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번역의 미래

 

요즘 한국에서는 온통 알파고 얘기뿐인 것 같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승1패로 이긴 사건을 많은 분들이 인공 지능이 인간을 이긴 사건으로 평가하여 흥분하기도 하고 씁쓸해 하기도 하고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저도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날로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을 뿌듯해 해야 할지 씁쓸해 해야 할지 헷갈리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저는 바둑에 문외한이고 인공 지능에 대해서도 제대로 깊이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알파고와 번역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그런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는 분이 제게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써 보라고 도전을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공 지능이 계속 발전하면 번역도 마침내는 인간이 아닌 인공 지능이 더 잘하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되면 번역가라는 직업도 마침내 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주셨고 제가 이에 대해 생각하고 대답해 보도록 하셨습니다. 바둑도 인공 지능도 잘 모르지만 번역에 대해서는 그래도 아주 조금 아니까 그것을 바탕으로 미욱한 제 생각을 한번 전개해 보겠습니다.

 

 

알파고의 승리는 과대평가되었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해 쓰기 전에 이세돌 9단의 엄청난 정신력, 집중력, 실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알파고라는 것이 CPU 1,202개와 GPU 176개의 네트워크로서 가격이 약 100억 원이나 한다는 얘기를 읽었습니다. 초보적인 컴퓨터 게임도, 그것도 제 수준에 맞추어서 살살 해 주는 게임조차도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저 사람이 그런 알파고를 상대로 바둑을 둘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신기하고 탄복스러울 따름입니다. 저는 전략 게임들을 좋아해서 옛날에 잘난 체하면서 아들에게 오목, 체커스, 체스, 스타크래프트, 고스톱, 모노폴리 등의 전략 게임들을 가르쳤는데 게임마다 가르친 후 두세 달 뒤에는 다 졌습니다. 그것도 제 아들이 아직 초등학생일 때 얘기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아예 게임계에서 조기은퇴를 해 버린 사람입니다. 모노폴리는 전략도 필요하지만 운도 꽤 중요한 게임이라 아직 승산이 좀 있어서 요즘도 가끔 하지만요. 그러니, 그런 제가 인간 대표 선수가 인공 지능과 치른 역사적 게임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고 이세돌 9단이나 알파고 양쪽 모두의 실력에 대해 저는 그저 탄복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알파고의 승리는 과대평가되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뭐 아직은 인간 지능이 쓸만하다는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파고의 기량은 저 같은 사람이 감히 깊이를 측량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니까요. 다만, 알파고의 승리는 어디까지나 컴퓨터가 잘 하는 게임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이긴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저는 수영을 잘 못하는데 그런 제가 많이 노력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돌고래와 수영시합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 설사 마이클 펠프스가 돌고래보다 빨리 헤엄을 쳤다고 한들 그게 보통 사람들에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또 제가 치타와 달리기 시합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또 설사 유세인 볼트가 아프리카의 어느 배 부르고 게으른 치타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새의 기량과 물고기의 기량과 치타의 기량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요는, 인간이 뛰어난 분야와 컴퓨터가 뛰어난 분야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바둑은 체스보다는 경우의 수가 훨씬 더 많은 아주 복잡한 게임이고 마스터하는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고 정말 정말 빨리 계산해서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해 나가는 것은 확률과 계산과 데이터의 영역이므로 컴퓨터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파고의 기량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 데이터 분석, 확률 계산,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 등은 본래 컴퓨터가 잘 하는 분야인데 바둑을 둔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고 그러므로 바둑은 컴퓨터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영역인 것이지요. 제 의견에는 알파고가 이긴 것이 대사건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이 그런 CPU 1202개와 GPU 176개의 네트워크와 게임을 해서 1승이라도 거둔 것이 기적입니다. 소름이 끼치도록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알파고가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인간 천재 한 사람을 이겼다고 해서 그것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컴퓨터는 정말 똑똑하지만 또 정말 멍청하거든요. 알파고는 열심히 데이터를 입력하고 분석하고 계산을 했지만, 그러는 동안 자신이 지금 바둑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이세돌이라는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기(실은 연산 동작)가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모릅니다. 즉, 자신이 잘 하는 아주 좁은 분야 너머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대단하지만 아직은 천재-바보입니다.

