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비즈니스의 큰 변화와 인터넷 번역 시장

번역가가 되려면 지속적인 번역 일거리와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고객들을 찾아내고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계약을 맺고 작업을 한 후에 그것을 넘겨 주고 청구서를 보내고 돈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 추상적(혹은 물리적) 공간이 ‘시장’입니다. 그럼 번역 시장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말은 이상한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게 어디 따로 있나?”

 

어떤 분들은 출판사 같은 곳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혹은 종로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볼 수 있는 ‘번역/공증’같은 간판이 있는 허름한 2층 사무실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 들으십시오. 그런 곳은 다 잊어버리십시오.

 

1990년대 이후로 세계는 근본적으로 변하였습니다. 인터넷 때문입니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터넷은 사람들이 사는 방식, 일하는 방식, 노는 방식, 심지어 생각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질까 봐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오늘 제목에 대한 답을 간단명료하게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오늘날 번역 시장은 인터넷에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저나 또 다른 많은 분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정말?”하는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블로그는 상당 부분 그런 분들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번역 수요자들과 공급자들은 인터넷에서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우선 인터넷으로 번역가와 고객이 서로 만납니다. 서로를 찾아내는 거죠. 그리고 계약을 하고 번역 자료(전자 파일)를 서로 주고 받습니다. 그 후, 인터넷을 사용하여 혹은 일정 부분은 아예 인터넷상에서(온라인 CAT tool을 사용할 경우) 번역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인터넷으로 청구서가 보내지고 번역료도(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해 지불됩니다(PayPal).

 

이것은 번역가들에게 혁신적인 새 세상이 열린 것을 의미합니다. 두려운 미지의 세계가 덮쳤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고, 오히려 번역가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밝은 미래가 동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를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 번역 물량의 폭발적 증가

 

 인터넷은 지식과 정보의 바다를 이루었고, 많은 개인, 기업, 정부, 단체들이 글로벌화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동기를 제공했습니다. 옛날에도 정부나 대기업들에게는 언어와 관련된 수요가 있었겠지만 요즘처럼 작은 중소기업, 지방 정부, 심지어 개인들까지도 여러 나라 언어로 자신들의 정보를 번역할 필요가 있는 그런 세상은 유사 이래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기존 시장이 편리해지고 속도가 빨라진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가 폭발적으로 커진 것입니다. 언어 시장의 증가 속도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나중에 다른 포스트에서 이것에 대해 따로 다루겠습니다.)

 

인터넷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한 지식의 창출과 그 지식에 기반을 둔 새로운 방식의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의료, 정부 운영 방식이 계속해서 구상되고 실험되고 정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당연히 번역을 필요로 하지요. 또 하나. 대규모 이민으로 말미암아 북미와 유럽이 점차 다민족 다문화 지역으로 변화해 왔는데, 이것 또한 언어 수요(언어 수요는 번역을 포함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다양한 형태의 언어 변환 작업을 말합니다)의 폭발적 증가에 한몫을 했고요.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언어 시장의 중심지는 압도적으로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입니다.그런 요소들이 작용하여 번역 시장은 5년마다 40%씩 성장하는 멀티빌리언 달러 시장입니다. (이런 시장이 또 어디 있죠? 스마트폰 시장 정도?)

 

 

  • 번역가의 파워와 지위 향상

 

 인터넷 이전 시대에는 번역 시장은 번역 수요자(기업, 출판사 등) 중심의 시장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번역가는 그 관계의 형태가 어떠하든지(직접 고용이든 계약 관계이든 상관 없이) 번역 수요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요즘 한참 많이 쓰는 ‘갑’과 ‘을’에서 번역가는 을, 그것도 정말 힘없는 을에 불과했지요.

