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탄생

이번 포스트는 Serena Yu님이 보내 주신 글입니다. 

Serena Yu, Full-time freelance English to Korean translator since 2014

http://enkotranslation.com

http://wellbeingcat.com

== 서평 ==

 

Bryan 선생님께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인간 번역기가 된 것 같은 생활을 하다가 요즘 약간 여유를 찾았다. 이 책은 2개월 전쯤 엄청난 양의 메모를 하며 다 읽었는데, 하도 배울 게 많아서 ‘전부 소화시키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으나, 책을 완독한 직후 나에게 발생한 <번역가를 과로사시키는 법 – 연쇄업무할당살인사건>에서 의외로 곧장 써먹은 내용이 다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5장, ‘수동태 길들이기’에서 다룬 내용이 있다.

Rococo architecture is charming and beguiling in small structures and, when tastefully done, even in larger buildings.

직역을 하면 “로코코 건축은 작은 건물이 제격이지만 잘만 지어지면 규모가 큰 건물에서도 참맛을 느낄 수 있다.”가 되겠지만 ‘지어지면’이라는 수동형과 ‘느낄 수’라는 능동형이 삐걱거립니다. 번역을 할 때는 이렇게 술어를 수동태면 수동태, 능동태면 능동태로 통일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앞의 서론적 논의는 동서양의 종잡기 힘든 다양한 역사적 문제들을 제기하기 위해 이루어졌다.”처럼 수동태와 능동태가 어지럽게 뒤섞인 문장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수동태 문장은 될수록 능동태 문장으로 바꾼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한국어 번역문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7장, ‘죽은 문장 살려내는 부사’에서 익힌 내용도 관광 관련업체 웹사이트 현지화를 맡았을 때 요긴히 써먹었다.

한국어에서 부사는 영어에서보다 섬세하게 쓰입니다. 그것은 부사의 종류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령 “A dog suddenly attacked me.”라는 영문을 한국어로는 “개가 나한테 갑자기 덤벼들었다.” 정도로 옮길 수 있겠지요. 무난한 번역입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번역이기도 합니다. 한국어가 지닌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뜻은 같더라도 누구한테 갑자기 덤벼드는 상황을 묘사할 때는 ‘홱 덤벼들었다’라고 하면 더 실감이 나지 않을까요. ..(중략).. ‘갑자기 껴안았다’보다는 ‘와락 껴안았다’가, ‘갑자기 낚아챘다’보다는 ‘덥석 낚아챘다’가,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보다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가, ‘갑자기 겁이 났다’보다는 ‘덜컥 겁이 났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보다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가, ‘갑자기 화를 냈다’보다는 ‘버럭 화를 냈다’가 그때그때 상황을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그려내는 부사를 많이 거느린 한국어의 강점을 잘 살린 번역일 것입니다. ..(중략).. 포괄적인 뜻을 지닌 영어 부사는 구체적인 뜻을 지닌 한국어 부사로 옮겨주자, 이것이 이 장에서 첫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원칙입니다.

영한사전에 나오는 뜻 풀이에만 기대어서는 이렇게 생동감 있는 번역을 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영어를 한국어답게 잘 번역하려면 한국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옵니다. ..(중략).. 영어는 특히 동사를 많이 알아야 하고 한국어는 부사를 많이 알아야 합니다.

다음의 내용도, 단순하면서도 활용도가 높다.

접속사 and를 처리하는 방식을 소개하겠습니다.

The most important goals of democracy is to protect the liberties, rights, and interests of all citizens.

  1.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모든 국민의 자유, 권리, 그리고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
  2.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모든 국민의 자유와 권리,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

영어에서는 둘 이상의 명사를 나열할 때는 반드시 끝에다 접속사 and를 넣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한국어로 번역을 할 때는 대체로 직역을 해서 첫번째 번역문처럼 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번역문이 아니라 한국어 창작문에서도 영어 and처럼 ‘그리고’를 많이 씁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명사를 나열할 때는 ‘와’라는 조사를 먼저 앞세워줍니다.

이렇게 짧은 발췌를 통해서도 저자의 내공이 충분히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사실 이건 제목을 좀 잘못 짓지 않았나 싶은 책이다. 당연히 번역에 관한 책인 것까지는 알겠지만, <번역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눈에 담았을 때 ‘어머! 이건 꼭 읽어야 해!’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구입만 해 놓고 한참을 들춰보지도 않았던 이유는 다 제목 때문이라고 탓을 해 보며, 이 책에 어울리는 제목을 다시 지어 보자면.. <번역, 다알랴줌> 이라든가, <이렇게 번역하면 평타 이상 침>이라든가. 너무 갔나?

프루프리딩을 하다 보면 다이아몬드꼴 분포로, 이걸 진짜 돈을 받고 한 건지 의심이 드는 번역이 드물게 있고, 대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번역문이며, 이걸 옮긴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싶은 번역도 가끔 있다. 막연히 ‘이런 실력을 훔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겸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던 번역문의 공통점이 이 책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 보자.

마감이 잇따르면 새로 익힌 내용을 써먹을 생각까지 하지는 못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번역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당연하지만 뻔한 패턴이 이어질 때, 번역 품질은 잘 해봐야 현상유지를 벗어날 수 없다. 일이 없는 기간을 이용해서 새로운 기술이 손에 익어 자동으로 흘러나올 때까지 훈련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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