 맘에 들지 않는 에이전시를 골라 그 에이전시에, 예컨대 ‘7월 1일부로 단어당 레이트를 10% 혹은 15% 인상’한다고 통보하면 됩니다. 물론 공손하고 프로페셔널한 어투로 말해야죠. 그리고 그것을 당신들이 수용할 수 있기를 정말 바란다고 하십시오. 왜 인상하는지 등은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혹시 물으면 그저 너무 바빠서 그런다고 하시면 됩니다. 정말 쉽죠?

 

자,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번역가들은 그것을 잘 실행하지 못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없어서입니다. ‘내가 번역료를 올리면 혹시 고객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번역료 인상을 선언하려면 ‘이 에이전시가 일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신감이 없으면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혹은 더 바빠질 때까지 기다려야죠. 그러나 일단 그런 자신감이 생기면, 다시 말해, 특정 에이전시가 아니어도 내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고 다른 에이전시들도 계속 나에게 작업을 의뢰해 온다면, 과감하게 인상을 선언하십시오. 

 

그랬을 때 에이전시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것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치(가격이 아니라 내가 제공하는 번역의 가치)가 충분히 높다면 10% 혹은 15% 인상을 수용하고서라도 나와 계속 거래를 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면 번역가의 수입이 그만큼 인상되는 것이니 좋은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거부하는 것입니다. “와, 그건 지나치게 높다”, “요즘 시장이 얼마나 치열한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 “우리가 최고로 대우해 줄 수 있는 만큼 이미 대우해 주고 있다” 등의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자신감을 가지고 결정했다면 물러서지 말고 역시 공손하게, “그러면 다른 좋은 번역가를 찾기 바란다”고 작별 인사를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한 두 개의 에이전시에게 가격을 인상했는데도 여전히 바쁘고 피곤하다면, 나머지 모든 에이전시에게도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바쁘면 그때 또 올리면 됩니다. 또한 새로 협력을 시작하는 에이전시에게는 아예 처음부터 인상된 가격으로 시작하시구요.

 

위에서 보다시피 번역료를 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기도 꼭 연말연초 같은 때일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정한 만큼 올리면 됩니다. 저는 전반적인 번역료 인상은 연말연초에 많이 하는 편이지만, 특별히 맘에 안드는 에이전시에게는 언제든지 올립니다. (물론 정말 맘에 안드는 에이전시는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거래 중단을 선언해 버리지만요.)

 

그럴 자신이 있으신가요?

 

그럴 만큼 바쁘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당장 실행에 옮기십시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3 Comments

    • 그럼요! 출처만 밝혀주시면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페이지에 링크를 걸어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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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