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관리: 최대한 여유있는 삶을 사는 법

우리는 모두 그렇게 배웠습니다. 아니 세뇌를 당했습니다. 바쁜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바쁜 것은 좋은 것이라고. 바쁜 것은 섹시한 것이라고. 그에 반해 바쁘지 않다는 것은 능력이 없으니까 할 일도 없는 것이거나, 할 일이 있는데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라고.

 

 

TV 광고를 보세요. 능력 있는 사람의 모습이란 어떤 것입니까? 바쁜 사람, 분주한 사람, 늘 약속이 있는 사람, 뭔가를 쉬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학교 다닐 때도 모범생은 늘 놀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항상 뭘 해야 할지 알고, 시간 정확히 지키고, 숙제는 늘 잊지 않고 항상 잘 해오고, 규칙을 어기는 법이 없고, 전과목 성적이 고루 우수하고…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그 모범생은 늘 바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많은 걸 다 하려고 하니 당연히 바쁘죠. 아마 어쩌면 그때부터 바쁜 것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머릿속에 깊이 심어졌는지 모르죠.

 

그런데 그런 모범생의 문제가 뭔지 아세요? 모든 걸 다 잘하고 모든 걸 신경 쓰고 살려고 하니, 뭐 하나 제대로 집중해서 해 볼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정말 하고 싶은 것도 해 볼 시간도 없어요. 그런 것을 하려면 모범생 딱지 떼이기 십상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일단 고루 잘 나오던 성적이 들쑥날쑥하기 시작하겠죠? 그렇게 되면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모범생은 지레 겁을 집어먹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른 것 다 억누르고 다시 모범생의 루틴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모범생으로 살면, 이렇게 주어진 것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서 살면, 언젠가는 보상이 주어지겠지.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겠지. 언젠가는 그럴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기겠지.” 그런 마음으로 나의 호기심, 나의 장난기, 나의 모험심, 나의 열정, 나의 꿈, 나의 사랑을 지그시 눌러버리죠. 그리고 내가 못하는 것도 잘 하려고 애쓰고 내가 이미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약간은 억누르고 덜 함으로써 내가 잘 못하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그런 선택을 하죠. (이건 정말 눈물 나도록 병신 같은 짓입니다. 지금은 후회해 봐야 별 소용없지만 정말 병신 짓이었습니다.)

 

그 뒤 그 모범생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야 성인이 되면 압니다. 그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대학을 가도, 직장에 취직해도,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도, 승진을 해도, 그 ‘언젠가’는 항상 저 멀리 달아나 있고, ‘지금’은 항상 희생해야 할 시간, 의무를 다해야 할 시간, 균형을 맞추고 살아야 할 시간, 시간을 잘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나도 이제는 나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고 싶은데,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이 아니라 생각도 좀 하고 사는 삶, 삶의 여유를 느끼며 사는 삶, 삶의 맛과 향기를 음미하며 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데, 정말 중요한 것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데, 내게 주어진 의무, 내게 기대되는 것, 내가 처한 상황이 나에게 그런 것을 허락하지를 않는다.’ 뭐 이런 것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요? 성실하게 어른들이 혹은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아 온 사람들의 마음 말입니다.

 

자기가 어리석어서 잘못 살아온 것을 괜히 거창한 이론을 들이대며 사회 탓, 세상 탓, 누군가의 음모로 돌리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고 쓸모 없는 짓입니다마는, 그래도 제게 한 가지 깨달음이 있어서 이 대목에서 잠깐 나누고 지나가고 싶습니다. 뭐냐 하면, ‘교육의 목표’에 대한 겁니다. 마르크스의 생각대로 교육이란 것이 이 세상의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제가 받은 교육은, 우리 시대의 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떤 지배자들의 어떤 이익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소위 ‘산업화’를 이루려고 했던 지도자/지배자들이 그 ‘산업화’된 사회에서 일할 일군을 양성하는 것이었던 듯합니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기능 올림픽’인가 하는 것을 TV로 중계도 하고, 학생들은 군인들처럼 제복을 입혀서 규율을 가르치고, ‘근면 성실’하게 일을 하는 윤리를 주입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딴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면서 큰 공장에서 일을 해낼 수 있는 산업 역군, 그리고 그 산업 역군들을 관리할 소수의 관리자들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던 것이죠. 심지어 이미 학교 시스템을 벗어난 성인들조차도 온갖 정신 교육을 통해 이 시스템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서 이 시스템이 순조롭게 돌아가게 만들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남한의 ‘새마을 운동’이니 북한의 ‘새벽별 보기 운동’이니 ‘천리마 속도전’이니 하는 것도 모두 그런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이긴 하지만, 그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새벽부터 동사무소에서 확성기로 새마을운동 노래를 틀면 어른 아이 없이 다 나와서 동네를 청소하게 만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믿기지 않는 일이죠.)

