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원어민 친구에게 마지막 과외를 받았던 날, 친구의 허락을 받고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친구의 이름은 까를로스. 2015년 당시 20대 후반이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나고 자랐으며 영어와 한국어 실력은 초급수준이라 잘 쓰지 않았습니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었던 학원에서 3년간 근무했습니다. 제가 페루에 다녀온 후 3개월 정도 일대일 과외를 하고 스페인으로 귀국했습니다. 차분한 성격이라 조곤조곤 이야기했던 친구였습니다. 이날 본래 질문이 몇 개 없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이어져 참 오래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인터뷰는 모두 스페인어로 진행했습니다. 원어민강사들이 한국에 오게 된 계기, 한국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스페인에서 학교 다닐 때 우연히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관심갖게 되었고,
친구의 권유로 한국문화수업도 들었다. 그러다가 한 달 교환학생으로 올 기회가 있었는데
아쉬워서 한 학기를 들을 수 있는 교환학생으로 다시 부산에 왔다. 그런데 그 시기에 모
외국어학원에서 스페인어원어민교사를 찾고 있었고 지원을 했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스페인어를 가르쳤다.
- 한국의 역사,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본 적 있는가?
없다. 스페인에 돌아가면 자막 나온 걸로 몇 개 찾아보려고 메모해두었다.
‘국제시장’도 보고 싶다.
- 스페인에서 했던 일은?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기자로 일했고 8개월 정도 어떤 축구팀의 코치로도 일했다.
- 한국에서 했던 일은?
처음에는 학생, 그 후에는 학원강사, 델레시험(스페인어공인시험)의 시험감독관.
- 한국에 오기 전과 후에 내가 알던 한국은 어떻게 다른가?
스페인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의 문화는 그냥 다 똑같은 동양권 문화라고 생각했다.
많은 유럽국가들과 서양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오해다.
각 나라마다 고유 문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한국에 와서 알게 된 한국문화, 놀랐던 점은?
나이에 따라 대우가 다른 것.
젊은이들을 대할 때와 나이든 어른을 대할 때의 차이가 크다.
예의를 중요시하는 건 좋지만, 경력과 실력이 있어도 그 사람의 나이가 어리다면
한국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의 모 축구팀에는
9년차 실력파 코치가 있는데 나이가 마흔 정도다. 그 사람이 만약 한국에서 일했다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축구코치나 감독은 다 나이가 많으니까.
- 한국에서 일할 때와 스페인에서 일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Jerarquiao(계급, 직급, 계급조직). 계급주의다.
상사와 직원 사이 수직적인 계급주의가 존재하는 것.
상사 앞에서 마음대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지시한 대로 일해야 하는 상명하복식의
위계질서가 뚜렷하다.
- 한국사람들에 대해 좋았던 것과 실망스러웠던 것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대해서 좋았다. 대부분 편안했다. 그러나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이 전형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다른 외국인들을 만났을 때도 그런 비판을 종종 들었는데 한국사람들은 인생의 계획을 비슷비슷하게 정해놓고 각 시기마다 해야 하는 일이 정해져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외국인들은 생각과 계획이 자유로운 편이다.
- 한국의 대학생들과 본인의 대학시절 공부하는 방식의 차이는?
우선,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안 했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
대신 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고 좋아했다. 특히 정치와 축구에 관한 책들.
- 한국에서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했나?
운동을 하거나 산책하며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지금은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최근에는 그냥 스페인 라디오를 듣거나 산책만 한다.
-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광안리. 집에서 가깝고 바다도 보고 조용하고 산책하기 좋다.
-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만둣국, 계란찜, 소고기 바비큐
(혼밥하는 만둣국 단골식당이 있을 정도로 만둣국을 좋아했습니다)
- 한국에서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한국에서는 처음 1년은 주로 축구를 하거나 술을 마셨지만 2년째부터는 축구와 관련된 스페인 현지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스페인에서는 카페보다 바에 많이 갔다. 스페인에서는 바에서 식사도 해결하고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실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는 그만큼 친한 친구가 없어서 그런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베스트프렌드가 없다.
-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핸즈카페의 ‘아이스카페모카’. 푸짐하게 나오는 양도 좋고 달콤해서 좋아한다. 스페인에서는 주로 에스프레소를 마셨는데 한국은 가격이 비쌌다. 아이스카페모카를 처음 마셔보고는 가격대비 에스프레소에 비해 큰 차이도 없고 양은 훨씬 많아서 아이스카페모카만 매일 마시게 됐다.
- 가장 즐거웠던 때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두 친형이 놀러와서 함께 서울과 부산을 여행했을 때.
- 가장 힘들었던 때는?
친했던 외국인친구들이 모두 떠나버렸을 때. 처음 1년간은 친구들이 떠날 때마다 슬펐는데 시간이 흐르니까 익숙해졌다.
- 여행 다니며 찍은 사진 중 가장 예뻤던 곳은?
부산 삼광사. 연등축제할 때 갔음.
- 가장 그리운 건?
스페인에 있는 집과 가족. 특히 형들. 집에서 막내이기 때문에 공항에서 떠나올 때 다들 눈물 흘리며 한 편의 드라마를 찍었다.
- 3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면서 연애는 몇 번 했나?
1번. 기간도 짧았다. 그리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라서 연애에 별 관심없었다.
- 연애상대의 국적은?
한국.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본인이 만났던 한국여자와 스페인여자의 차이점은?
스페인여자가 훨씬 성격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하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스페인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대체로 센 캐릭터가 많습니다)
- 한국에서 사는 건 좋았나?
좋았다. 만족한다.
- 그런데 왜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가?
공부하고, 일하고, 새로운 걸 경험하는 것으로 3년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일을 구할지 돌아갈지를 고민하던 중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 스페인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은?
성격이 급하고 오래 쉬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바로 일을 시작할 것 같다.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 확정된 건 아니라서 알려줄 수 없다.
- 그리스 경제위기가 스페인에도, 너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가?
그렇다. 스페인도 그리스처럼 될 수 있고 지금 스페인사회는 예전보다 경쟁이 치열해졌고 스페인사람들은 비관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다. 그런데 다시 한국에 올 수도 있다. 정해진 건 없다. (몇 년 후 이 친구는 스페인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 고향친구들이 한국은 어떤 나라냐고 묻는다면?
할 얘기가 너무 많으니까 그냥 직접 가보라고 할 것이다.
-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스포츠나 축구 관련 분야 일을 하고 싶다.
- 앞으로 꿈은?
행복하게 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