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사고력이 떨어지면 번역을 못한다

언어 사고력

외국어 실력이나 우리말 실력과 별개로 번역에 꼭 필요한 능력을 꼽자면 언어 능력이 있습니다. 언어 사고력, 독해력, 문해력이라 할 수 있는데 번역에 핵심으로 필요한 능력입니다. 수능 국어 영역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외국어나 우리말을 모르면 번역을 못하듯이 언어 사고력이 부족하면 번역을 못합니다. 절대 못 합니다.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번역을 내어놓으니까요. 쉽게 말해 오역이죠. 외국어를 원어민처럼 잘해도 독해력이 떨어져 오역이 나옵니다. 외국어를 잘하는 능력과 별개라는 뜻이죠. ‘설마 내가 언어 사고력이 달리겠어?’ 그런데 언어 사고력이 달려서 번역을 못하는 분을 아주 많이 봤습니다. 해외 체류 15년 대학원 졸업생,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 현역 한영 번역가도 있었죠. 이 능력은 학력, 경력과 아무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언어 사고력의 정의

OECD에서 실시하는 국제 성인 역량 조사 PIAAC(Program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는 성인들의 언어 능력, 수리력, 컴퓨터 기반 환경에서의 문제 해결력을 평가하는 테스트입니다. 언어 능력을 총 5등급으로 나누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언어 능력이 뛰어나죠. 언어 사고력이 무엇인지 사전에 정의되어 있지 않고 각종 적성 시험마다 언어 능력 정의가 다르지만 제 경험을 바탕으로 번역에 필요한 언어 사고력을 추정해 보면 이 등급 해설표가 적절한 설명일 듯합니다. 고영성, 신영준의 <완벽한 공부법, 1권>에서 발췌했습니다.

2등급: 둘 이상의 정보를 통합할 수 있고, 비교 대조하거나 간단한 추리나 추론을 할 수 있다. 정보에 접근하고 필요한 정보를 식별하기 위해 다양한 디지털 텍스트를 검토할 수 있다.

3등급: 여러 페이지에 걸친 비교적 난해하고 긴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 텍스트의 구조를 이해하고 여기에 구사한 수사법을 간파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여러 곳에서 정보를 얻고 해석하여 적절한 추론을 할 수 있다.

4등급: 복잡하거나 긴 텍스트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체계적으로 정보를 조합, 해석, 축적할 수 있다. 텍스트의 배경에 깔린 주장을 해석하거나 평가할 수 있으며 이를 적용하여 복잡한 추론이나 설득을 할 수 있다.

5등급: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어려운 텍스트에서 정보를 찾고 축적할 수 있다. 또한, 텍스트에서 핵심 아이디어를 추려 내고 분류하고 재구성할 수 있으며 증거와 논증에 기반을 두어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모형을 수립할 수 있으며, 텍스트에서 핵심 정보를 추출하고 객관적으로 그 신뢰도와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다.

3등급 이상이 되어야 토론이 원활하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 번역을 하려면 최고 수준 4-5등급의 언어 능력이 지녀야 합니다. 그런데 이 평가에서 우리나라 성인은 몇 등급을 받았을까요? 평균 2등급입니다. 20대보다 30-40대가 언어 능력이 떨어지고 50대 60대로 갈수록 더 떨어진다고 하는군요. 2등급이면 복잡한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토론도 원만하게 진행하지 못합니다. 이제 좀 긴장이 되시나요? 현실입니다. 언어 사고력이 떨어지면 번역은 포기해야 합니다.

문해력

문해력의 사전적 정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지만 위키백과에 따르면 단순한 이해를 넘어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하여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합니다. 윤준채 교수의 <문해력의 개념과 국내외 연구 경향>에서는 더욱 확장된 정의가 나옵니다. ‘글의 표면에 나타나 있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미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사회 정치적 이데올로기, 즉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누구의 가치와 신념을 반영하고 있는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죠.

번역에 필요한 언어 사고력을 이러한 문해력 정의로도 조명해 보세요.

그럼 언어 사고력을 키울 방법이 있을까요? 흔히 다독(多讀)을 권장하지만 언어 능력, 사고력, 문해력은 어린 시절부터 다독, 토론, 지도 등을 통해 꾸준히 배양해야 하는 자질입니다. 수십 년을 공들여야 하는 분야고요. 어른이 되어 갑자기 다독한다고 쉽게 향상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 이제… 선택의 시간입니다.

선택의 시간

언어 사고력 수준이 상당히 높지 않으면 번역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언어 사고력이 높지 않다고 해서, 그래서 번역을 못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을 필요도 없습니다. 번역에 맞지 않는다 뿐이지 다른 분야에서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번역에는 별 소질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부모 사이에서 수요가 높은 인기 영어 강사, 기업 마케팅 분야에서 인정받는 인재, 대학 수석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번역에 필요한 언어 사고력이란 글을 이해하는 문해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비즈니스 역량, 대인 관계, 가르치는 기술, 임기응변과 순발력, 전문 분야 지식 등 개개인이 지닌 실력은 무궁무진하게 많고 이를 찾아 자기의 길을 개척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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