 

다행히 시대가 변했습니다. 사회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다양해지고, 지배자/지도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변화들도 많이 생겨나서 그들도 그 변화를 파악하고 소화하느라고 바쁜 것 같습니다. 학자들은 그런 변화를 정보화시대니, 지식경제화니 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공장 굴뚝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어야 잘 살게 되는 시대가 아닌 시대가 된 겁니다. 그러나 교육은 아직 그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옛날 산업역군 교육을 받은 성인들은 아직도 그런 정신으로 계속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요. 자녀 교육을 어떻게, 그리고 왜 시키십니까? 왜 공부 열심히 하라고, 성적 잘 받으라고 하십니까? 그렇게 해서 어쩌라고요? 요약을 하면 “공부 잘 하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대학 가면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면 떳떳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그런 논리잖아요. 그런데 그게 어디 사실인가요? 정말 그렇게 좋은 회사 취직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나요? 뭐가 좋은 회사인지는 몰라도,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회사에 오래 다니지 않는(못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습니다. 미국 얘기지만 1957년에서 1964년생까지의 사람들이 평균(!) 11개의 다른 job을 가졌다고 하더군요(Bureau of Labor Statistics).

 

이 세대가 평균 4.4년에 한 번 직업을 바꾸었으면, 그 아래 세대는 또 어떻게 될지 짐작이 됩니다. 더 좋은 직업을 향해 노동자들이 이기적으로 요리조리 약삭빠르게 직장을 옮겨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철면피 같은 주장입니다. 이 길(피고용자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가히 상상하기 힘들죠. 그래서 저는 제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남에게 고용되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지 말라고요. 성적이니 학벌이니 조금도 따지지 말고 네가 주체가 되어서 너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눈빛이 좀 달라지더군요. ㅎㅎ).

 

본론으로 돌아와서, 다시 시간 얘기 하겠습니다. 사실 시간 얘기하는 이유는 이런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삶을 내가 주체가 되어서 살아 가려면, 그게 뭐가 되었든 상당히 심각한 고민을 하고, 심각한 결심을 하고, 심각하게 실행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지금도 바빠서 눈 코 뜰 새가 없는데 언제 그런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번역가가 되는 길로 들어서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둘 다 결코 저절로는 되지 않는 일이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애를 써도 이루어질까 말까 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그렇게 바빠서 생각해 볼 여유도 없다면 전혀 가망이 없죠.

 

제 인생에 가장 한심한 순간 하나를 말씀드릴게요(뭐 그런 순간이 한 둘이 아니지만 이 주제와 관련된 것 하나만). 제가 오래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인데, 정말 너무 바빠서 일에 파묻히겠더군요. 그래서 더 일찍 출근했습니다. 일찍 와서 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생각이 필요한 일은 주위에 아무도 없고 전화도 오지 않는 조용한 그 때를 이용하여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정규 업무 시간에도 회사에서 가르치는 시간 관리 요령을 총동원해서 일을 정말 마구 해치웠죠. 일에 쫓겨 다니지 않고 일을 좀 지배해 보려고요. 성공했을까요? 못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제가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회사 일이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유난 떤다고 되는 게 아닌 측면이 우선 있고, 일부 일은 남들이 일하지 않는 때에 먼저 와서 끝내 놓으면 그런 정도의 노력은 그 다음부터는 아예 당연한 것이 되더군요. 남는 시간에 여유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이 주어지니 말이죠. 게다가 나의 시간과의 사투를 우습게 만드는 온갖 쓸데없는 긴 회의, 헛발질하는 프로젝트, 강제 회식… 그 당시는 정말 물에 빠진 사람이 공기를 조금이라도 마셔 보려고 허우적대는 꼴이었습니다.