 

 

인공 지능이 번역을 바둑처럼 정복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몇 가지 이유로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인공 지능이 바둑을 잘 했다면 바둑과 유사한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동일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도록 인간이 많이 도와주어야 하겠지만요. 그런 면에서 인공 지능 개발과 발전은 인간의 미래에 밝은 미래를 약속해 줍니다. 어떤 분야가 그럴까요? 일단 미국에서는 구글이 개발한 인공 지능이 이미 거리에서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제가 사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도 그런 날을 대비해 법을 정비하고 있으니까 인공 지능이 운전하는 차를 저희 동네에서 볼 수 있을 날도 그다지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이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값이 싸질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외에도 굉장히 많겠지만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의료 분야인데, 의사의 진단도 인공 지능이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나 쉽게 의사가 될 수 없고 의사가 존경받는 이유는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보통 사람들보다 학습을 훨씬 열심히 그리고 정말 많이 하였고 경험도 많이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많은 학습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개별 환자의 구체적인 데이터를 앞에 놓고 논리적 추론과 통계적 확률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 진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공 지능이 그런 진단을 못할 리가 없습니다. 많은 데이터를 기억하고 분류하여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을 골라내는 것도 컴퓨터가 잘 하는 영역이거든요. 확실치 않을 때는 몇 가지 가능성을 순서대로 나열해 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잘 하는 분야에서 컴퓨터의 처리 능력이 대단한 진보를 보였다고 해도 그 분야를 벗어난 다른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저는 봅니다. 특별히 인공 지능이 과연 번역을 할 수 있을지는 저로서는 대단히 의문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이세돌 9단이 하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일은 컴퓨터가 잘 하는 영역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어는, 아니 최소한 모국어는 누구나 쉽게 배워 사용하는 것이니까 언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언어는 얼핏 보기와는 달리 사실 매우 복잡한 현상입니다.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입니다. 인간의 언어는 정확성을 추구하는 측면도 있지만 끊임 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확장하고 기존의 것을 비틀고 엉뚱한 것에 연결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통제하고 표준화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비유, 은유, 풍자, 익살, 냉소, 수사적 표현 등은 상황에 대한 이해 능력, 그리고 화자에 대한 공감과 감정 이입(empathy)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구체적인 예는 끝도 없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미 제 말을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저런 것을 바둑 잘 두는 알파고 같은 인공 지능이 이해할 수 있을지 저는 정말 의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번역은 그 복잡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인데, 두 언어는 서로 배경이 되는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번역은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언어는 생각을 하는 방식이고 생각이 뻗어가는 길이기 때문에 언어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두 언어권(문화권)이 같은 틀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틀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합니다.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는 틀 자체가 언어권마다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눈, 엄마)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 1:1 대응이 되지만(물론 예를 단순화하기 위해 동음이의 현상은 제외했음. 심지어 그렇게 해도 오직 그 문화/언어권 안에서 형성된 그 단어의 느낌, 호/불호, 격식의 정도, 다른 콘텍스트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확장가능성 등은 옮기는 순간 왜곡되거나 아예 사라지기 일쑤임), 그 정도를 넘어서면 추상 명사만 해도 단어 수준의 1:1 대응이 잘 안되는 것이 언어 세계입니다. 추상(abstraction)은 한 문화 속에서 그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문화에서는 당연히 존재하는 어떤 추상적 개념이 다른 언어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컨대 최근에 많이 쓰이는 ‘갑질’이라는 개념은 한국 사회라는 구체적인 콘텍스트 안에서 생겨난 단어인지라 북미인을 위해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려고 할 때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표현을 찾아서 대충 분위기를 전달할 수는 있어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소실됩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표현해도 그게 정답이 될 수가 없고 다른 대안이 생겨날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 컴퓨터가 무척 싫어하는 상황입니다. 이번에는 영어 단어의 예를 들면 involve라는 동사는 영어에서는 일상 대화에서도 쓰일 정도로 잘 알려진 단어이지만 이 흔한 단어의 정확한 대칭어가 한국어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단어로 바꾸어 주거나 아예 여러 단어로 녹여서 표현해 주어야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원문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가지고 타겟 언어를 사용한 과격한 재배열(radical reformulation) 내지 재상상(re-imagination)이 필요하지요. 수식 계산이 쓸모없어지는 대목입니다. 단어 수준에서만 해도 그런데 문장 수준으로 가면 더 복잡해집니다. 기계 번역이 어색한 이유는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문화마다 혹은 언어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침!”은 정확한 번역일지는 몰라도 결코 자연스러운 번역도 아니고 훌륭한 번역도 아닙니다. 그건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Well, I am not exactly the nicest person.”이라는 문장을 “글쎄, 나는 가장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번역하면 문법적으로는 정확한 번역이지만 뻔히 보이는 어설픈 번역입니다. 그건 무례한 행동을 일삼으면서 자신의 무례함을 별로 뉘우치지 않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그래서 어쩌라고? 배째!” 하는 식으로 내뱉는 말이거든요.  또 “Never mind.”가 “그냥 두세요.”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한숨을 내 쉬며 “관둬, 이 얼간아.”하며 상대방의 무능이나 무관심을 경멸하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언어는 상황과 사회적 관습과 문화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확률과 경우의 수 계산으로 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호감을 얻기 위한 상호모방 때문에 예기치 못한 새로운 표현법이 꽤 짧은 시간 안에 늘 새로 생겨납니다. 그런가 하면 상당히 훌륭한 표현법도 너무 자주 혹은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쓰이게 되면 어느 새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진부한 표현으로 전락합니다.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변화, 추세와 함께 언어도 계속 진화하는 것이지요. 언어와 번역이 바둑판과 다른 점이 좀 명확해졌나요? 저런 이유들 때문에 번역은 컨텍스트를 잘 파악하는 인간에게도 정말 어려운 작업입니다.

