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번역가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상 초당의 춘화추실수거  아! 홍콩

홍콩은 국제 도시이면서 접근성도 좋아서 가 본 분들이 꽤 많으시겠지요? 홍콩 주민의 중국 본토 임의 소환여부가 소요사태를 촉발했다고 하는 요즘 홍콩 사태(?)를 보면서 저는 나름 각별한 회상에 젖게 됩니다. 종합상사 대리급일 때인 1988년 홍콩에서 주재원 생활을 5년 남짓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 때는 홍콩이 여전히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기였고 아시아의 진주라고 불린 만큼 경제, 금융, 무역면에서 황금 시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홍콩의 외환보유고는 공개되지 않았고 뒤로는 영국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그 후 중국의 반환을 앞두고 벌인 대규모 토목 공사(신공항 및 대규모 連陸 해상 도로 등)를 통해서 보유 외환을 영국의 Contractor들이 쭉 빨아들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무튼 그 당시 홍콩인에 대한 선입견은 정치적이지 않은 경제적 인간이었습니다. 영국이 식민 통치를 하는 동안 홍콩인들이 정치적 성향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기에 식민정책을 통해서 주민의 성향을 Money-oriented하게 만들었다고도 했습니다. 경마, 마작, 로또(Mark Six라고 해서 6자리 숫자 뽑기)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요. 금융 중심지인데다가 경제활동을 하기에 딱 좋은 선진 시스템과 의식구조를 갖고 있어서 경제 활동의 생산성이 높으니 자연히 정치에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게 될 수밖에 또는 그렇게 유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홍콩의 소요사태를 보면서 그 생각이 틀렸거나 부분적으로만 옳았고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일 수밖에 없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게 되네요.

세월은 빨라 그 후 세상을 돌아 다시 홍콩에 인접한 중국 심천에서 2008년부터 수년 간 거주하면서도 홍콩을 내왕하게 되었습니다. 20년 전에도 홍콩의 중심지인 중환(中環-영문명 Central)에는 첨단 빌딩들이 즐비했었는데 그 좁은 틈새에 Finance Centre등 고층 빌딩이 새로 들어서서 스카이라인이 바뀌었더라고요.

홍콩에 주재원 생활을 할 당시 홍콩과 중국은 경제적, 사회 인프라적인 면에서 엄청난 격차가 있었습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중국인은 당국의 특별 허가가 있어야 홍콩 입국이 가능하였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몰려드는 난민으로 홍콩이 마비되기 때문에 중국 당국으로서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일을 찾아 홍콩으로 밀입국하는 중국인이 골머리였습니다. 심지어 바다를 헤엄쳐 건너다 상어떼에 희생되었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당시 중국의 낙후한 모습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가끔 동료들과 가까운 심천으로 운동하러 가게 되었을 때 중국의 입국심사대에서 목격한 광경이 생각납니다.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아 수작업으로 입국 심사를 하는데 그냥 얼굴보고 도장 찍는 겁니다. 한 창구에 길게 줄 서 있는 걸 보고도 다른 창구는 비워 놓고 슬리퍼 끌면서 왔다 갔다하는 다른 입국 심사 관리들을 봐야 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깨고도 남는 일이었습니다. 노후한 도로엔 우측에 운전대가 있는 택시(아마 불법 영업이었던 같습니다)도 있었는데 중국은 우리나라와 도로 시스템이 같고 홍콩은 영국식이라 차량의 우측에 운전대가 있습니다. 그 택시는 홍콩에서 불법으로(절도) 반입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그곳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큼 바뀌었습니다. 심천 중에서도 홍콩과 가까운 곳은 홍콩에 못지 않은 고층빌딩이 많고 그 지역 소득 수준이 중국에서도 수위라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중국인들이 기를 쓰면서 홍콩을 가지도 않고(홍콩입국은 여전히 허가제) 거꾸로 홍콩인이 심천에 출퇴근하면서 일하기도 하지요. 홍콩의 고급 인력이 필요하여 저 자신이 심천에 소재하는 미국계 회사에 근무하면서 홍콩인을 고용하기도 했었으니까요.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어 갑니다. 중국이 많이 변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홍콩에 대해 좋은 기억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첫 아이가 유모차 타고 다닐 젊은 나이에 처음으로 해외에 그것도 선진 지역에 주재원으로 가게 된 개인적인 행운 때문이기도 합니다. 빈민촌도 많고 삼합회(三合會-영문명 Triad)라고 하는 조폭 집단은 총기, 수류탄 등으로 무장하고 사고를 일으키기도 해서 국제적으로도 유명하고 우범지역도 있고 금은방 입구에 샷건으로 무장한 인도계 경비원도 있어 어 뭐지? 하고 당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거리는 안전한 편입니다. 홍콩은 현재도 중국의 일부이기 이전에 국제화된 일류 도시입니다.