 

 

그때 노트에 적은 것이 있어요. “나에게 한 달만 시간을 주자.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생각을 좀 해 보게.” 참 한심하죠? 그래도 그 때의 뼈저린 깨달음 때문에 전 미련이 없어요. 또 제 아이들에게도 남에게 고용될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을 하는 거고요.

 

오늘은 왜 이렇게 본론을 따라 쭉쭉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옆으로 새는지. 그게 제 특기이긴 해요. :D 옆으로 새는 거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러면 지금 이렇게 바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해서 시간을 만들어 내면 될까요? 자투리 시간이라도 쪼개서 외국어 공부라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저처럼 새벽부터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해서 돈을 좀 저축해 두면 이런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해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절대로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지금 직장생활하는 것이 뭘 ‘열심히’ 하지 않아서입니까? ‘바쁘게’ 일하지 않아서입니까? ‘시간을 쪼개서’ 일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까? 그런 것이면 한번 해 볼 만하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했는데 그 결과 오늘의 이 바쁜 처지에 떨어진 것이라면, 그걸 더 열심히 해서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맞을 듯합니다. 뭐든 더 열심히 하면 결국은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가 받은 세뇌의 핵심 아닙니까? 그걸 벗어나야 합니다.

 

제가 오늘 대단한 말 좀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좀 얼토당토 않더라도 좀 참고 읽어 주십시오. 뭐 못 참겠으면 언제든 그만 읽으셔도 되지만요.

 

남에게 고용되어 정신없는 삶을 살고 계시다면, 그래서 그것을 탈출하고 싶으시다면, 그래서 그것이 뭐가 되었든 내가 중심이 되는 삶,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으시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1) 생각을 바꾸는 일입니다.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힌 관념을 바꾸는 것이죠. 일종의 unlearning을 하는 거죠. 마음의 detoxification 과정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그런 다음에는 2)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3)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나씩 보죠.

 

생각 바꾸기

코끼리를 어릴 때부터 사슬로 기둥에 묶어 놓으면, 나중에는 사슬을 풀어주어도 꼭 그 사슬 길이만큼만 간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학습인데, 이런 경우 학습된 내용이 코끼리에게 불리한 것이고 독이 되는 것이니까, 학습된 생각과 믿음을 버려야 하겠죠. 우리는 코끼리가 아니니까 좀 더 쉬울 것 같지만, 그래도 참 만만치가 않습니다. 아래에 오늘 주제와 관련하여 제가 생각할 때 버려야 할 관념들을 열거해 보았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

 

 

이건 저축 많이 하라고 할 때 하는 얘긴데, 시간에 대해서도 많이 쓰는 것 같더군요. “조그만 자투리 시간도 그것을 아껴서 모아보면 꽤 큰 시간이 되니까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다 활용해라.” 뭐 그런 얘기죠. 초 단위로 경영을 하라나 그런 얘기도 들은 것 같고요. 그런데 그런 얘기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티끌은 모아봤자 절대 태산 안됩니다. 꼭 티끌 안 모아 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해요. 예컨대 엘리베이터 타는 시간, 전화를 걸 때 신호 가는 시간, 뭐 그런 것 다 모아서 한 달에 20시간 만들 수 있나요? 어림없습니다. 설령 만들어도 그런 조각 난 시간을 가지고 뭔가 의식적이고 일관성 있고 방향이 뚜렷한 집중된 노력을 할 수 있나요?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해보지 않은 분들일 겁니다. 엔진이 열을 받는 데 시간이 걸리듯이 사람이 집중해서 뭔가를 하는 데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중간에 툭툭 끊어지는 자투리 시간을 가지고서는 집중력이 필요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설령 티끌 같은 짧은 조각 시간을 눈물겹게 모아 하루에 한 시간을 만들었다 해도 실제로 그 한 시간 동안에 어떤 의미 있는 일 단위를 성취할 수는 없는 겁니다. 티끌은 열심히 모아 봐야 한 줌의 티끌입니다. 몇 억년 모으면 바위나 집채만해질지 몰라도 우린 몇 억년 못 사니까 그런 얘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원리를 믿고 티끌만한 돈이나 티끌만한 시간에 집착하고 있다가는 우리가 원하는 것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 합니다. 티끌은 무시하고 크고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에 온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자.”

