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번역가 길드 론칭에 바란다: 매절계약 유감 (백희나 작가의 케이스)

행복한 번역가 길드의 베타 버전이 4월 1일 자로 론칭 되었습니다. 길드 사업을 이끄는 TOSEP의 책임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도 길드의 정회원으로 활동하므로 그 위치에서 보면 번역가의 부담도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이제 길드를 통해 번역되어 출간될  번역판에는 번역가로서 제 이름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죠. 원작자의 의도와 작품성을 존중해야 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목표 언어로 만들어 내려면 수많은 고려 사항이 머리를 맴돕니다.

 

어제 매일 하는 습관대로 몇 포털 사이트를 훑어 내려가다가 한국일보의 오피니언-칼럼 섹션에 라제기 선임기자의 ‘작가 대접’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자의 관심은 아마도 ‘백희나 작가의 매절계약 사건’으로 촉발되어 한국 출판계, 지적 재산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문제, 그리고 한국의 작가들이 받는 대접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지적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백희나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제가 된 백희나 작가의 작품 ‘구름빵’을 출판한 출판사는 무려 4,400억을 벌어들였고 그중 백희나 작가에게 돌아간 원작자 수익은 고작 2,000만 원도 안 된다고 합니다. 이를 문제 삼아 긴 법정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그나마 패소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고요.

 

현재의 인터넷 기술, 온라인 상거래, 사용 가능한 지적 네트워크를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사례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한국의 작가들이 받는 저작권료는 작품의 최종 판매액의 평균 8%이고(종이), 전자책은 조금 더 많다고 합니다. 

 

저희가 행복한 번역가 길드를 만들고, TMS, PMS를 개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번역가들만 지적 재산권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모든 지식 노동자,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지식 노동자 중에 자신의 창작품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피터 팬의 지적 재산권이 사회로 환원된다는 기사를 읽고 작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J.M. Barrie가 피터 팬의 캐릭터를 처음 소개한 것이 1902년이었고 그가 타계한 후, 유족에게 물려주었던 저작권이 몇 번이나 갱신되다가 마지막으로 아동병원의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기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J.M. Barrie가 오늘 살아 있었다면 대한민국의 백희나 작가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 백희나 작가가 J.M. Barrie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그래서, 우리 번역가들이 앞장서 해외의 블루오션 시장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현재로는 그것이 번역가와 작가, 각종 창작자 및 기타 컨텐츠 제작인들이 살아남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사회 전반의 압력이 임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법률 개정이나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너무나 소원합니다.

 

이 기사를 보며 오히려 오늘 TOSEP의 CEO로서, 번역가 길드의 정회원으로서 가졌던 부담과 걱정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지적 재산권을 지적 노동자에게 돌려준다는 희망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도구와 그 도구를 이용해 함께 목표를 이루어 나갈 여러 동료에 대한 신뢰가 ‘사회적 및 경제적 정의(social and economic justice)’를 실현하는 데 반드시 그 위력을 발휘할 거란 믿음을 다시 다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길드 정회원 및 준회원 여러분, 그리고 행복한 번역가의 뉴스레터를 받아 보시는 2,000여 회원 여러분의 참여가 계속 되는 한, 우리의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한 번역가’가 될 수 있다고…

행복한 작가, 행복한 만화가, 행복한 유튜버, 행복한 애니메이터가 되도록 도울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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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루크 서는 캐나다 거주 31년차 통역사, 번역가이며, 법무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다양한 사업 경험이 있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루크 서의 ‘머영가영’ 블로그에서 확인하세요.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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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설 ‘채식주의자’, 영화 ‘기생충’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의 콘텐츠는 수준이 매우 높고 번역만 잘 하면 세계가 인정해 줍니다. 반도에 갇힌 한국 콘텐츠가 세계로 흘러나올 수 있는 길을 뚫어 줍시다. 작가와 번역가들이 넓은 세상에서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봅시다.

  2.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브라이언님. 번역가들의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면 우수한 컨텐츠를 많이 발굴할 수 있을 거로 봅니다.