 

화제를 조금 돌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기계 번역 얘기를 조금 해 보겠습니다. 기계 변역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조롱하는 것은 참 쉽습니다. (그러면서도 쉽게 버리지도 못하지요. 아마 기계 번역은 점점 더 우리 생활에 가까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계 번역과 인공 지능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현재의 기계 번역이 발전해서 인공 지능의 번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틀린 일입니다. 이 말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현재의 기계 번역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은 기계 번역이란 구글같은 큰 회사가 가지고 있는 어마무시한 컴퓨터가 입력 언어를 분석하고 그것을 타겟 언어의 문법에 대입시켜서 무언가를 산출해 낸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몇십 년 전에 그런 모델로 기계 번역을 발전시킨 모델이 있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방향은 상당한 정도로 포기한 상태입니다. 지금 기계 번역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논리적 추론으로 문법에 의지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통계적인 선택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하이브리드이지만요.) 왜 그럴까요? 30년 넘게 수십 억 달러를 쏟아붓고도 왜 아직 그 별것 아닌 문법도 정복하지 못하고 포기했을까요? 그건 제가 위에서 잠시 예를 들어 보여드린 바와 같이 언어라는 것이 겉보기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이라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통계적 선택을 하는 방향이 제가 보기에는 매우 현명한 선택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앞으로도 기계 번역은 그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아세요? 그러는 한 기계 번역은 앞으로 100년이 가도 1000년이 가도 결코 인간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걸요. 물론 상당히 좋아질 가능성은 있지만 결코 인간을 앞서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계 번역은 어디까지나 통계적 선택이니까요. 계속 발전하는 사회와 문화와 언어 속에서 기계 번역은 늘 인간을 따라오는 역할밖에 못합니다. 인간은 계속 가르치고요.

 

 

미래는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즐기며 준비하는 사람의 것이다

글을 맺어야 하는데 큰 일입니다. 이런 주제의 글을 어떻게 맺어야할지…. 별 대단한 지식도 없는 제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그냥 가볍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저는 컴퓨터는 인간의 언어나 번역을 정복하기에는 (적어도 아직은) 한참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공 지능의 IQ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인공 지능이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정말 먼 미래에 대해서야 누군들 제대로 예측하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먼 미래에 대한 예측이 지금 번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번역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 예컨대 (정말 정말 많이 양보해서) 50년 후에 인공 지능이 상당한 정도로 번역을 잘 해서 번역료가 곤두박질을 치는 사태가 생긴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그런 미래 예측 때문에 좀 더 안전한 다른 직업으로 전환을 하시겠습니까? 전환을 한다면 어떤 직업으로요? 인공 지능이 번역을 잘 하는 시절이 온다면 지금 현재 우리가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 인공 지능이 못할 것이 뭐가 남아 있을까요?

 

