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모모씨의 일일

글쓴이: 책과 강아지를 사랑하는 번역가 애니 조

https://blog.naver.com/winnerjo

 == 서평 ==

생계형 번역가의 기쁨과 슬픔

서평 제목을 알랭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따왔습니다. 산뜻하고 평온해 보이는 표지 느낌과는 다르게 번역가의 치열한 일상과 희로애락이 가감없이 쓰인 이 책은 과학책 번역하는 남자 노승영씨와 스릴러 번역하는 여자 박산호씨가 1년 반 가까이 온라인 매체에 쓴 칼럼을 엮은 에세이입니다.

저 역시 번역을 밥벌이로 삼고 있어서 그런지 책 제목이 ‘번역가 모모씨의 일일’인데 자꾸만 ‘열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 전업 번역가는 말 그대로(literally) 열심히 일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죠.

보통 직업이 번역가라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영어 잘하시겠네요.”, “시간 여유가 좀 있겠네요.”, “육아하면서도 일하기 좋겠어요.” 등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실제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영어를 잘해야 하지만 영어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시간은 관리하기 나름이지만 대부분은 직업병을 달고 지내며 바깥 세상과 스스로를 격리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두 저자는 번역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현실적 고민과 애환, 번역가 지망생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할 만한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감없이 담았습니다.

완벽한 번역은 없지만 최선을 다하라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저자의 솔직함입니다. 모든 글이 솔직 담백하지만, 그 중에서도 노승영 번역가가 상당히 부끄러울 수 있는 과거의 오역 사례를 소개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학 전문 번역가로 잘 알려졌고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선정한 ‘2014년 올해의 번역가’로도 뽑힌 베테랑 번역가의 고백은 오역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후배 번역가에게 위로가 되는 동시에 용기도 줍니다.

번역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성실함, 쪼잔함, 겸손함, 집요함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중요한 것을 꼽자면 ‘강한 멘탈’을 들 수 있다. 번역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오역을 저지를 수밖에 없기에, 편집자나 독자에게 오역을 지적 받을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직업에 회의를 느낀다면 번역가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51쪽)

 하지만 번역가로서 최선을 다했다면, 사전의 마지막 의미까지 찾아보고, 구글 마지막 페이지까지 검색하고 머리가 터질 때까지 고민했다면 자신의 마지막 판단을 믿고 당당하게 선택하기 바란다. (54쪽)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시대 번역가의 운명은?  

얼마 전 해외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호기심에 자막을 한국어로 설정해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자동 번역된 문장이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해외여행을 갔을 땐 그 나라 언어를 못해도 스마트폰의 번역기로 바로 소통할 수 있고, 심지어 약국에서 제품명만 사진을 찍으면 텍스트 이미지를 인식해서 번역되는 어플도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앞으로 내 생계가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든 적이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번역가들은 한번쯤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박산호 번역가 역시 2017년 네이버의 파파고 서비스를 보고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저자가 나름대로 고민하고 기계번역에 대한 조사를 통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나마 문학과 철학 같은 분야는 당분간 기계번역으로 대체하기 힘들다고 본다면, 그때까지라도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실력의 날을 다듬는 수밖에 없다.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번역이란 아마도(?) 기계는 가질 수 없는 풍요로운 정서와 상상력을 갖춘 번역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인간다워지기로 했다. 그러자면 기계적으로 옮기던 습관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49~50쪽)

번역은 즐거운 고통의 연속

번역에 대한 보상은 노력이 아니라 결과를 기준으로 주어지며 결과는 질보다 양으로 측정된다. 실력보다 속력이 중요하다. 물론 실력이 향상되면 번역료가 어느 정도 인상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초보와 대가가 받는 번역료에는 큰 차이가 없다. (94쪽)

비슷한 실력의 번역가가 있으면 같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을 소화하는 번역가에게 일감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속력도 실력이고, 체력도 실력입니다. 다른 분야처럼 연차가 올라가면서 수입이 비례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보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습니다. 가끔씩 작업 진도는 안 나가는데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 이 가성비 낮은 일을 왜 하고 있나 라는 자괴감에 우울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내용을 작업할 때, 아름답고 의미 있는 문장을 옮기고 있을 때,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남들은 모르는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도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보람도 느낍니다. 이처럼 번역은 즐거운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 일은 끊임없이 텍스트와 대화를 나누며 읽고 또 읽는 생활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또한 옮길 수 없는 텍스트를 옮기는 일에 비애와 슬픔을 느끼겠지만 그마저도 즐길 경지에 오르면 굉장히 강력한 무기가 생기는 셈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이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음미할 준비가 됐다면, 번역의 세계로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9쪽)

번역 잘하는 방법에 관한 책은 꽤 많습니다. 번역에 관한 기술보다는 번역 한 번 해볼까 하는 분들, 번역가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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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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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