 

자신을 알릴 길도 별로 없고, 어쩌다 알게 되고 형성된 인맥을 따라 흘러 들어오는 작은 일감을 감지덕지하면서 고맙게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러나 세상이 달라져서 인터넷상에서 언어 수요자들과 언어 공급자들이 다대다(多對多)로 만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언어 수요자도 언어 공급자도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아졌고, 좋은 번역 서비스를 확보하려면 언어 수요자들도 인터넷상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경쟁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번역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상황은 너무나 좋은 상황입니다. 언어 수요자도 언어 공급자를 고르지만, 거꾸로 언어 공급자 역시 언어 수요자를 고를 수 있게 되었거든요. (사실 언어 공급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번역가로만 한정해서 생각하겠습니다. 나중에 번역 시장 분석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그 결과, 이제 번역가는 비로소 자신이 오랫동안 노력하여 갖춘 실력과 명성에 걸맞는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수요자와 공급자가 서로 선택할 수 있게 된 상황은, 일단 지금까지 ‘을’의 입장에만 처해 있던 번역자가 수요자와 대등한 위치로 승격된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시장에서 ‘을’로 지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영어로 말하면, 시장에서 번역자는 더 이상 job seeker가 아닌 language service provider라는 사업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능력 있고 성실한 번역가들에게는 찬란한 태양이 떠오른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옛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공급자들과 수요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특별히 심한 국가도 있고요. 그건 어쩌겠어요? 본인들이 눈을 뜨고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야죠. 바꾸지 못하면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만 손해입니다. 번역가의 입장에서 그런 상황을 말하자면, 늘 고객에게 끌려다니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하고 일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지내는 것이겠죠? 안 그래도 되는데 그렇게 지내는 번역가들…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의 여러 부분에서 계속해서 강조해 나가겠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이 스스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여기저기서 하는 말들이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변화된 상황을 직시하고 그 상황에 제대로 대처해야 하며, 무엇보다 그 변화된 상황이 가져다 준 놀라운 기회, 바다와 같은 가능성을 자신이 스스로를 가두어 둔 고정관념 때문에 흘려 보내서는 안됩니다.

 

 

  • 번역가의 생산성의 폭발적 증가

 

고등학교 시절에 영어 문장 하나 앞에 놓고 번역하던 생각이 납니다. 우선 두툼한 사전으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그래도 문장이 이해가 안 되면 용례까지 다 읽어보고, 그 다음에 관계대명사절에 줄 쭉 긋고 그것이 어디에 간다면서 화살표를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고 나서 그 다음에 종이에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고 그 다음에 또 여기저기 수정해서 문장 하나를 번역했었죠. 뭐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야 그런 과정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해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번역과 비교해 보면 참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번역해서는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 해도 번역으로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번역의 과정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사전도 드래그 한 번에 자판 한 번 눌러주면 화면에서 바로 찾아지고, 전에 이미 번역했던 문장이 있다면 그것은 타이핑할 필요도 없이 바로 이용할 수 있고, 생소한 개념도 너무 손쉽게 즉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앞에서 자신이 이 용어를 뭐라고 번역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몇 페이지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번역에 놀라운 일관성이 생깁니다. 잘못 번역한 것을 고치는 것도 순식간에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제가 존경하던 번역가님께서는 댁에 백과사전 전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필요 없습니다. 백과사전 가격의 몇 만 분의 일의 비용으로 더 업데이트 잘 되고 전문가들이 직접 해설해 놓은 정보와 지식을 손끝에서 순식간에 찾아내니까요. 이런 것은 나중에 자세히 포스팅을 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터넷을 기반을 둔 CAT tool 덕분입니다(CAT tool이 뭔지는 나중에…).

 

요는 인터넷 덕분에, 그리고 인터넷에 기반을 둔 CAT tool 덕분에 생산성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고, 질(정확성, 이해에 기초한 번역, 그 분야에서 쓰이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번역 등)도 훨씬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놀라운 기술적 도움들을 이용하지 않으면 이제는 글로벌화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도 됩니다. 냉엄한 현실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인터넷 번역 시장의 구조와 그 시장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해 쓰겠습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5 Comments

  1. […] 쌍수를 들어 환영할 밝은 미래가 동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 인터넷 번역 시장 소개", "남의 인격을 짓밟지도 말고 또 남에게 짓밟히지도 말고, 어디까지나 […]

  2. 좋은 글 감사합니다. 초중급 번역가로서 몇개월안됐지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생각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오아시스같은 존재이십니다. 앞으로도 진심어린 유익한글 많이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앗, 쑥스럽습니다. ㅎㅎ 그리고 감사합니다. 좋은 일이 많이 있으시길 바라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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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