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Comments

병원 통역 이야기

통역 커리어를 어느 정도 이어간 후에는 점점 병원 통역에 집중했습니다. 왜 하필 병원 통역에 집중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주차비도 비싸고 아예 차를 가지고 갈 수 없는 병원도 있었는데… 아마 보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글쎄요, 보람도 있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제가 통역을 한 병원은 UHN으로 묶여 있는 토론토의 큰 병원 세 곳(Toronto General Hospital, Toronto Western Hospital, Princess Margaret Cancer Centre)과 St. Joseph’s Hospital이 90% 이상이었습니다. Sunnybrook Hospital의 재활센터에도 종종 가고 Scarborough Grace Hospital과 North York General Hospital에도 가끔 갔습니다만, 주된 곳은 위의 네 곳입니다. 큰 병원들이라 구조가 무척 복잡했고 채용과정도 매우 까다로왔습니다. 서류심사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서명할 것도 정말 많고 오리엔테이션도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그래도 참고 쭉 따라갔더니 마침내 병원이 편안해 지는 시간도 오더군요. 요령이 생기니까 나중에는 어느 병원에서는 어디서 커피 사서 어디 가서 쉬면 되는지까지 빠삭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대부분의 통역 상황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간단히 알려주고 질문에 답해 주는 정도로 인터뷰가 끝나죠. 그래서 한 10분만에 끝납니다. 그렇게 보면 시간당 생산성/레이트가 엄청 높기도 하죠. 투석 환자는 투석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통역해 주고 일단 투석실에 들어가면 제 일은 끝났습니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바쁜 곳입니다. 환자 빼고요. 

병원 통역만 한 이년 하니까 산부인과 빼고는 병원부서 중에 정말 안 가본 곳이 없지 싶습니다. 각종 검사, 당뇨병 관리 교육, 암 병동에 이르기까지 다 다녀보았습니다. 정신병원에 가서 security door를 몇 겹을 통과해서 환자를 겨우 만났는데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결국 통역하지 못하고 그냥 나온 적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물론 제 잘못이 아니므로 저는 통역을 잘 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병원 통역을 하다보면 다음 번에도 제가 통역하게 해 달라고  환자가 간호사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부탁이 계속 전달되어 마침내 제가 어떤 환자의 고정 통역사가 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 환자의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아무래도 통역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환자와 가까와지면 아무래도 중립성(이건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습니다)을 잃기가 쉽습니다. 그런 점은 주의해야죠.

또 다른 하나는 정서적으로 너무 많이 연루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고정적으로 통역을 해 드리던 전립선암 환자분께서 결국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한 삼사 개월 전부터 통역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늘 활달하게 환자를 만나주던 임상시험 담당 간호사가 어느 날 사라져버려서 환자가 많이 당황해 했습니다. 임상시험약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이 분에게 시험약 투여가 중단된 것이죠. 그런 것을 다소 무뚝뚝한 의사가 설명했고 저는 또 그걸 받아 통역을 하다 보니 환자의 절망감이 제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분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이 귀 나쁜 제게도 잘 들렸습니다. 그런 점이 힘들어 통역 전에 환자 대기실에서 그 분을 봐도 저는 못 본 채 하고 한쪽 구석에 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실은 그 분과 대화하기가 너무 부담스러워 책을 읽는 척 한 것이죠. 그 분은 저를 잘 모르지만 실은 저는 그 분의 아들과 며느리를 한 다리 건너 알고 있는 터라 그 자녀들의 고통까지 어느 정도는 제게 느껴졌습니다. 그 분의 삶의 끝자락에 통역가로 제가 동행해 드린 시간이 그 분께 작은 편의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번 이야기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흘러버렸네요. 말 하듯 쓰다보니 이런 폐단이… 다음 이야기는 좀 밝은 것으로 채우기로 하고 오늘 이야기는 이만 하겠습니다.

2 thoughts on “병원 통역 이야기

  1. 경험해보지 못한 일의 이면을 일부 알게 되는것도 어느정도의 각오를 다지는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 마음이 따뜻한 분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댓글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