  3. 대단히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제1회 팔만대장경배 영-한번역대회의 규정에 이런 조항이 있는데요. “8 기타: 모든 참가작의 저작권은 토셉이 소유하게 되며, 계약을 통해 번역가에게 저작권료가 만료될 때까지 지속해서 지급합니다.” 이 조항의 의미가 위의 출판사와는 경우가 다른 것인지요?

  4. 안녕하세요, 마리아님. 길드와 토셉의 본질에 관한 심오한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우선 매절계약에 관한 설명은 https://bookbiz.tistory.com/26#:~:text=%EC%B6%9C%ED%8C%90%EC%97%85%EA%B3%84%EC%9D%98%20%EC%98%A4%EB%9E%9C%20%EA%B4%80%ED%96%89,%EA%B3%84%EC%95%BD%ED%95%98%EB%8A%94%20%EA%B2%BD%EC%9A%B0%EA%B0%80%20%EC%9E%88%EB%8B%A4.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매절계약마다 범위나 조건이 다르겠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출판사가 작가에게 일시불 또는 일정 금액을 지불한 후에 출판사가 모든 수익을 갖게 된다는 매질계약의 성질/특수성입니다. 토셉이 길드의 사업을 대행하며 가장 혁신적인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번역작품의 저작권이 토셉에 귀속되는 대신에 토셉은 동 작품에 관한 저작권이 존재하는 한 작가/번역에게 저작권료 지급에 대한 의무를 이행한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무조건 이행해야 하며 변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로 매절계약와 토셉의 방식이 다른 것은 토셉이(출판 대행인) 가져가는 수익의 크기입니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토셉의 수익은 10%로 제한되어있습니다. 즉, 토셉이 일하는 만큼 가져간다는 의미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토셉의 역할은 저작권 감시 및 보호를 위한 모든 활동, 저작권료를 수령하는 모든 활동, 저작권료를 참여 정도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배분하는 활동, 파생 상품의 개발 등이 있는데 이 활동은 저작권이 존재하는 한 계속됩니다. 예를 들어 다국적 시장에 아마존을 통해 판매할 경우 매달 ‘판매액-판매수수료’를 받게 되는데 세계 곧곧의 수많은 판매인을 상대하고, 출판 규격을 맞추고, 다른 통화 기준의 저작권료를 수금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이에게 매달 돈을 나누어 지급하는 것은 개인이 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스스로 1인 출판을 할 경우에는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고 할 수 있겠지요. 토셉과 길드의 역할은 많은 번역가와 기타 지식 노동자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아티스트, 보이스 탤런트, 출판 업무, 등…) 공동 작업을 하고 누구에게 기울어지지 않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구심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5인과 공동작업을 한다면 누가 앞으로 100년 이상 그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 개인을 믿고 100년 시한의 내 권리를 위탁할 분이 있을까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개인이 다른 이를 위해 대행 업무를 하는 옵션은 실행이 불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 중립적인 존재가 참여한 개개인의 이득을 대리해야 한다는 것에 길드 회원이 동의하고, 그들의 사업을 위한 구심점으로 생긴 것이 토셉인 것입니다.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궁금한 사항은 여기에 글을 올리시면 열심히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 루크님, 친절한 답변 대단히 고맙습니다. 잘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참고로 한가지 말씀드릴 점은 위의 매절계약 관련 기사의 취지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4,400억원의 수익부분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니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측은 20억의 수익을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의 출판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4,400억원의 수익은 비현실적인 수치입니다.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앞으로도 길드를 잘 운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마리아님의 조언 감사합니다. 기사를 quote한 것이라 기사 내용에 대한 이의 제기나 반론은 기사가 실린 한국일보에 정정 요청을 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구름빵의 수익이 한국 출판 시장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닌, 세계 10여개 국가에서 십 여년 동안 발생한 것으로 출판과 더불어 파생 상품도 상당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사실 이 블로그에서 제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는 ‘진실과 사실’ 사이에 존재하는 ‘매절계약’의 패악에 관한 지적이니 양해를 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