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프리딩에 대한 이해(1) 소스 문서에서 타겟 문서까지의 과정

이번 포스트부터 몇 번에 걸쳐서 프루프리딩에 대한 이해를 다루고자 합니다. 사실 저만해도 모국어로 글을 써도 다시 읽어 보면 문법, 철자, 띄어쓰기, 적절한 논리적 연결성(flow) 등등 고칠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본다는 것은 그래서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번역가는 이런 것을 습관으로 들여놓아야 합니다(그렇지만 혹시 이 블로그에서 혹시 오자나 말이 안되는 문장 나오더라도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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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모든 글의 일차적 프루프리더는 글쓴이 자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번역에서는 번역가 자신이 1차적 프루프리더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번역 업계에서 프루프리딩이라고 할 때는 남에 의한 것을 의미하지만, 번역가가 작업을 한 뒤 스스로 한 번 되돌아보지 않은 글을 남에게 넘기거나 공개하는 것은 참 여러 사람에게 민폐입니다… 또한, 이어지는 글들에서 보시겠지만 CAT tool을 사용할 경우, 이 과정에는 단순한 오류 교정을 넘어서는 다른 작업들이 있습니다. 엑스포트를 한 다음에 포맷을 잡아주고 하이퍼링크를 달아주는 등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작업들이 필요한데 이것도 번역가 자신이 하는 프루프리딩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한 번 더 읽으며 고친 것을 남이 한 번 더 해 주면 당연히 더욱 좋습니다. 새로운 시각에서 고칠 수 있고, 또 원래 글을 쓴 이의 잘못된 지식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한 오류나 부족함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상 에이전시에서 프루프리딩이라고 할 때는 이것을 가리킵니다. 이 때 이 프루프리딩은 다른 번역가에 의해 진행될 수도 있고 때로는 monolingual 편집자에 의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윤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프루프리딩을 마친 작업물은 아직도 완성된 번역문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프루프리더가 프루프리딩을 한 작업물은 어디까지나 이차적이고 보충적인 시각일 뿐이고, 그 시간과 노력에 있어서 처음 번역가의 시간과 노력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monolingual 편집자의 작업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원문의 정확성이나 충실성을 희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물의 말이 매끄러운 것도 사실 매우 중요하지만 때로는 정확성 내지 충실성이 더 중요한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과학적인 것들, 비즈니스 개념들이 그렇고 또 법정에서 사용될 증거물 등도 그런 경우죠. 이런 경우는 정확성이라기보다는 원문에의 충실성(faithfulness to the source document)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데, 그것은 오직 원래 번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때로 별도의 affidavit을 쓰기도 하죠.) 프루프리더가 괜히 처음 번역가가 해 둔 작업과 처음 번역가의 여러 가지 올바른 선택을 오히려 망가뜨려 놓을 수도 있기 때문에, 프루프리더의 작업물을 최종 번역물로 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일부 수준이 낮은 에이전시들과 최종 고객들이 이런 실수를 종종 저지릅니다.) 그런 이유로, 프루프리딩을 한 것을 다시 한 번 원래의 번역가가 보고 프루프리더의 지적을 수용하거나 거부하여 번역물을 완성해야 합니다. 이것을 finalizing이라고 합니다.

 

정말 중요한 문서인 경우에 위의 프로세스에 back translation이라고 하는 과정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면 그 번역물을 다른 사람이 다시 영어로 번역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원래 소스문서와 back-translated된 문서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것이 오역 때문인지 아니면 문화적 언어적 특수성 때문인지 등을 확인하는 겁니다. (이것 자체만 해도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려요…)

 

심지어 거기다가 또 한 단계를 더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이 문서를 실제로 읽게 될 독자층에게 타겟 문서를 읽게 하여 문서가 잘 이해되는지, 어려운 개념이 사용되지는 않았는지, 혹은 다른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지 알아보는 과정을 더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것들을 다시 한 번 번역가에게 고민을 해 보게 하죠. 이것을 linguistic validation이라고 합니다.

 

위의 각 단계가 진행되려면 서로 시차 간격이 있는 여러 번역가들과 에이전시가 이메일로 서로 파일을 주고 받아야 하기 때문에 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런 다소 긴 흐름을 통해 최종적으로 믿을 만한 번역물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프루프리딩이라고 할 때 위의 각 단계 모두를 통괄적으로 말할 수도 있고 그 하나 하나를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위의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이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3 Comments

  1. 브라이언 선생님,

    마치 실제로 번역가가 되어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번역 과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 다시 한번 읽고 있는데, 정말 귀중한 정보라는 사실을 또 깨닫습니다. 고맙습니다.^^

  3. 오.. back translation 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다른 번역가와 교류하면서 같이 일할 때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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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