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번역가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상 초당의 춘화추실수거  싱가포르, 성공한 도시국가

지난 포스트에서 작금의 소요사태를 겪고 있는 홍콩에 대한 기억 조각을 얼기설기 맞춰 보았었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가 “나는~” 하면서 투정부리는 소리에 귀가 간질간질해지는데요(ㅎㅎ). 驛馬煞(역마살)이 끼었음에 틀림없는 제가 홍콩 근무를 끝내고 귀국했다가 수년 후 다시 싱가포르에 駐在하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1996-2001년간의 일이었네요. 담당 업무상 先進 지역을 또 나가게 되었으니 나름 행운이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지금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한 도시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콩에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홍콩보다 더 치열하게 자립을 일군 나라입니다. 홍콩은 영국의 든든한 배경과 중국에 붙어 있는 입지적인 이점을 안고 있어 요즘 표현으로 금수저 물고 태어났다면 싱가포르는 굶어 죽을 수도 있게 내팽겨진 처지의 흙수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내의 화교들이 정치적인 부침을 거쳐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그 당시 낙후 지역인 싱가포르 지역에서 감지덕지 독립하게 되었는데 아무런 산업적 인프라가 없던 곳이어서 그야말로 막막한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이광요지요. 대단한 독재자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싱가포르는 이 사람 없이는 얘기가 되질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임 대통령을 매우 칭송했다고도 하는데 자신의 모습과 닮아서였을까요? 이 사람은 작은 나라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번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하는 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고도의 독재 기술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전폭적으로 그를 지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독재의 겉모습과 국민의 지지에 대한 예를 하나 든다면, 싱가포르에도 野黨이 있긴 한데 제가 부임하기 얼마 전의 總選에서 의회의 총 80여석 중 겨우 4석을 가지고 있던 야당이 총선 후 2석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이걸 두고 참패(?)라고 해야 하나요? 정치적 목숨만 겨우 부지한 꼴이지요. 야당 당수는 총선 후 금치산자,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혀 自意 半 他意 半 국외로 추방되었습니다. 야당 지역에는 도로 보수도 안 해주는 억압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 때문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國父로 숭모하는 이광요의 역량으로 풍요를 누리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지지였다라고 하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깝습니다.

 지금의 싱가포르는 아시아 물류 중심지(홍콩도 비슷한 경쟁자)이자 석유 정제 산업을 바탕으로 많은 부를 일구었습니다. 그 다음의 먹거리로 도덕적 비난을 감수하면서 카지노 산업도 정착시켰지요. 그러기 위해서 해외 투자자들에 대한 문호를 열고 인프라를 먼저 갖추었습니다. 보통 경제 관련 상식에 속하는 얘기는 생략하고 싱가포르가 생존책으로 선택한 신의 한 수 아니 두 수(물론 제가 보는 관점입니다)는 언어 정책과 교통 정책입니다.

화교 중심 국가가 중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선택합니다. 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지 않고 영어를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국제화가 살 길이라는 것이죠. 외국의 투자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고서는 국제화는 口頭禪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지요. 그 당시 저와 비슷한 연령대의 현지채용 대졸 직원이 저보다 한자를 잘 읽지 못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집에서 중국어(주로 福建省 사투리)를 하니까 말은 하지만 교육을 받지 않으니 소위 半 文盲인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잘 살게 되고 난 다음에는 다시 뿌리 찾기 교육에 중점을 두면서 普通話(중국 표준어의 통칭) 교육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중화 문명의 주체로서 따로 존재하고 있으니 변방인 싱가포르의 입장에서 문화적 주체성을 한시적으로 과감히 버릴 수 있었겠다고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공감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럴 수는 없지요. 우리가 우리 문화의 주체이니까요.

통번역가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상 초당의 춘화추실수거  싱가포르, 성공한 도시국가

또 다른 신의 한 수는 차량 대수의 통제입니다. 제가 아는 한 싱가포르에는 교통 체증이 거의 없습니다. 이 것도 해외투자의 유인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싱가포르는 딱 서울만한 크기에 불과하지만 농업은 금지하고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미개간지도 많고 인구도 기백만에 불과하기 때문에 서울에 비하면 공간이 여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매년 수입해야 하는 차량 대수는 폐차 예상 차량 대수를 고려하여 책정합니다. 그리고 차량 수입 에이전시들은 정부가 시행하는 채권 입찰에 응해야 합니다. 정부 채권을 사야 차량을 수입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채권 가격은 최저 낙찰가로 단일화되지만(모델별로 정해지는지 등 구체적인 절차는 기억이 희미합니다) 대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요 과잉으로 채권 낙찰 가격이 보통 엄청난 고가입니다. 예를 들면 차량에 채권 가격이 반영되어 수년 된 중고의 현대 엘란트라의 경우에도 4~5년 주재기간동안 타고 거의 ㄸㅊ 수준이 되었을 때의 리세일 가격이 대략 약 4천만원 정도였으니까 감이 오지요? 그러니 차량은 현지인들의 세가지 소원인 차량, 집, 돈(3C-Car, Condominium, Cash-로 표현되곤 합니다) 중의 하나였습니다. 보통의 소득으로 차량을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길에 다니는 차량은 좀 과장한다면 해외 투자법인 소속 차량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채권은 10년 만기지만 잔존가치가 얼마 되지 않고(금리 등 계산방법은 역시 기억 불능) 차량을 10년을 넘겨 타기 위해서는 채권을 재구입해야 하는데 이 때는 채권 가격이 2배로 뜁니다. 오래될수록 세금이 적어지는 우리나라와는 개념이 반대로 10년이 넘으면 폐차하라는 것이지요. 공해를 더 유발하니까요. 이런 제도들이 다 해외 투자자에게 쾌적한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자국민의 복리를 제약한 경우라고 본다면 비약일까요?

아무튼 이광요는 싱가포르가 번영하게 되고 나서는 자신이 옳았다는 얘기를 자신만만하게 하고 다녔습니다. 저의 주재기간 중에 이광요가 미국(아마 의회)에서 연설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에 의존하여 요점을 추린다면 ‘서구식 민주주의는 싱가포르 및 아시아에 맞지 않다. 싱가포르는 우리식 민주주의의 성공사례이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한 대만의 경우에 의회의 30% 이상이 범죄 폭력집단 출신들로 채워졌고 그들의 정치는 난장판이다…’라고 했지요. 외교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지 기억에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개발독재의 당위성을 당당히 그것도 미국에서 피력하던 자신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외 투자자의 대리인으로서 이광요 덕분에 쾌적한 생활을 영위했던 사람의 회상이었습니다만 가재미 눈으로 한쪽 면만 본 것은 아닌지… 어디 어두운 점이 없었겠습니까만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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