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온라인 CAT tool은 환상의 오퍼인가?

에이전시들 중에서는 무료 온라인 CAT tool을 운영하는 에이전시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회사들은 소스 문서들을 자기들이 이미 다 자기네 시스템에 import 해서 segmentation을 해 놓고, 그 상태에서 번역가가 로그인해서 번역만 해 주고 나가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번역가를 위한 환상의 오퍼인 것처럼 표현합니다. 번역가가 자기 돈으로 어떤 CAT tool을 사서 컴퓨터에 설치해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그냥 자기네 에이전시 시스템에 온라인으로 로그인해서 작업을 하고 나가면 나머지는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런 툴들도 TM이 제공되기 때문에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번역가 자신이 소유한 CAT tool과 비교해서 그것이 객관적으로 더 나은지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번역가에게 어떤 것이 더 익숙한가, 어떤 스타일의 CAT tool을 더 선호하는가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CAT tool 사용의 주요 이점 중 하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번역가의 TM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번역가의 머릿속에 증가하는 언어적 지식과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처리하기 어려운 어떤 특정한 문구에 대한 번역, 특수 용어들에 대한 번역, 그리고 흔히 나오는 문장들에 대한 번역이 TM 형태로 번역가의 컴퓨터에 저장되는 것은 참으로 신나고 희망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번역가의 작업이 점점 더 쉬워지고 정확해지고 효율적으로 될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라인 CAT tool을 사용하여 번역을 한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번역가는 해당 번역을 통해 생성된 TM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 이후 다른 에이전시에서 다른 프로젝트를 받아서 작업하다가 비슷한 문장이 나와도 번역가는 다시 생으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원리에 위배됩니다. 즉, 시간이 갈수록 번역가의 작업이 쉬워지고 빨라지고 질이 높아져 가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의 핵심인 TM이 번역가에게 남지 않는다면, 번역가는 매번 같은 문구, 같은 문장을 또 생으로 에너지를 들여서 번역할 수밖에 없겠죠? 물론 그 번역가가 평생 그 에이전시하고만 일을 한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런 일은 어차피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으니까 고려할 가치가 없고, 그렇다면 번역가는 그렇게 온라인 CAT tool로 일을 할 때마다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나온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저는 에이전시들이 일부러 자신들이 TM을 독차지하기 위해 온라인 CAT tool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자신만의 CAT tool이 없는 번역가로서는 처음으로 그런 것을 접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에이전시에서는 “귀하는 CAT tool이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다 제공해 드리니까 귀하께서는 그저 번역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하는 식으로 광고를 합니다.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번역가의 지적 산물인 TM을 하나도 못 건지고 빈손으로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은행에 돈 찾으러 갔다가 찾은 돈 반은 은행 직원에게 주고 나오는 셈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와 꽤 오랫동안 같이 일해온 좋은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는 XTM이라는 온라인 시스템을 운영했습니다. 저는 XTM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뭐 그런대로 쓸만한 시스템입니다. (다만 에이전시의 커넥션이 매우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결국 결별을 했습니다. 아무리 번역해도 번역 그 자체에 대한 보상만 받을 뿐이지 TM은 제가 가져올 길이 없었거든요. (물론 번역과정에서 온라인 리소스를 쓸 수 없어서 번역 작업상의 효율도 문제가 되긴 했습니다.) 이에 반해 제가 함께 일하는 어떤 회사는 똑같은 XTM을 운영하는데 그 회사는 저의 요구를 받아들여 저만의 CAT tool을 사용하도록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회사에서 그저 소스파일만 받아서 제가 제 컴퓨터로 작업을 합니다. (아마도 다른 언어의 번역가들은 아직도 다 XTM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번역 후에 tmx 파일을 보내 달라고 하면 보내 주기도 합니다. (에이전시가 tmx 파일을 달라고 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프로젝트에서 tm match를 잡아내고 할인을 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건 뭐 괜찮습니다.)

 

단기적으로 쉽게(사실 새로운 시스템이라서 익숙해져야 하니까 뭐 그렇게 쉽지도 않습니다) 온라인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과, 어렵고 비용도 들지만 자신만의 CAT tool을 사용하는 것,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4 Comments

  1.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네요.

    CAT 툴을 구입한다고 하면
    Trados가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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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