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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구스 이야기

 제목을 보고 무슨 옷 얘기인가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건 아니고 동물, 더 정확하게는 저희 동네에 사람 수만큼이나 많이 사는 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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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면 저 새가 얼마나 큰지 잘 짐작이 안되실 텐데 길이는 약 1미터, 날개를 펴면 옆으로 약 1.5미터나 되고 다 큰 수컷의 몸무게는 평균 4킬로그램이나 됩니다. (암컷도 별 차이는 없는데 약간 작고 가볍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영어 공부. goose의 복수는 geese, 새끼는 gosling이라고 합니다. 불규칙의 극단을 보여주는 단어죠. 실제로 캐나다 구스는 느리고 신중한 새인데 영어 단어는 변화무쌍하네요.

 

토론토의 공원과 호수에 정말 많아서 캐나다에 오자마자 신기한 눈으로 봤던 녀석들인데 시골에 이사와도 여전히 많습니다. 여기는 사람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라서 제 짐작에는 사람 수나 구스 수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4월 중순에 제 산책길 한가운데에 둥지를 만들고 알을 품은 구스 부부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제 산책 코스를 변경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전 처음으로 캐나다 구스의 출산을 꽤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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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이 알을 품고 있었는데, 제가 가도 저를 쳐다보기만 하고 쉽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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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근처에서 암컷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수컷이 황급히 돌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저놈을 못 이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무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적당히 피해주었습니다. (실은 아내가 하도 길길이 뛰어서 더 있다가는 나중에 밥 안줄 것 같아서 아쉽지만 저의 왕성한 탐구정신을 접고…)

 