2) 설사 인공 지능이 정말 언어를 인간처럼 배울 수 있다고 해도 그런 것이 현실화되기는 어렵습니다. 전기차 기술은 1970년대에 이미 개발되었지만 실제로 시장에 나온 것은 2010년대가 되어서입니다. 또 1960년대에 인간이 달에 갔지만 그 뒤로는 아무도 못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것이 현실화되려면 기술 외에도 다른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거나 혹은 많은 방해 요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힘이 받쳐 주어야 하고 그런 힘이 방해하는 힘보다 커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인간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공 지능을 개발할 만한 정치적 경제적 동기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이 세계의 기아 문제, 테러 문제, 전쟁 문제, 물 부족, 기후 변화, 암이나 에이즈같은 질병 등 피부에 와닿는 문제도 대부분 해결을 못하고 있는 인류가 과연 그토록 어려운 인공 지능의 (특정) 언어 학습에 엄청난 자원을 투자할 수 있을지 혹은 하려고 할지 저는 의문입니다. (설사 어느 인공지능이 한 언어를 인간만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도 다른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또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3) 기술 변화는 앞으로 번역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 매우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 위에서 예로 든 의료 분야의 변화를 생각해 보지요. 인공 지능이 사람을 진단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두려운 일일까요? 의사들의 대량실직이 걱정되시나요? 잘 모르긴 하지만 제 생각에는 별로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선 인공 지능이 현재 인간 의사보다 (대체로) 더 정확한 진단을 해 낸다면 좋은 일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빨리, 더 저렴하게 의료 혜택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세상이 왔을 때 의사의 수가 더 늘어날지 더 줄어들지도 실은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의사의 역할은 좀 바뀌겠지요. 엑스레이나 MRI가 생긴 이래로 진단에서 의사의 역할이 바뀐 것처럼요. 그런 세상에서 인공 지능을 평가하고 감시하고 교정해주고 지도(?)하는 의사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고, 또 환자에게 인공 지능의 진단을 설명해주고 조언해 주는 역할도 매우 중요해지겠지요. 그러나 의사가 없어질 것이란 예측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쉽고 빠르고 값싼 인공 지능 진단 덕분에 오진을 일삼는 돌팔이 의사들과 그들에 의해 피해를 입는 일은  많이 없어지겠지만, 의사라는 역할은 그런 때에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고 나아가 지금은 하지 않는 다른 중요한 역할도 많이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 미래를 위해 의학 교육이 준비해야겠지요.

 

번역과 번역업계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계 번역이 나온 뒤에 번역 물량이 줄어들고 많은 번역가들이 실직자가 되었나요? 사람들이 다 어느 정도 수준의 번역을 쉽고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번역가의 번역료가 싸졌나요? 천만의 말씀이죠. 기계 번역 수준으로밖에 번역을 하지 못하는 소위 “초벌 번역가”(제발 이런 표현 좀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번역이 무슨 도자기도 아닌데.)는 설 자리가 없지만(실은 기계 번역이 나오기 이전에도 그런 사람을 위한 자리는 어차피 별로 없었습니다), 일반인들의 외국어 이해 수준도 높아졌고 언어권 사이의 소통이 원활해지면서 제대로 된 번역과 통역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제 짐작에는 인류 역사상 번역가에게 이렇게 좋은 시절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대로 번역을 하는 사람치고 기계 번역을 경멸하는 사람은 많아도 두려워하는 사람은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제가 설명한 이유로 앞으로도 기계 번역은 인간을 늘 따라잡으려고 하지 결코 동등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기계 번역은 번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번역가의 친구요 잘 이용하면 상당히 유용한 도구입니다. 저는 사실 기계 번역의 질이 하루빨리 더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지금보다 좀 더 많이 이용하게요.

 

그러니 번역가 여러분, 그리고 번역을 생각하는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인공 지능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경쟁하는 사람들입니다. 걱정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다른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언어권의 사고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십시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제가 고민이라고 했지만 실은 그 “고민”은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인간 정신의 기지개, 운동, 탐구, 모험이며 즐기는 사람에게는 그게 “고민”이 아닙니다. (제가 그 “고민”을 하는 형태는 영화 보기, 만화책 읽기, 수다 떨기, 사전 찾아보기, 이런 저런 책과 잡지 읽기, 사람들에게 질문하기, 그리고 당연한 것이지만 번역하기 등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돈을 주고 번역을 의뢰하는 이유는 우리가 맨날 그런 “고민”을 하고 지내는 신기하고 이상한(특별히 인공 지능에게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7 Comments

  1. 그간 제가 읽은 언어와 인공지능 관련 칼럼 중 단연 빼어난 글입니다. 통찰력이 대단하십니다.
    유익한 글 고맙습니다.

  2. 정말 엄청난 글입니다. 인공지능을 잘 모르시는데 이렇게 쓰신다는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유익한 글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무식하다고 혼을 내면 어쩌나 했는데 다들 친절한 말을 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3. 선생님 올 때마다 매번 감탄하게 됩니다. 비슷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네요.

  4. 유익하고 자세한 글,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관점을 가집니다. 알파고는 승리했기에 위대해졌습니다. 고게임은 승리자가 조명받는 경기로, 달리기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가 그렀습니다. 그리고 인간사에서 조명은 늘 그랬듯, 버스는 정확과 사고없으면 최고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알파고가 이점을 충족시켜 인간 추구의 한계성을 확장시키는 선도자가 되리라봅니다. 물론 논의되어야할 의미있는 깊이들이 여러곳에 돌출해 있지만 여기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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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