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한걸음

이 제목의 글을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카톨릭 신자로 가끔 보이는 라틴어 구문이 궁금하던 터에 십여 년 전에 제가 보기에 괜찮은 라틴어 교본을 우연히 접하고 한 번 통독한 정도가 전부인데다가 그마저도 나이가 듦에 따라 희미한 기억 속에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어나 그 밖의 유럽어 문장에서 라틴어 단어 또는 구문이 그대로 쓰이는 경우를 무척 많이 보게 되지요. 그대로 외워서 활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게 뭐지? 하는 궁금증은 다들 느껴 보았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라틴어는 모든 로망스 언어군(불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루마니아어 등)을 파생시킨 모어일 뿐만 아니라 영어에도 수많은 단어(50% 이상이라고 합니다)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나라에서는 학생들이 라틴어를 필수 과목으로 학습한다고 하지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공부해야 우리말과 글을 더 풍부하고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이유와 다름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라틴어를 학습하게 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우스개 소리지만 좀 있어 보이려고? 뭐 그런 점도 있고 거창하게 부풀리면 인문학적인 소양을 키운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라틴어를 공부하게 되면 영어(또는 기타 유럽어)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고 기타 로망스 언어군을 학습하기에도 쉽다고 합니다. 기억력 좋은 젊은 분들은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한 놈만 패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요즘은 라틴어에 대한 잘 만들어진 여러 학습 매체를 접할 수 있습니다만 과거에는 라틴어에 관심이 있었더라도 접근성 측면에서는 제약이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한국어로 된 교재들이 제한적이었을 뿐 아니라 첫 장부터 문법 위주의(사실 문법은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합니다) 서술이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도 힘들게 하지요. 라틴어가 어떤 언어인지 감이 잡히기 전에 라틴어 포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블로그에서는 제가 처음으로 라틴어에 흥미를 가지게 해 준 텍스트 일부를 여러분께 소개하여 볼까 합니다. 흥미를 가지게 되면 의욕이 생기고 적극적으로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 나가게 되니까요. 라틴어의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語順自由形’이자 語尾가 변하는 ‘屈折語’인 라틴어의 특징을 나름 보여줍니다.

 

 라틴어는 굴절어입니다. 이 말은 문장 속에서의 단어의 역할에 따라 해당 단어의 마지막 음절(들)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Mulus silvam spectat   The mule is watching the wood.

아시다시피 여기서 the mule은 watching하고 있고 the wood는 being watched되고 있습니다. The mule은 이 문장의 주어이고 the wood는 목적어이며 주어는 ‘doer’이고 목적어는 받는 쪽(done to)입니다. 라틴어는 주어와 목적어가 각각 다른 어미(ending)를 가지게 함으로써 이 구분이 명확히 드러나게 합니다.

Mulum silva spectat    The wood is watching the mule.

이제 silva는 끝에 ‘m’이 없으며 mulusmulum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으로 silva는 주어가 되고 mulum은 목적어가 됩니다. 영어 어순은 상대적으로 엄격하여 예컨데 주어인지 여부를 그 단어의 문장 속의 위치에 의해 인식하며 그 단어의 어미(ending)로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틴어의 어순은 이에 비해 유동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주어는 목적어 앞에 오고 동사는 문장의 끝에 오지만 특별히 강조하거나 리듬을 살리기 위해서 가끔 위치가 변하기도 합니다. 읽기란 문장의 다음에 오는 단어를 예상하고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영어에서는 이 기능을 목적어가 합니다.

 Today the milkman delivered … (bottles of milk가 예상되는 목적어입니다. 물론 다른 목적어도 가능합니다)

라틴어에서는 주로 동사가 문장의 끝에 오기 때문에 목적어가 아니라 행위를 예상하게 됩니다.

 Today the milkman … two pints of milk … (delivered가 독자가 먼저 예상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만 다른 행위도 예상할 수 있겠지요)

* spectat: 원형은 spectare 3인칭 주어에 대응하는 동사 변화형

 

(이제 조금 긴 라틴어 문장을 해석해 봅니다. 주석 참조하시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Paulus in silva ambulat. Mulus cum Paulo ambulat. Mulus non Paulum sed sacrinam portat. Fessus est Paulus et mulus est lentus. Mulus silvam non amat. Mulus silvam spectat. Silva mulum spectat. Mulus est territus.

Paul이 숲 속을 걷고 있습니다. 노새가 Paul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노새는 Paul이 아니라 자루를 나르고 있습니다. Paul은 피곤하고 노새는 느립니다. 노새는 숲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새가 숲을 봅니다. 숲은 노새를 봅니다. 노새가 두려워합니다.

* 주석

amat: likes, loves 3칭 주어에 대응하는 동사 변화형임 원형은 amare

ambulat: walks, is walking 3인칭 주어에 대응하는 동사 변화형임 원형은 ambulare

cum: with

est: is

et: and

fessus: tired 대응하는 명사의 格에 따라 어미 변화함

in: in, on

lentus: slow 대응하는 명사의 격에 따라 어미 변화함

mulus, mulum, mulo: mule 명사의 격에 따라 어미 변화함 (mulo는 cum과 결합 시의 변화형-탈격(奪格))

non: not

Paulus, Paulum, Paulo: Paul 명사의 격에 따라 어미 변화함

portat: carries, is carrying 3칭 주어에 대응하는 동사 변화형임 원형은 portare

sarcina, sarcinam: bag

sed: but

silva, silvam: wood

spectat: watches, is watching

territus: scared 대응하는 명사의 격에 따라 어미 변화함

 

라틴어는 명사 형용사의 격변화, 동사의 인칭에 따른 변화를 잘 익히는 것이 요체입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니 한 걸음 뗀 기분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천리 길 끝자락에는 키케로의 ‘우정론(De Amicitia)’ 같은 고전을 원문으로 읽어 보는 것을 목표를 세워 놓으면 어떨까요?

그러려고 저는 서가에 꽂혀 먼지 덮어쓴 책을 다시 꺼내 볼까 합니다. 작심 3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

초당
초당

초당은 귀촌하여 주로 법률분야 문서를 한영/영한 번역하는 번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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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