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또는 기타 유럽어) 번역가 예찬

한국인은 공식적으로는 중학교부터 영어를 배워 왔음에도(요즘은 더 빨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영어 익히기에 투입한 시간에 비해서 영어 구사력의 소위 가성비는 많이 낮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특출한 재능을 지닌 분은 있겠지만 보통의 평균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사회에 진출한 후 영어권 여러 곳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영어에 많이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고 업무상 영어권 인사들을 접견하거나 국제 전화로 법률 사건, 국제금융과 관련된 거래 등을 진행하게 된 경우에 영어가 잘 안 들려서(잘 알아듣지 못해서가 진실일지도…) 머리에 쥐난 적 많았었지요.

그런데 홍콩, 싱가폴,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 일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영어 구사력이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훨씬 나은 경우는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열이 못한 것도 아니고 생활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었지요.

말한 김에 예를 들면 홍콩, 싱가폴 등지의 백화점 상가 등의 세일즈맨들은 최소한 세일즈에 필요한 영어라고 하더라도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필리핀의 경우는 그 나라 모국어의 영향 때문인지 따닥거리는 발음을 가진 사람도 많지만 구어이든 문어이든 구사하는 문장의 구조가 아주 우수합니다. 제가 한 때 홍콩에서 고용한 필리핀 출신 가정부는 대학 출신(불행한 모국에서 송출된 고급인력)이었는데 발음을 제외하곤 아주 훌륭한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교포 중에는 영어 가정교사용으로 필리핀 가정부를 고용하는 가정도 있었으니까요.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좋은 발음을 가진 분은 부럽기도 하지만 좋은 영어의 필수 요건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엉터리 영어만 아니면 어떤 발음도 다 알아듣기 때문이지요. 좋은 영어라도 독특한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순 한국 토종인 저 같은 사람이지 않을까요?

필리핀은 스페인의 지배를 약 300년, 그 후 美西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지배를 100년 정도 받았으니 영어를 곧잘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한국에서 일본어를 잘하는 선대 어른들이 많은 이유와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홍콩도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영어가 공용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인도인들이 영어를 잘 구사하는 이유는 대부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고 하니 영어와 동질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해서 잘 알지 못하네요. 무엇보다 해외 주재기간 중 중국어를 접하고 익히게 되면서 동남아 중국인들의 영어 수준이 높은 이유도 그들의 언어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어 문장은 기본적으로는 주어 동사 목적어 순으로 되어 있고 단어의 위치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유럽계 언어만큼은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영어와 유사성이 많습니다. 저의 모국어가 중국어였더라면 영어를 지금보다 훨씬 더 잘 구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에 반해 한국어는 영어(영어, 독일어 또는 로망스어 등 유럽어족 모두)와는 완전히 다른 언어 체계에 속해 있어서 비슷한 구석이 어디 한 곳이라도 없기 때문에 한국인이 학습에 의해서 영어를 배우기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일본인도 같은 숙명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지요. 요즘에는 국제화의 기회가 국내외적으로 많이 열려 있어 훌륭한 영어를 구사하는 젊은 연령층이 많기는 하지만 평균적인 다수는 깔딱 고개를 넘기 힘들어 영어 포기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여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 자기 학습을 통해 꾸준히 실력을 연마하여 현재 영한/한영 번역가로 일하고 있는 여러분은 참 대견한 사람입니다(저도 살짝 끼겠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앞서 많이 주절거렸습니다. 그렇다고 타 언어 예컨대 일본어 등의 번역가를 상대적으로 달리 본다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어떤 언어이든 잘하기 위해서는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니까요.

이와 같이 한영/영한 번역이 인도 유럽어족간의 언어쌍 번역에 비해서 까다롭고 어려운데 그에 상응하는 레이트를 평균적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선 제 경험상 한국의 에이전시와 거래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필요에 의해 한국 에이전시와 거래를 시작했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벗어날 것을 권합니다. 저도 시작은 한국의 에이전시와 했으나 Bryan님이 일깨워 준 덕분으로 지금은 해외 에이전시들 하고만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기꾼이라고 해야 될 에이전시가 이제 막 번역가의 길을 노크하는 분들을 현혹하여 시간과 돈을 허비하게 하고 낙담케 하는 경우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시고 순탄한 번역가의 길을 걸으시기를 바랍니다. Bryan님의 글에 잘 고발된 사례가 실려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 번은 작은 번역물이었지만 영국의 에이전시가 약정 레이트가 있음에도 클라이언트 핑계로 형편없이 낯춘 레이트를 제시하길래, 제가 “일은 안 해도 좋지만 수고에 맞는 보수는 받아야 하겠다”고 거절하니 약정 레이트를 수락하더군요. 여러분 각자의 사정은 다르겠으나 저의 경우는 주관적이지만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레이트 유지에 비중을 두는 편입니다.

번역가 여러분, 자부심을 가집시다!

초당
초당

초당은 귀촌하여 주로 법률분야 문서를 한영/영한 번역하는 번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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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