이건 티끌 모아 태산보다는 조금 나은 생각이긴 한데, 그래도 크게 봐서 쓸모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효율은 해야 할 일을 더 빨리 하는 것인데, 그런다고 일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한번 해 보세요. 심지어 순전히 개인적인 삶에서도 뭘 더 빨리 한다고 시간이 나던가요? 언제나 뭔가 또 다른 해야 할 일이 생기죠.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일이 효율적으로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전거로 어디를 가는 것보다 자동차로 가면 더 빠르지만, 그렇게 가는 목적이 처음부터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면 자동차로 더 빨리 가서 시간을 절약했다든가 효율을 높였다든가 하는 말은 기만에 가까운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는 늘 상급자가 결정하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결정된 것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만이 임무인 그런 시스템, 그런 시스템을 위한 교육을 받았으니까 ‘효율’이 그다지도 가치있는 것, 그다지도 중요한 것, 그다지도 상 받을 만한 것이 된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비효율적일수록 좋은 것도 많습니다. 천천히 할수록, 아니 천천히 해야만 좋은 것도 많습니다. 인생이란 효율적으로 살아 치우는 것이 아니잖아요? 소중한 내 삶으로 뭘 할지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내 인생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는 임무, 그런 것도 남에게 맡겨서 효율적으로 처리하시겠습니까? 잠시 동안이라도 ‘효율’을 나쁜 것으로 여기십시오. 거짓 약속으로, 공수표로, 불량식품 같은 것으로 여기십시오. 적어도 나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내 삶의 시간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좋겠는지를 결정하기까지는 말입니다.

 

 

바쁜 것이 능력 있는 것?

바쁜 것은 능력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끌고 다닌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은데도 바쁘다면 그건 무능력한 것이고요. 입만 열면 바쁘다고 하는 사람은 불쌍하거나, 거짓말쟁이거나, 무능력한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허둥대는 사람, 자기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사람, 시시한 일로 시간을 채우면서 자기는 이렇게 바쁘니까 나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삶의 고수는 바쁘지 않습니다. 남 보기에는 바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고 몰입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상태를 다른 사람이 보고 “그 사람 바쁘다” 하고 말하는 겁니다. 삶의 고수의 삶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니까 늘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자기 한계를 알아서 포기할 줄 아니까 몸과 마음이 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들에게 바빠 죽겠다면서 슬며시 미소 짓는 사람은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광고하는 겁니다.

 

 

“할 일을 해야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

언젠지는 몰라도 인류 역사상 그런 것이 가능한 시대가 있긴 했을 겁니다. 구석기시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할 일을 다 하고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하면 안 되죠. ‘가능한 한 할 일을 다하려는 것’도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를 못하거든요. 쓸데없이 바쁘게 사는 공식입니다. 평생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것’

그런 시간은 절대로 안 올 겁니다. 이런 사람은 사실 지금 삶이 나름 괜찮은 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별 문제 없는 분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기 삶이 정말 지옥같이 싫은데도 저런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실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나는 것이 두려운 것일 겁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진지한 생각을 미루는 거죠. 사실 자기 삶의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고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은 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부담스러워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습관 바꾸기

위와 같은 생각들을 버렸다면 일단 어느 정도 detox가 된 것입니다. 비로소 좀 진지한 생각을 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인이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습관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 습관의 힘이 흔들리는 촛불 같은 우리의 생각과 결심을 한 방에 훅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입된 관념들은 머릿속에만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 방식과 습관이라는 꽤 구체적인 형태로 우리를 감싸고 있거든요. 그래서 행동 방식과 습관도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습관까지 다 바꾼 다음에야 내가 원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논리적 순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습관 바꾸기가 더 중요한 실천을 미루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 돼’(No) 하고 말하기

