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험한 영상 번역 시장 현황을 공유합니다. 사실 저는 한 회사에만 소속되어 일했기 때문에 경험이 한정적이지만 그동안 다른 번역가와 공유한 내용이 있고 그것만으로도 이 세계를 파악하기는 충분했습니다.
영상 번역 시장
영상 번역을 찾는 클라이언트를 채널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방송사: 지상파, 케이블 채널 등을 말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더불어 수요가 가장 많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본격화되기 전 국내 클라이언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 넷플릭스, 아마존, 아이튠즈, 유튜브, 페이스북 등이 있습니다. 최근 대부분 수요가 여기서 나옵니다.
영화제: 소규모지만 옛날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수요가 있습니다.
기타 (기내 영화, DVD 등): 아직도 DVD 시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있었다길래 써 보았습니다. 아! 극장에 걸리는 영화도 있군요. 영화 수입 배급사에서 의뢰하겠죠? 이건 그냥 없는 셈 칩시다.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니까요. 아니, 번개 맞을 확률이랄까요… 하하하, 그냥 웃지요…
방송 시장 이외에 정부 기관, 기업, 단체에서 교육 영상, 홍보 영상, 포교 영상 등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국내 시장: 폐쇄적인 인맥 세계
최종 클라이언트가 프리랜서를 직접 찾아 일을 의뢰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번역 회사(에이전시), 외화 재제작 프로덕션 등에 맡깁니다. 번역 회사와 프로덕션이 프리랜서를 찾아 번역을 맡기는데 이 과정에서 번역 회사를 한 번 더 끼기도 합니다. 그럼 하청의 재하청이죠. 눈치채셨겠지만 번역료가 하염없이 내려갑니다. 영상 번역이 기본 생활비도 안 되면서 악랄한 중노동에 시달린다는 말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한 데는 번역가들도 한몫했죠.
드라마나 영화는 제작 특성상 거대 기업만 가능합니다. 배포, 상영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독점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번역료가 바닥을 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게다가 국내 영상업계는 매우 폐쇄적입니다. 포털에서 영상 번역 회사를 검색하면 관련 회사가 거의 안 나옵니다. (사실 회사야 수없이 나오는데 제가 아는 방송사 수주 업체가 아닙니다. 무슨 회사들인지 잘 모르겠어요.) 에이전시가 스스로를 공개하지 않으니 일반인이나 입문자가 접근할 방법이 없어요. 일감 수주도, 배급도 인맥으로 돌아가거든요. 기존 번역가들은 물론 에이전시도 다른 번역가에게 고객 정보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자기 일 뺏길까 봐 배타적인 것이죠. 이렇게 다들 따로따로 노는데 일개 개인이 공룡 기업과 싸워 이길 수 있나요? 번역료 후려치면 그냥 당하는 거죠. 오래전 외국어 능력자가 희귀할 때는 번역료가 상당히 후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너도나도 제2 외국어를 배우니까 번역 시장이 무주공산(無主空山), 공급 과잉이에요. 당연히 번역료 내려갑니다. 현재 국내 번역료는 최저임금은커녕 입에 풀칠도 힘든 상황인데 회사 직원이면 노조라도 만들어 대항하지, 프리랜서라는 입지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최저 번역료 보장도 못 받고 정당한 근로 환경 요구도 못 합니다. (음… 최저 번역료 보장 국민 청원 해 볼까요?) 그러면 똘똘 뭉쳐 공룡 기업의 횡포에 맞서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당장 눈앞의 일감을 뺏길까 봐 서로 배척하고, 저렴하게 일을 받고 삽니다. 그 배척이 번역료 후려치기를 부추기는 줄도 모르고요.
제가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네요. 번역료도 형편없는데 시장 진출조차 어렵다니요! 그런데 지금까지 본 국내 상황은 그렇습니다. 이 글을 읽고 영상 번역을 포기한다 해도 말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여러 이유로 영상 번역을 시작하려는 분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희망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판도는 점점 바뀝니다.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인맥 일감? 이제 90년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 사이트 구석구석에 번역 시장과 미래에 관한 주옥 같은 정보가 숨어 있으니 찾아보고 미래를 설계하세요. 인공 지능과 통-번역가의 미래 포스트를 먼저 추천합니다.
해외 시장
해외 시장은 인맥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에이전시 하나가 전 세계 수십 개 언어 능력자를 무슨 수로 확보하겠어요? 회사를 홍보하고 구인 광고를 내야 합니다. 인맥 이야기하다가 밑도 끝도 말만 먼저 질렀는데, 해외 에이전시는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소스 언어 하나를 여러 언어로 번역합니다. 포털을 통해 에이전시 수백 개를 찾을 수 있죠. 그런데 이곳도 에이전시 독점이 있다는군요. 번역료는 천차만별인데 평균적으로 국내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유럽으로 갈수록 번역료가 높고 인건비가 저렴한(특히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지역은 국내보다 낮게 주는 곳도 있는가 봅니다. 해외 시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번역 비즈니스의 큰 변화와 인터넷 번역 시장, 인터넷 번역 시장의 구조에서 확인하세요.

인문학과 심리학을 좋아하는 영상 번역가입니다. 번역가가 합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영상 번역 업계나 일반 번역 업계나 국내 사정과 해외 사정은 비슷한가 봅니다. 우울하지만 현실적인 글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일 시작한 지 두 달을 갓 넘긴 초보 영상 번역가입니다. 올려 주시는 포스팅 잘 읽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 업체와만 거래하고 있는데, 두 달간은 일이 끊임없이 들어오다가 마지막 일감 납품 이후로 일주일 정도 연락이 없는데요. 업체에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워서 혼자 고민하다가 댓글을 남기게 되었어요. 같은 업체와 거래하는 동료 작가님은 다른 일감을 받으신 것 같아서 정말 잘렸나 싶기도 하고…^^; 아직 일주일에 두 편 납품하기도 버거운 초보라서 새 업체를 뚫는 게 부담되는데, 이력서를 돌리고 다른 업체를 찾는 시점은 언제가 좋을까요?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답답한 상황이 종종 생기네요. 양질의 포스팅 항상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Bokgyu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게다가 두 달이나 연이어 일을 받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처음 시작하면서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러다 연락이 갑자기 끊겼으니 정말 조바심이 날 거예요. 그 업체 상황이 어떤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Bokgyu님께 계속 일을 줄지 안 줄지도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 없어요. 일반적인 상황을 말씀드려보면, 원래 일감은 대중없이 들쑥날쑥 들어와요. 두어 달 정신없이 들어왔다가 한 달 뚝 끊기기도 하고 그렇게 비수기와 성수기가 존재한답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은 늘 있을 거다’ 하고 마음을 잡수고 계셔야 해요. 업체가 프리랜서에게 일을 어떻게 나눠주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음… 업체에서 취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일 것 같습니다. 믿음이 가는 번역가 또는 오래 일한 번역가에게 먼저 일감을 주기 (이 경우는 물량이 많아질 때만 다른 번역가에게 기회가 갑니다), 등록된 번역가에게 균등하게 기회를 주기(이 경우는 내가 이만큼 일했으니 당분간은 일이 안 들어온다고 보셔야 하고요.) 국내 업체인지 외국 업체인지 모르겠지만 실력과 상관없이 정말 급하게 1회만 쓰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마음을 비우고 느긋이 지켜보세요. 그리고 거래 업체는 여러 군데일수록 좋습니다. 늘 언제나 그것이 여러모로 이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