아, 그런데 한 이틀 뒤에 다시 가봤을 때 그 자리에 이런 것만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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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몇 주 뒤에 사방에 캐나다 구스 유치원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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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구스와 관련된 추억이 있습니다. 벌써 오래 전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영어 배우러 토론토에 온 아가씨가 있었는데 제 차를 타고 함께 어디를 가고 있었습니다. 스카보로 어디쯤이었던 것 같은데, 앞의 차들이 속도를 늦추더니 아예 멈추더군요. 무슨 일이 있나보다 하고 저도 멈추어보니까 앞에 캐나다 구스 부부가 중간에 새끼들을 데리고 길을 건너는 중이었습니다. 얘네의 가족 행진은 늘 부모 중 한 마리가 앞에 서고 중간에 새끼들이 쭉 일렬로 서고 제일 끝에 다른 부모 한 마리가 서서 갑니다. (위의 사진에도 물에서 그런 식으로 헤엄치는 비슷한 광경이 있습니다.) 새끼가 하도 많아 줄이 10미터도 넘습니다. 그래서 양 방향 모두에서 차가 멈추어서 걔네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이 놈들이 본래 눈치없기로 유명한 놈들이라 전혀 서두르지를 않습니다. 하긴 새끼들이 있으니 재촉해 봤자 어차피 별로 빨리 건널 수도 없었겠지만요. 그래서 구경났다고 아예 몇 명은 차에서 나와서 사진도 찍고 구스들의 우스꽝스런 몸짓을 비웃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 옆을 보니까 이 아가씨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겁니다. 왜 우는지 정확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하여튼 너무 감동적이라서 울었답니다. 언제 다시 만나면 왜 울었는지 자세히 물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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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 구스가 봄의 전령이기도 하고 순진한 것 같아서 늘 좋아했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실은 이놈들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이유는 시끄럽게 울고, 다니면서 아무 데나 배설물을 남긴다는 거죠. 저희 이웃 할머니는 언젠가 구스에게 쫓겨 달아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잘 모르고 알이나 새끼 근처에 가셨겠죠. 아무리 그래도 구스가 성인 남자를 쫓아내려고 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없으니 저는 안심하고 돌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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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옆에 미시사가라는 큰 도시가 인접해 있는데 거기서 장기집권(?)하던 인기짱 할머니 시장(Hazel McCallion)이 계셨습니다. 90세가 넘도록 36년간 연속으로 시장으로 활동이시다 2015년에야 은퇴하신 것으로 압니다. 캐나다 수상이 6번 바뀔 동안 이 할머니는 계속 미시사가 시장을 하셨죠. (좀 딴 얘기지만 이 할머니는 선거철에도 선거 운동을 하지 않고 그냥 평소처럼 일만 하는데 그래도 언제나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됩니다.) 그런데 이 대단한 할머니가 시장 시절에 캐나다 구스 때문에 공원이 더럽혀진다는 불평을 많이 들어서 한 일이 있는데, 잭 달링 공원에 사는 캐나다 구스들을 몽땅 잡아다가 비행기로 실어서 캐나다 동쪽 해안 지방에 풀어놓았습니다. 그러면 시민들이 공원을 쾌적하게 이용하겠지 싶었겠죠. 그런데 시장 할머니께서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캐나다 구스가 장거리 비행의 선수이고 게다가 머리에 무슨 레이더를 달았는지 해마다 그 먼 거리를 날아서 아주 정확한 위치로 돌아오는 새라는 것이죠. 일주일도 안 되어서 그 유명한 V-formation으로 짜잔~ 하고 죄다 돌아와서 또 다시 유유히 공원을 거닐며 시끄럽게 하고 배설물을 뿌렸으니, 그 뒤로는 이 유능한 할머니 시장도 캐나다 구스는 포기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대단한 할머니 시장도 포기했으니 정말 아무도 못말리는 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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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온타리오 호숫가에 잭 달링 공원을 만들기 전에, 심코 호숫가에 라군시티를 만들기 전에, 그보다 몇 만 년 전에, 구스들은 이미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걔네들에게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고 어떤 보상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고 들어와 공원도 짓고 마을도 지은 뒤에, 이제는 걔네들더러 귀찮으니 다 나가라고 요구할 수는 없죠. 그건 옳지 않죠. 제 생각에는 최소한 평화공존할 수 있는 룰을 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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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새를 귀찮아 하고 미워해도 저는 이 새가 참 좋습니다. 그건 이 새들이 저와 닮았거나 제가 닮고 싶은 특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약간 멍청하게 생겼고 멍청하게 행동하지만 실은 (많이) 멍청하지는 않다: 저도 제 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멍청하게 생겼다고 지적하고 제가 생각해도 좀 그렇습니다. 그러나 (많이)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살고 싶습니다.)
  • 사별하기까지 일부일처제로 살아가고 해마다 평균 5마리의 새끼를 낳아서 기른다: 저도 일부일처제로 살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으니 요즘 사람 치고는 많이 낳았습니다.
  • 먼 곳까지 날아가 살다가 때가 되면 또 돌아와서 산다: 저도 13시간 시차가 있는 지구 반대편에 날아와 살다가 가끔 한국을 방문해서 제가 살던 곳을 찾아갑니다.
  • 혼자도 살고, 부부로도 살고, 몇 가족이 모여서 공동육아도 하고, 한 20마리가 모여서 같이 장거리 이동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저도 다 해 보았습니다. 공동육아는 무슨 얘긴가 하는 분이 계시겠지만 얘네가 두 세집이 모여 새끼들을 같이 돌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크레쉬라고 하는데 위의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아하 하실 겁니다.)
  • 말이 많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한다: 부부간에, 혹은 20마리 정도의 그룹이 단체 행동을 하기 직전에는 정말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합니다. 그 때 사람들이 옆을 지나가다가 시끄러운 새라고 욕을 하는 거죠. 평소에는 그다지 시끄럽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을 한 직후에 일제히 날아 오릅니다. 그건 정말 장관이죠. 저도 본래 말이 많고, 평생 말이 직업이었으며, 지금도 언어로 온세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삽니다.
  • (장거리 비행 빼고는) 몸으로 하는 건 뭐든지 서툴고 어색하다: 두 발이든 네 발이든 지상을 걷는 동물 중에 이렇게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게 걷는 동물은 없을 겁니다. 속도도 느리고. 저도 대충 그렇습니다.
  • 식성이 얼치기 베지테리언이다: 얘네는 거의 초식동물이지만 가끔 작은 벌레나 물고기도 먹습니다. 저도 거의 풀만 먹지만 아이스크림과 계란(free run)과 생선도 먹는 얼치기 초식동물입니다.
  • 새치고는 정말 오래 산다: 10년에서 24년을 사는데 영국의 어느 대학이 꼬리표를 붙여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31년을 산 녀석도 있었다고 합니다. 새치고는 정말 장수 종족이죠. 이건 제가 아직 닮지 못했지만 앞으로 노력해서 닮고 싶은 특성입니다. ㅎㅎ
  • 하늘을 난다: 뭐 새니까 당연하지만, 그리고 저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못 날지만, 이 점은 정말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어디 딴 데서 썼는지 모르지만, 저는 모든 동물 중에 새를 가장 존경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공중을 나는 꿈을 꿉니다. 땅에 몸을 붙이고 사는 다른 모든 동물들과는 달리, 새는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을 통해 경쟁과 두려움이 없는 자유의 세계(물론 완전하지는 않지만)를 개척한 존재들입니다. (궁금하신 분은 새의 깃털 구조 등에 대해 조사해 보시면, 그리고 새들이 펼치는 예술의 세계(음악, 건축, 미용, 댄스 등)에 대해 조사를 해 보시면 저처럼 새를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새처럼 살고 싶고, 또 제 아이들에게도 새처럼 살라고 늘 가르쳐 왔습니다.

