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적성(2): 언어 적성과 언어 능력

이번 글에서는 번역가에게 필요한 적성과 자질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사실 누가 그런 것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것에 저의 생각을 좀 보태어 보겠습니다.
번역 비즈니스는 언어 비즈니스입니다. (또한 지식 비즈니스이고 서비스 비즈니스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따라서 뭐니뭐니 해도 번역가로서 갖춰야 할 첫 번째 자질은 언어 적성입니다.

 

여기서 제가 한 가지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흔히들 번역을 하는 사람은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두 가지 언어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는 일이므로 단순히 외국어 하나 잘 이해한다고 해서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하신다면(한국어가 모국어인 분들은 대부분 이렇게 하게 되죠), 한국어 실력이 대단히 뛰어나야 합니다. 한국말 지금까지 잘 하고 문제 없이 살아왔는데 내 한국어 실력이야 당연히 아무 문제 없지 하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한국어 말하기가 아니라 글쓰기 실력이 중요하거든요. 사실 요즘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 보면 여기 글 쓰는 기자는 고등학교라도 졸업했나 하는 의심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철자는 차치하고라도 도대체 너무도 모호하고 두루뭉술하게 글을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자기가 쓰는 말의 정확한 뜻도 모르고 쓰고 있다는 의심이 가는 때도 자주 있습니다. 댓글에 있는 한국어는 두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분들은 영어 문법과 단어를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번역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본인에게는 치명적인 실수이자 시간 낭비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민폐를 끼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적성과 관련해서 이런 테스트를 스스로 해 보세요. 앞으로 30분 동안 여기저기 있는 인터넷 기사나 댓글을 읽어 보시고 짜증이 나시는지 살펴보십시오. 내용 때문이 아니라 글 쓰는 방식이나 정확성 때문에 말입니다. 만약 정말 짜증이 나시면 일단 언어적 민감성 테스트는 통과하셨다고 봅니다. 국어를 잘 사용할 줄 모르고 번역을 시작하는 것은 정말이지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습니다. 장래성이 전혀 없습니다. 포기하십시오. 만약 영한 번역을 하실 계획이라면 어찌 보면 영어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어 실력이거든요.

 

두 번째로 영어인데(저는 영어와 한국어 번역가이므로 외국어를 말할 때는 늘 영어입니다. 다른 언어로 번역하시는 분들은 이해해 주십시오), 영어도 잘 쓴 문장과 못 쓴 문장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민감성은 있으셔야 합니다. 글쓴이가 지식인인지, 치밀하고 조리가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마구 떠벌이는 사람인지가 머릿 속에 그려지지 않고, 영어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면 역시 번역은 여러분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

 

 

자, 지금까지 언어 적성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번역을 시작하시려면 적성뿐만 아니라 능력도 상당한 정도로 갖추어져 있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세상에 누가 외국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외국어를 정말 잘 하게 된 다음에야 번역을 시작하려고 하면 평생 못합니다. 거꾸로, 언어 적성이 있고 능력도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면 번역을 시작하심으로써 능력이 급격히 향상될 수 있습니다. (나중에 3차원적 사고에 대해 글을 하나 쓰겠습니다.) 아무튼 시간이라는 변수를 넣어서 생각하면, 잘하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잘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언어 적성이 정말 중요하다. 이 테스트에서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하지 말라.
  • 언어 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까지고 완벽해질 수는 없고 번역 일을 하다 보면 점점 향상될 수 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2 Comments

  1. 안녕하세요, 글 감사히 잘 봤습니다~
    추천해주실만한 한국어 공부법이 있을까요?
    지금 떠오르기로는 신문 읽기, 책 읽기 등이 있을 것 같은데
    더 효과적으로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궁금합니다~

  2. 외국어 능력만큼 국어 능력이 중요하다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문학적인 표현이나 미사여구를 잘쓰고 창작하는 능력보다는 우리말을 명료하게 그리고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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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