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번역은 전기톱과 같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는 번역에 대해 잘 모르는 친구들이 있는데, 가끔 그런 소리도 하더군요. “야, 컴퓨터가 자꾸 발달하면 나중에는 사람이 번역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 아냐?”

 

저는 그 친구가 아마 Google Translate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컴퓨터가 저장해 놓은 많은 데이터를 이용해서 자동으로 번역을 시도한 결과입니다. 사실 구글만 있는 것은 아니고 꽤 이름이 있는 것만 해도 대여섯 종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구글 번역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고,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 번역이라고 하는 것이 개념적으로 맞겠습니다. 영어로는 machine translation이라는 표현이 정착되어 가는 것 같고요. 저도 여기서 기계 번역이라는 용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설명해 주면 좋을지 참 적당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최근에 어떤 책에서 참 좋은 비유를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이렇게 비유를 했더군요. 기계 번역은 전기톱과 같은 것이라고요. 전기톱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힘들게 나무를 베었는데 전기톱이 나온 이래로는 손쉽게, 훨씬 빨리, 대량으로 나무를 벨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전기톱이 사람을 대신해서 나무를 잘라 주지는 못한다고요. 결국 나무를 자르는 것은 톱이 아니고 사람이며, 사람이 전기톱을 이용하여 나무를 자르는 것이라고요. 참 멋진 말입니다.
 
 언어의 복잡성을 모르는 사람은 컴퓨터가 번역을 해낼 수 있을 줄 압니다. 사실 세계 굴지의 회사들이 몇십 년 동안(이제 한 삼십 년이 다 되어 가죠?) 수백 억 달러를 이 프로젝트에 투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기계 번역은 인간 번역가들을 대체하기는커녕 번역가의 도구로 잘 쓰이고 있는 실정이지요. 제 생각에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기톱 비유를 좀 더 계속 사용해 보겠습니다. 전기톱의 유용성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사용할 줄만 알면, 그것은 참으로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언제 사용할 줄 모른다면 재앙이지요. 예컨대 전기톱이 물건을 아주 잘 자르는 효율적인 도구라고 해서 외과 의사가 수술실에 전기톱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나요? 그런 외과 의사도 없겠지만 설사 외과 의사가 엄청 분위기 잡으며 심각하게 말을 해도 환자가 벌떡 일어나 도망칠 것입니다.
 

중요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혹은 고객들에게 보내는 뉴스레터를 공들여 작성한 다음, 그런 문서를 기계 번역을 돌려서 다른 언어권에 보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수술실에 전기톱을 들고 들어가는 정신 나간 의사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전기톱은 전기톱만의 고유한 용도가 따로 있고, 수술칼은 수술칼의 용도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제가 기계 번역을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고 생각하셨다면 그것은 잘못 읽으신 것입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전기톱이 분명히 가치가 있듯이 기계 번역도 분명히 가치가 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특별히 번역가에게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번역가는 전기톱(기계 번역)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할지를 잘 알고 제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거든요. 뒤집어 말하면, 번역가라면 기계 번역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적극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 글을 완전히 이해하시려면 CAT tool에 대한 이해가 있으셔야 하는데요, CAT tool은 그 기능의 일부로서 기계 번역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영한 번역을 할 때는 꽤 자주 이것을 사용합니다. (한영 번역에서는 거의 사용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해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결과가 웃깁니다.) 물론 영한 번역이라고 기계 번역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적당하지 않은 프로젝트에 기계 번역을 사용하면 엉망으로 된 것을 고치느라고 고생이 심하게 되죠.

 
아래는 제가 생각할 때 기계 번역을 한 번 사용해 봄 직한 상황들입니다.
  • 번역 단위들(segments) 문장이 아닌 단어들로 이루어졌을 때
  • 내용이 문학적(예컨대 마케팅 문서)이지 않은 것일 때
  • 내용이 설득보다는 정보 전달 위주일 때
  • IT 관련 프로젝트
  • 과학적 내용

물론 위의 프로젝트들의 경우도, 자동 번역을 사용하는 것이 득이 될지 아니면 괜한 시간 낭비가 될지는 일단 소스 문서를 본 다음에 번역가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서 최종적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또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일단 TM(translation memory)만 사용하여 프로그램을 돌린 후에 아직 채워지지 않은 segment들에서 필요한 경우에만 자동 번역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그 뒤에 하나씩 보면서 차근차근 다듬는 것이죠.

 

저도 기계 번역의 algorithm을 평가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참 진보가 더딜 수밖에 없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것을 진행하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요. 그런 것을 해보면서 한국어가 얼마나 복잡한지, 한국어에 조사가 얼마나 다양한지, 게다가 그것이 앞의 단어에 받침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바뀐다는 사실 등등, 영어나 기타 유럽어들에는 없는 복잡성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한자를 기반으로 한 단어들도 큰 문제고요. 주어가 명확하지 않은 점, 존댓말이 있다는 점, 뜻이 문맥에 (심할 정도로) 많이 의존하는 점 등등 난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제가 제시한 기준을 사용하여 기계 번역을 잘 사용한다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컨대 목공 예술가가 일단 전기톱으로 대략의 모양을 먼저 잘라내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정교한 손칼(번역가의 언어적 능력)로 작업할 필요는 없잖아요. 손칼 작업을 하기 전에 전기톱을 쓸 수 있다면 써 봐야지요.

 

기계 번역, 그냥 버리지 마시고 활용 방안을 좀 더 고민해 보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이걸 언제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감이 생기실 겁니다.

[나중에 덧붙임: 제가 이 주제와 관련된 E-Course를 만들었습니다. 여기를 클릭해 보십시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3 Comments

  1. 얼마 전에 인디안 레스토랑에 가는 길을 찾으려고 구글 맵을 열었는데 자동 번역된 리뷰가 좀 이상하더라고요. ‘할머니가 맛있었어요’ 그래서 뭐지?하고 원본을 읽어보니 ‘naan was delicious’였습니다. 잘 사용하면 편리한 기계번역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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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