중국 요리는 국제적으로 알아주지만 특히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 북경식, 상해식, 광동식, 조주식, 사천식 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다만 좋은 요리는 비싼 것이 흠이지요. 같은 중화권이지만 싱가포르의 중국 식당이 홍콩에서 쉐프를 모시고 왔다고 선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홍콩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통번역가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상 초당의 춘화추실수거  아! 홍콩

영국은 지배했던 식민지에 시스템을 남기고 스페인은 지배했던 식민지에 혼혈아를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억나는 일화가 많지만 이번에는 제가 홍콩에서 민원처리해 본 경험과 법원에서 약식 재판을 받아본 경험 얘기를 하고 마무리할까 합니다. 이 포스팅이 관광가이드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홍콩의 ID Card를 갱신하러 관공서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1층에서 약간 두리번거리니 제복을 입은 관리가 먼저 접근하여 용건을 묻고는 몇 시까지 몇 호 입구에서 대기하라고 메모를 주더군요. 그 곳으로 갔더니 10 여명 정도 모여 있었고 알려준 시간에 해당 호실 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은 닫히고 거의 기다림 없이 인터뷰, 서류 작성, 사진 촬영 등을 마치는 시간이 되니 문이 다시 열리고 그 다음 대기자가 들어오게 하더군요. 민원인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매우 정밀하게 관리하는 것을 보고 그 당시 한국의 실상이 떠오르며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법원 갈 일이 없었는데 홍콩에서 경범죄(?) 짓고 법정에서 약식 판결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나 겪는 일이 아니니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나누고 싶어지는데요.

휴가 때 말레이지아령 보르네오 섬에서 휴가를 보내고 지인이 선물로 준 거북이 박제를 손에 들고 홍콩 공항에 들어오다가 덜컥 걸렸습니다. 거북이가 Protection Animal인데 그걸 몰랐던 무식함에다가 목이 부러질까봐 꺼내 들고 가는 용감함은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거시기한 일이었습니다. 습득 경위를 조사받고 박제 거북은 압수되었습니다. 법원 소환장이 발송될 거란 코멘트에 머리 속이 좀 하얘짐을 느꼈지만 제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홍콩 공항 입국때마다 특별 대우(?)를 받느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일회성 체크일 뿐이라는 대답에 다소 진정할 수 있었습니다. 소환장을 받고 드디어 법정에 갔더니 저 같은 범칙자들을 한꺼번에 모아 놓은 제법 큰 즉결재판정이었는데 판사 입정 전에 호명하여 범법사실을 확인하더군요. 공항에서 진술한 내용과 대동소이 했습니다. 영국식 은색 가발을 쓴 여 판사가 입정한 후 한 명씩 호명하여 범법사실을 구두로 확인하고 판결을 내리는데 저 차례가 되어서는 제 말이 잘 안들리는지(아니면 제 영어가 이상했을 수도) 옆에 와서 진술할 기회를 주더군요. 그래서 선의의 습득 운운하고 벌금을 내더라도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거북이 박제를 돌려주면 안되겠냐고 대담하게 말했다가 거절당하고 벌금 홍콩 달러 500불(1USD=7.8HKD) 땅땅. 현지 직원 왈 보통 홍콩 달러 1,000불인데 봐 준거라고 합니다. 지금은 추억삼아 말하지만 그때는 좀 쫄았음에 틀림없습니다. 홍콩 입국할 때 무심코 반입금지물을 휴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 볼 일입니다.

그 밖에 홍콩에 주재하면서 개인적인 일화들이 참 많았지만 번역일과 관련되기보다 여행정보에 더 가까울 것 같아 다음 기회에 양념으로 또 쓰기로 합니다

중국 당국이 절대로 홍콩이 망가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홍콩 사태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많은 여행객들의 사랑을 다시 받기를 고대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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