바쁜 사람이 시간을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자명한 방법은 일을 안 하는 겁니다. 적어도 안 해도 되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대상이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앞 단락에서 말했듯이 할 일을 모두, 혹은 가능하면 많이 하겠다는 착하고 전통적인 생각으로는 결코 내 삶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줄이지 않고 일을 더 많이 하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써서 마침내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나가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발상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습관은, ‘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Not-to-do list)’을 만드는 겁니다. 지금까지 해 오던 일 중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드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평소 만들던 ‘해야 할 일 목록’을 보면서 거기서 안 해도 될 일을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 목록에 들어가지도 않고 아예 당연히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을 하나하나 작은 행동까지 다 떠올리면서 하지 않을 일들, 하지 말아야 할 일들, 안 해도 무방한 일들, 빈도를 과감하게 줄여도 괜찮은 일들을 다 써 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책상 앞이나 벽에 붙여 놓고 안하는 것이 습관이 들 때까지 무시무시하게, 살벌하게, 독하게 실천을 해버리는 겁니다. 아래에 몇 가지 다른 얘기도 나오겠지만, 만약 이 항목, 즉 ‘No!’라고 말하기를 하지 못한다면 다른 것들은 하나마나 한 것입니다.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시간관리

안 그런 분도 계시겠지만, 많은 분들은 서점에서 팔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값싼 ‘시간관리’ 요령이란 것을 믿고 따르고 실천하고 계실 겁니다. 제가 앞에서 교육의 목적이란 것에 대해 장광설을 풀었는데, ‘시간관리’라는것도 그것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잘 읽어 보세요. 대부분이 해야 할 일을 빠뜨리지 않고 하는 방법, 할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는 방법, 실수하지 않는 방법,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빨리 더 많이 하는 방법, 뭐 그런 것들입니다. 그런 것 아무리 다 읽고 모조리 실천해도 행복해지는 길과는 거리가 한참 멀 것입니다. 그건 다 고용자들이 일 더 많이 시켜 먹으려고 그런 것 아닐까요? 어쩌면 그런 것을 쓰는 사람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쓰는 것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대중들이 고용자들을 위해 더 많이 일하겠다는 생각을 내면화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관리’를 가르쳐야 팔리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런 식의 시간관리는 다 잊어버리십시오. 그런 것들을 읽으면 단기적으로는 ‘아하!’ 하는 작은 깨달음과 작은 기쁨과 작은 성취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안됩니다. 그런 것은 남을 위해 분초를 아끼라고 독려합니다. 나를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상황을 파악하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 주지를 않습니다.

 

시간 관리와 관련해서 제가 읽은 최고의 책은 Stephen Covey가 쓴 ‘First Things First‘라는 책입니다. 아마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을 겁니다. (번역이 잘 되었기를 정말 바랍니다.) 그 책의 탁월성은 시간 관리를 ‘더 많이, 더 빨리’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나에게 중요하고 동시에 급하지 않은 일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항상 먼저 하라고 충고합니다. 세상 대부분의 시간관리 책, 요령, 앱, 인터넷 tip 등은 그 반대죠.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들’을 빨리빨리 빠짐없이 처리하도록 독려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죠.

 

저는 여러분께서 이 책을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하지만 일단 그 이전에 습관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시간관리’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시간관리 앱 같은 것 있으면 과감히 지우시고, 사방팔방에 걸려 있는 스케줄 관리 달력도 떼 내시고, 컴퓨터 하단과 보드에 잔뜩 붙어 있는 포스트 잇도 제거해 버리시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있는 각종 알림 기능도 해제해 버리십시오. 그 후에 생기는 그 엄청난 빈 공간, 하얀 벽, 하얀 노트… 그것은 소음을 제거한 조용한 방과 같습니다. 거기서 여러분에게 당장 급하지는 않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생각해 내십시오. (저의 고질병인 노파심 때문에 한 마디 추가: 위의 앱이나 포스트잇 같은 것 자체가 악하거나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 속도를 높여주는 현명한 도구들입니다. 다만, 올바른 방향을 정립할 때까지는 속도를 내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니 아예 정지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음과 잡음을 제거하자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런 도구들은 필요하다면 다시 쓰셔도 됩니다. 저는 앱 같은 것은 안 쓰지만 노트와 포스트잇은 애용합니다.)

