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와 낙담의 골짜기

안녕하세요? 특허 번역가 폴라베어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6월부터 번역 요청이 꽤 들어와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좋은 정보를 알려드리고 싶은 욕심에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해서 포스팅이 늦었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낙담의 골짜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은 직선형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 현상이나 사회 현상은 곡선형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예상과 실제 사건이 다르게 일어나다 보니 그 사이에는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장에 관한 예상과 실제 사이에도 차이가 발생하는데요. 이를 낙담의 골짜기라고 합니다.

 

Clear, James. Atomic Habits: Tiny Changes, Remarkable Results : An Easy & Proven Way to Build Good Habits & Break Bad Ones. New York: Avery, an imprint of Penguin Random House, 2018.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시작하지만 처음에는 예상보다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예상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커져만 갑니다. 어떤 사람은 점차 벌어지는 간극을 보고 ‘내가 재능이 없는 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하고 있나?’라고 생각한 나머지 노력을 멈추고 맙니다. 하지만 예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가장 큰 지점을 지나면, 간극은 계속해서 줄어 듭니다. 이내 간극이 사라지더니 예상보다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지게 됩니다. 드디어 낙담의 골짜기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는 마치 적금과 같습니다. 세후 연 1%의 이자를 받는 적금 상품은 100만 원을 넣었을 때 1년 후 101만 원이 됩니다. 적금이 만기가 되어 다시 같은 상품에 101만 원을 넣는다면? 그다음 해에는 102만 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102만 1천 원이 됩니다. 뭔가 예상과는 다르게 증가하는데 감이 안 잡히시죠? 조금 더 극단적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세후 일 1%의 이자를 받는 적금 상품에 100만원을 넣었다고 가정해보죠. 하루가 지나면 101만원, 이틀이 지나면 102만 1천 원이 통장에 있습니다. 30일이 지나면 얼마가 될까요? 100만에 1.01을 30번 곱해보세요. 약 135만 원 정도 됩니다. 원금보다 1.35배 증가한 금액이죠. 1년이 지나면? 놀라지 마세요. 약 380만 원이 됩니다. 원금보다 3.8배가 증가한 금액이죠. 이렇듯 복리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번역가 또한 낙담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됩니다. 영어와 한국어(다른 언어쌍을 준비하시는 경우 해당 언어쌍)를 공부하다보면 처음 생각보다 실력이 더디게 오를 수 있습니다. 여러 에이전시에 연락을 해서 샘플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번번이 떨어집니다. 시간이 점점 지나 합격한 에이전시가 늘어나지만 일감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일감이 주어지면 업무 절차가 복잡하고 받은 일감은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열심히 해주면 고맙다는 말만 남긴 채 연락이 끊어졌다가 몇 개월 후 다시 연락이 오면 다행이고 연락이 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낙담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영어와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모르는 에이전시에서 먼저 연락이 옵니다. 일감이 점점 더 많이 주어지며, 업무 절차는 점점 더 익숙해집니다. 정기적으로 일감을 주는 PM이 한두 명 생깁니다. 드디어 낙담의 골짜기를 벗어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번역을 좋아하고 번역에 소질이 있다면, 번역가가 되기 위한 여정을 포기하지 마세요. 누구나 처음에는 낙담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낙담 없이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습니다. 낙담을 충분히 경험하고 잘 이겨낸다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낙담의 골짜기를 기억하세요. 성장하고 있지 않아 보여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폴라베어
폴라베어

폴라베어는 주로 영한 바이오 특허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7 Comments

  1. 참 시기적절하게 도움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지금 골짜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으려니 위로해봅니다ㅎㅎ 제 경우에는 번역가로 전업하고 사람에 치일 일 없고 다른 스트레스가 없어서 정말 좋은데 딱 한 가지..자기 실력에 대한 자괴감이 정말 엄청납니다. 기껏 몇 번을 읽어놓고 나중에 실수를 발견한다던가 스스로 오역을 찾아낸다던가 했을 때 정말 괴롭습니다. 업체에서 알아차렸으려나 조마조마하고 실력이 없는 걸까 고민도 많이 되고 그러네요..ㅎㅎ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려나요? 보이지 않게 실력이 늘고 있다는 말 믿고 조금 더 힘내보겠습니다..ㅎㅎ 폴라베어 님, 감사합니다!

    •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실수 때문에 PM에게 지적받은 기억이 나네요. 오역이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두 번 세 번 계속 검토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골짜기가 가장 깊은 시기부터 눈에 띄는 성장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아직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함께 열심히 노력해요!

  2. 읽으면서 크게 위안을 받았습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아무리 검사기를 돌려도 완벽하지 않은 것 같고,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괜히 오역으로 지적받을 것 같고, 번역 일을 오래 했는데도 새로운 에이전시의 샘플 테스트에 응했다가 지적이라도 받으면 엄청나게 상실감도 생기고, 에이전시와 번역료로 실랑이라도 벌이고 나면 자책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좋은 글을 읽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기를 바라며 멀리서 응원합니다.

    •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진짜 꽃길만 걷더라고요. 장미꽃길 말이죠. 그래도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하루하루 행복합니다.

  3. 아! 저도 지금 낙담의 골짜기예요. 그래프 보는 순간 마음이 확 트이더라고요!! 사건 하나하나에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낙담이라는 감정 자체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긴 시간의 흐름 속에 현재 상황이 어디 쯤인지 고찰해 보아야겠어요.

Leave a Reply to homimadridCancel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