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섭(同事攝)

‘동사섭’은 불교의 사섭법[四攝法: 布施攝(남김없이 베풂) · 愛言攝(따뜻한 말로 도움) · 爲他行攝(남을 위함) · 同事攝(그들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함께함)] 중의 한 개념입니다. 인생의 반환점이랄 수 있는 40대 초반에 동사섭 수련회에 참가한 적이 있고 그 때의 감동을 기록해 둔 메모가 아직 있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배운 대로 살려고 버리지 않고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此際에 스스로 回心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동사섭의 개념에 관해서는 인터넷상(www.dongsasub.org)으로 잘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 수련회(일주일)에 참가해야 그 알짜배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글로 전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부분적이나마 전달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주관하시는 분은 용타(龍陀)스님으로 전남대 철학과(입학 아니면 졸업 수석하신 분)를 나오신 후 출가하고 스님 신분으로 고등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를 10년 동안 하신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입니다. 실제 수련회를 주관하셨지요. 수련회 내용은 불교적인 색채를 거의 빼고 진행이 됩니다. 참가자 중에 목사도 있었고 저는 오랜 카톨릭 신자입니다. 카톨릭에도 ME(Marriage Encounter)라는 유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용타스님이 스스로 밝혔듯이 본인이 출가 전 칼 로저스의 Encounter Group의 수행 방식을 경험하고 출가 후 불교적인 프로그램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 냄새는 거의 나지 않습니다.

동사섭은 한마디로 행복해지기 위한 수련입니다. 행복한 감정의 나눔, 자기뿐만 아니라 타인과 사물에 대한 긍정은 그 수단입니다. 두서가 없지만 주관자의 관점에서 몇 가지 적어봅니다.

 

  1. 미세정서(微細情緖)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면서 살고 있습니다. 마음의 층 맨 위 쪽에는 세상의 정보 같은 것이 있고 조금 아래 쪽에는 신념, 주관 등이 자리잡고 있고 맨 아래 쪽에는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그 감정은 수면 밑 빙산의 크기만큼 크기도 하고 그 중 비밀한 감정은 더욱 깊은 자리에 있겠지요. 때로는 깊은 默想이 필요하기도 하겠으나(자칫 우울해질 수도 있으니 주의!) 인생의 행복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쉬 꺼내 놓을 수 있는(미세한) 좋은 정서를 즐거이 쫑알대며 표현해야 합니다. “잘했어”, “오늘 특별히 멋져 보여”, “당신 덕분에 역시 나는 행복한 남(여)자야” 등등. 그러면 아래 쪽 깊은 곳에 있는 비밀한 정서들이 그 위를 덮고 있는 좋은 미세정서들이 증발해 나가면서 스물스물 표면으로 올라와서 더 이상 비밀하지 않은 미세정서화되어 좋은 감정의 나눔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민, 집착 등에서 비롯되는 나쁜 감정들도 순화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감정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세정서를 표현하지 않고 흘려버리면 인생을 흘려 놓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나누면 비밀 영역이 슬슬 사라지고,  恨이 풀어지고, 부정적 감정의 축적 확대 폭발을 예방하고, 인생에 대한 밝은 면을 형성하게 되어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요즘 행복 바이러스 전파하기, 칭찬하기와 비슷하네요.

  1. 자신, 타인 및 사물에 대한 긍정

좋은 감정(정서)은 어떻게 쌓을까요? 이미 있고(旣存) 이미 이룬 것(旣成)에 감사하고(凡事에 감사하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루지 못한 이유가 처한 상황(가족, 상사, 질병, 곤궁 등등 원수 같은 상황)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향하되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부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집착)을 버리고 부처가 되려는 행동을 치열하게 할 뿐. 旣存, 旣成에 대한 감사가 자신에 대한 긍정의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100가지 이상 써 보는 것도 수련의 한 방법입니다(저는 70여가지를 써 놓았네요. 이렇게 많이 썼다니! 그 중엔 “나는 방귀뀌어도 냄새가 안 난다” 이런 것도 ㅇㅎㅎ). 타인에 대한 공경은 누구를 만나든 깊은 인사로 그 분의 인격을 맞이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유형 무형의 사물도 감사해야지요. 이와 관련해서는 수련과정에서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앞에 두고 주전자를 擬人化에서 쓴 명문(주전자의 장점을 이렇게 잘 표현하다니!)을 소개합니다. 수련기간 중에 실제 쓰여진 글인데 첨부하니 일독 권합니다. 하찮은 물건에도 이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이 글과 수준이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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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맑은 물 붓기

대야에 맑은 물이 가득 있습니다. 거기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립니다. 금방 물이 시커멓게 변합니다. 이 오염에 대한 생각에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비율로는 99.9%가 깨끗한 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 버리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세상 개판이여’ 등등의 생각이 그것인데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둘째는 시꺼멓게 된 물에서 잉크를 꺼내려고 시비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문제점만 지적하고 개탄하는 일입니다. 해야 할 일은 ‘맑은 물 붓기’입니다. 그러면 금방 잉크로 오염된 물이 금방 다시 맑은 물이 됩니다. 밝고 맑은 마음 나누기에 다름 아닙니다.

 

     4. 그리고 초월

욕구를 채우면 행복, 채우지 못하면 불행, 놓아버리면 초월하게 됩니다. 역대 성자(아마 불교 성자)들의 초월의 마지막 단계는 몸(욕구)에 갇혀 있는 ‘나’를 몸에서 해방시키는 것(해탈)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약간 불교적이네요. 수련과제는 일종의 상황극인데 지금 바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50년래 돌아오지 못하는 금강굴로 떠날 수 있느냐(휴대폰 쓸 수 없음)? 떠나지 못하면 毒杯를 마셔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합니다. 죽을 수는 없으니 금강굴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나를 주저케 옭매는 ‘사슬’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벌어 놓은 돈? 아직 화해하지 못한 형제? 미뤄 놓았던 효도? 돌아올 탕자의 기다림? 간신히 쌓은 명예인가요? 많은 수련자들이 이 대목에서 흐느낍니다.

 

그 당시 지도 사범 중 한 분이고 정선 아리랑을 구성지게 불러주던 여승이 “나이 40이면 인생을 한 번 돌아보고 앞을 봐야 한다”고 했는데 별로 실감이 나지 않다가 그때 남은 여생의 절반(앞으로 살아봐야 알겠지만)마저 보내고서야 홀연히 생각나서 되새김해 보았습니다. 혹시 동사섭 프로그램이 뭘까 궁금해하시는 분이 있다면 시간을 투자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초당
초당

초당은 귀촌하여 주로 법률분야 문서를 한영/영한 번역하는 번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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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