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비즈니스 초당의 춘화추실수거  싯다르타 번역을 마치고

라틴어 학습노트 시리즈를 올린 이후 처음 글 올려 봅니다. 그 사이 세상이 COVID-19로 온통 난리니 국내 경제도 치명타에 곡소리 나는 듯하고 정치도 … 저는 시골에 콕 박혀 있어서 코로나에 자연 격리된 상태이지만 한 때 코로나 청정 지역이던 이 동네(양평)도 이미 오염되어 안심할 수가 없네요. 코로나가 얼마나 위험한 지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모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사이 TOSEP Guild의 첫 프로젝트인 싯다르타 영한 번역을 과분하게 맡게 되었습니다. 현재 Publishing을 앞두고 있는 단계인데 문득 번역 후일담 비슷한 거라도 하나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포스트 하나 작성해봅니다. 문학가적 소양으로 써야하는 번역 후기는 아니고요.

 

우선 내용이 불교 철학적이랄까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아서 번역하기가 참 까다로웠습니다. 어떤 글귀는 번역자 혼자만으론 한계가 있어서 집단 지성을 동원한 끝에 번역문을 정하기도 했지요. 그럼 이미 시중에 출판되어 있는 독한 번역본은 그 부분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유감스럽지만 제대로 된 것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두루뭉술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번역이랄까요? 어쩌면 작가의 철학이 담긴 부분인데 번역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말 꺼낸 김에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네요.

 

뱃사공 바수데바(싯다르타에게 깨달음을 줌)와 싯다르타가 나누는 대화에서 싯다르타가 한 말입니다.

“Nothing was, nothing will be; everything is, everything has existence and is present.”

어려운 단어는 하나 없는데 뜻 새김이 어렵습니다. 혹시 원문은 독어인데 영역이 제대로 된 건지도 확인해야겠네요.

“Nichts war, nichts wird sein; alles ist, alles hat Wesen und Gegenwart.”

뭐 독영 번역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여요. 거의 직역이 되어 있네요.(독영 번역은 독한 또는 영한 번역보다 쉬워 보입니다. 아닐까요?)

 

서구어를 언어 구조가 완전히 다른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서구어끼리 옮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특히 이런 류의 명제를 만나면 매우 난감해집니다.

작가(Hermann Hesse)는 작품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부정하고 시간의 극복을 말하고 있는 점과 문장의 be 동사(독어 원문의 sein 동사)가 문장의 1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 이다”가 아니라 “…가 있다”의 의미로 새겨야 함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이 명제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기로 하였습니다. 더 나은 번역이 있을 수 있겠으나 최소한 기성 번역문보다 낫다고 자부합니다.

과거의 것은 없고, 미래의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지금 있고, 모든 것은 실재하여 우리 앞에 있을 뿐입니다.”

아무래도 전문을 보아야 전달될 개념을 부분만 가지고 길게 늘어놓을 얘기는 아니긴 합니다만 이번 싯다르타 번역은 나름 작가의 철학적 사유에 오역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였음을 말하고자 하는 예가 되겠습니다.

번역 비즈니스 초당의 춘화추실수거  싯다르타 번역을 마치고

한편, 번역 원문은 출판 목적(영한 대역본도 포함)상 영문본을 썼지만 독어 원문을 같이 꼼꼼히 살펴서 중역(重譯)으로 인한 오역을 피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번역자의 청년기 제2외국어 선택, Goethe Institut 수학 등의 빛 바랜 아득한 기억을 되살려볼 수 있었음은 작은 기쁨이었고 그런 기회에 감사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영한 대역으로 영문을 접하게 되는 독자들께 알려드릴 말이 있습니다.

영어에도 도치문(주어 이외의 단어가 서두에 올 때 주어 동사의 순서가 바뀌는 경우)이 있지만 거의 사라져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본 영문본에는 무수히 많은 도치문을 만나게 됩니다. 영문본이 영어가 어색할 정도로 도치문 형태를 많이 취하고 있는 이유는 독어 원문의 시적 운율감을 담기 위해서 독어 원문의 어순을 가능한 한 따라야 했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굴절어인 독일어는 영어와 달리 특히 명사가 격변화하므로 위치에 관계없이 그 뜻(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강조하고 싶은 명사가 서두에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사 외에 부사도 서두에 오는 경우가 무척 많으며 이렇게 주어 아닌 품사가 서두에 오면 문장이 도치됩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언어 체계인 우리 말 번역문에는 솔직히 그런 서구어의 언어 미학적인 것까지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은 어쩔 수 없다 하겠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 perhaps it are the many words.”

여기서 it는 문맥상 “가르침”을 뜻합니다.

얼핏 보면 문법이 틀린 것 같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주어(the many words)와 보어(it)가 도치되어 있습니다. 영어에서 문법적으로 주어와 동사간에 수의 일치는 필요하지만 주어와 술어 사이에는 수의 일치가 없으니 틀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문맥상 “… 가르침이란 많은 말일 수도 있지.”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독어 원문인 “vielleicht sind es die vielen Worte.”가 도치문이고 영역했을 때 정확히 이 어순을 따르면 “perhaps are it the many words.”이지만 이는 정말 영어이길 포기하게 되는 길이겠지요?(😊)

각설하고 저자의 깊은 철학적 사유를 공감해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독, 영 어느 쪽이든 수준 높은 원문을 곁들여 천천히 음미해 보실 것을 권하며, 싯다르타뿐만 아니라 TOSEP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여러 번역 프로젝트가 대박 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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