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저에게는 貴人인 Bryan님의 연락을 받고 다소 고민에 빠졌습니다. 새롭게 단장하는 ‘행복한 번역가’에 블로거로 초청하고 싶다는 것인데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며 自廢的(?) 노출기피증이 있는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지라 처음엔 좀 망설일 수밖에 없었지만 등 떠밀리는 심정으로 일단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행복한 번역가’에 찾아 오는 분은 번역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분이거나 번역가로 이미 활동하고 계신 분으로 배움을 찾는 분일진데 그 목마름에 물 한잔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연령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번역가는 나름 Fast Life의 온라인 현장을 살아야 하는데 저는 은퇴 후에 시골에서 텃밭 가꾸며 Slow life를 살면서 가끔 번역일을 하는 사람인데 거꾸로 가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나는 ‘행복한 번역가’에서 배움을 제공하기보다는 배움을 찾아야 하는 사람의 하나라는 점입니다. 사실 배우고자 한다면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속도에 한참 뒤떨어져 앉아 쉬고 있는 입장이라…(반환점이 있는 마라톤이라면 돌아올 때 슬쩍 끼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락했으니 그 이유를 갖다 붙여보면,

제 블로그가 다루는 분야를 특정 분야(Legal 또는 유사 분야)로 한정한다면 나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말도 있네요. 바로 特化하자는 것이니까요. 은퇴 전 직장에서 일할 때 영문 법률문서를 제법 다룬 경험이 있고 그간 번역 일감에서 Legal 분야가 제법 있었습니다. 번역가의 삶을 지향하는 젊은 분에 대해서는 제가 해 줄 말이 사실 별로 없습니다. Bryan님의 ‘행복한 번역가’에 있는 정보들이 좋은 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사실 저는 은퇴 후에서야 번역일을 하고 있는데 전업 주부의 부업과 유사한 성격이지요. 그런 저런 살아온 이야기도 지면을 채울 거리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또 제가 스스로 블로거가 되어 보는 것은 焉敢生心(언감생심)인데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는 기쁨도 있습니다(이건 정말 속으로만 먹고 있으려고 했는데…). 게다가 블로거로서 자료든 뭐든 만들다보면 스스로 배우게 되는 것도 있지요.

却說하고 이제(야) 제 블로그 제목에 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

사실 좀 느긋한 분위기의 말이 없을까하고 생각해 보다가 문득 ‘춘화추실’과 ‘수거’ 란 말이 떠올랐어요. 사이트 분위기에 맞지 않게 웬 한자어? 할 수도 있지만 한자어도 외래어지만 우리말이고 좀 있어 보이지 않을까(ㅎㅎ) 싶어서요. 춘화추실은 처음에 春花秋實인 줄 알고 찾아 보았더니(번역가는 a thorough researcher!)가 春華秋實이네요. 花자는 후대에 만들어진 同音同義異字라고 합니다. 또 水去는 法을 破字한 것입니다. 법은 물흐름과 같은 것임이 글의 생성 원리에 숨어 있다고 해야지요. 춘화추실은 글 그대로 봄의 꽃과 가을의 열매라는 뜻이니 ‘춘화추실수거’를 제목으로 삼아 ‘꽃이 피어야 가을에 열매 맺고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자라는 뜻으로 글자를 모아 붙였는데 그 중 춘화추실은 사실 원전이 있는 말입니다.

참고로 원전은 다음과 같습니다(본 포스팅에서 알맹이 있는 부분).

북제(北齊) 안지추(顔之推)의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편에 나오는 말로써,

夫學者, 猶種樹也, 春玩其華, 秋登其實. 講論文章, 春華也, 修身利行, 秋實也 [무릇 배운다는 것은 나무를 가꾸는 것과 같아서, 봄에는 꽃을 즐기고 가을에는 열매가 익는 것과 같다. 문장으로 말하고 논하는 것은 봄 꽃(을 보는 것)과 같고, 몸을 닦고 행실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가을 열매(를 수확하는 것)와 같다.]

*顔(얼굴 안) 訓(가르칠 훈) 勉(힘쓸 면) 猶(같을 유) 種(씨 종) 樹(나무 수) 玩(희롱할 완) 華(꽃 화) 登(오를, 익을 등) 實(열매 실) 修(닦을 수)

춘화추실의 숨은 뜻은 화려함과 소박함 또는 외적인 아름다움과 내적인 충실을 대비 비유한 말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제가 보기엔 블로그 제목으로 뽑은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비슷하지만 다른(似而非) 경우일까요?

지금까지, 좀 비약하면 씽 바람소리 나게 돌아가는 디지털 사회에서 느린 아날로그적 사색의 공간으로의 回歸를 꿈꾸어보는(시골에 살고 있어요!) 젊어 보았던 사람의 포스팅 1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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