 

뭐 저 정도면 제가 캐나다 구스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낄 만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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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진짜 옷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저런 애들을 잡아서 가슴 털을 뜯어내어 겨울 옷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슴 털 뜯긴 구스 사진을 본 적도 있습니다. 모든 업체가 그러지는 않겠지만요. 제가 찾으면 인터넷에서 그 사진도 찾겠지만 여기 올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일을 하고 나면 정말 몸이 여기저기 쑤십니다.) 인조털이면 어떻습니까? 진짜 구스 다운 아니라도 얼마든지 따뜻한 옷 만들 수 있고 다른 재료로 만든 따뜻한 옷도 이미 넘쳐나도록 많으니, 굳이 그런 것을 사용한 옷 사입지 않아도 충분히 겨울을 잘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도 동물인데 다른 동물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특정 브랜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그러나 그게 어떤 브랜드이건 동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반복적으로 주면서 생산한 것이라면, 그리고 소비자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침을 고수한다면, 여러분도 그런 브랜드는 거부하시길 호소합니다.

 

저도 얼치기 베지테리언이지만 저런 옷은 입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추운 캐나다에서 올해도 겨울을 잘 났습니다. 여러분도 구스 다운 없어도 충분히 잘, 아니 더 행복하게 사실 수 있을 겁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7 thoughts on “캐나다 구스 이야기

  1. 저는 그 한국인 여학생이 왜 울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캐나다라는 나라는 잔잔한 일상을 통해서 감동받을 일들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자라나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경쟁사회 속에서 생활해 온
    젊은 한국인들에게는 그 감동이 더욱 클 수도 있습니다.

    1초만 늦게 출발해도 클랙션이 고막을 찌를 정도로 울려대고, 국민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지는 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잠깐 방문한 한국에서 캐나다 노인분들식으로 운전했다가 보복운전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밤 중에 보행자가 없기는 했지만 빨간 불이 들어온 신호등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뒤의 차가 앙심을 품고 계속 쫓아오며 보복운전을 하더군요. ㅜㅜ

    제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한국과도 많이 달라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서글퍼진 기억이 있습니다.

    일상의 일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일을 통해서 울컥해 진 것이 아닐까 싶군요.

    마음이 따뜻한 여학생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구스와 닮은 주인장께서 행복한 밤 보내시기를…^^

    1. 윽, 살벌한 이야기네요. 저도 몇 년 전에 한국에서 택시 탔다가 무서워 죽는줄 알았네요. 빨간 불에 그냥 지나가길래 기겁을 했지요. 그래서 울었을까요? 전 부모의 사랑과 관련된 어떤 부분이 그 아가씨의 마음을 터치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모르죠. Beautiful Flight라는 영화에도 캐나다 구스 나옵니다. 구스와 부모의 사랑이 오버랩이 되어있죠. 아직도 그 영화를 어떻게 찍었나 모르겠습니다. 정말 대단한 영화입니다. 안 보셨으면 꼭 보시길…

  2. 일전에 동영상으로 거위털 뽑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거위나 오리털 파카는 사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이미 사 놓았던 파카는 입습니다만… 군대에서 입던 깔깔이가 좋은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약간 추워서 입고 있어요 ^^;;

  3. 거위털, 오리털 평생 입지 맙시다. 토끼털 장갑도, 밍크 코트도, 여우 목도리도, 비버 가죽 모자도, 악어 가죽 혁대도, 상아 장식도, 사자 머리 기념물도. 하긴 저런 것들은 어차피 비싸고 실용적이지도 않아서 유혹이 되지도 않네요. 암튼 거위털 오리털 파카 우리 평생 입지 맙시다.

  4.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5. 본문 중 새는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을 통해 경쟁과 두려움이 없는 자유의 세계를 개척한 존재’라는 말이 가슴을 울리네요~~ 저는 항상 눈팅만 하고 있던 초짜 번역가이자 브라이언님의 익명의 팬입니다. 브라이언님의 홈페이지는 주로 번역가 비즈니스 관련 노하우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 마다 들르곤 합니다. 다만 오늘은 브라이언 님의 캐나다 생활이 궁금해서 놀러왔다가 방심한 사이에 또 이런 자극과 감동을 주시네요 ㅎ 역시 브라이언님은 저의 시크릿 멘토십니다 <3

    1. 이렇게 흘리듯 쓴 말에도 밑줄을 그어주는 분이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실은 오래 전에 새의 진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새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새를 저의 인생 모델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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