 

 

일을 줄이기 위한 일을 하기

이건 앞의 두 가지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써 봅니다. (그러나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하루 생활, 일주일 생활, 할 수 있으면 한 달의 생활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시간을 훔쳐가는 도둑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안 할 일 목록’을 통해 제거해 버리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안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일을 줄이기 위한 일을 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쓸데없이 은행에 가는 것인데 어쩌다 재미로 가는 것 말고는(재미로 가는 것은 좋은 거죠!) 저는 거의 안 갑니다. 다 자동으로 처리될 수 있게 해 두었고, 현금 쓸 상황에서도 웬만하면 수표를 씁니다(이건 한국에는 없는 제도라서 한국에 계신 분들은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하여튼 북미에서는 인터넷 없는 곳에서는 개인 수표를 쓸 수가 있습니다). 받아서 뜯어 보고 읽어 보지 않을 청구서는 아예 발송되지도 않게 해 두었습니다. 쓰레기도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좀 다른 것이지만 안해도 되는 일은 아예 안 하도록 시간을 들여서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포스트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좀 나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마침내 시시한 일들, 안 해도 되는 일들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습니다.

 

 

실천하기

자, 이제 생각도 바꾸었고 우리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행동과 습관들도 바로 잡았으니, 남은 것은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누차 말했지만 번역가가 되는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번역가는 아무나 될 수가 없습니다. 적성이 있어야 하고 또 번역가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지식 사회가 도래했으며, 지식의 생산자와 유통자인 프리랜서 일인 기업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옛날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꿈과 같은 시대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둘러보고 물어보고 연구해 보고 확인해 보고 고민하고 결단하고, 그렇게 했으면 앞으로 나가십시오. 그게 무엇이 되었든.

 

휴~ 힘드네요. 끝내기 전에 잠깐 쉬어 가는 얘기. 라디오에서 어떤 인터뷰를 하는 걸 들었는데요, 점심시간에 친구랑 잠시 시간 내서 무슨 골동품 가게에 갔답니다. 뭘 사러 간 건 아니고 시간이 좀 남으니까 근처에 있는 가게에 그냥 들러 본 건데, 거기 무슨 의자가 있더랍니다. 의자. ㅎㅎ 잠시 보고 있는데 가게 주인인지 점원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는 그 의자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하더랍니다. 무려 30분을. 그것도 그냥 설명한 것이 아니고 마치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그 의자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특이한 물건인 것처럼요.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의자’라고 말하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텐데, 이 남자는 눈을 반짝반짝해 가면서 너무 열정적으로 신이 나서 설명을 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여자분은 곧 직장에 돌아가 봐야 했거든요.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있다가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누가 이렇게 자세히 설명을 해 달랬나? 그리고 설명을 하려거든 좀 간단히 하든지 도대체 왜 이렇게 끝도 없이 말을 하는 거야? 중국 역사를 다 꿰고 있구먼. 난 회사 들어가 봐야 하는데 언제 어떻게 말을 끊지?’ 이런 생각 때문에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가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Bad customer service죠? 세일즈 기술이 부족한 거죠? 하여튼 그 여자분은 회사에 돌아갔고, 다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 여자분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느라고 지금 현재의 상황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 늘 스케줄에 맞추어 살고 그 스케줄을 교란하는 사람이나 일은 싫어하거나 불쾌하게 여기는 자신의 태도를 깨닫게 되었고, 그 명나라 시대의 의자에 대해 침 튀겨 가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설명하던 그 남자야말로 ‘정말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삶은 계획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이끌리고 매혹되어서 자기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잊어버리는 것, 정신이 다 팔려서 다른 건 다 잊어버리고 그것에만 몰입하는 것,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잊어버리고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듣다 보니 그 남자는 눈치 없는 점원에서 삶의 길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격상되더군요. ㅎㅎ

 

힘내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식으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일, 그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걸 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여러분께 조언은 해 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결정을 하고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본인입니다. 바로 내 삶이니까요. 깊이 자기 속을 들여다보면서 성찰하고,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이끄는 대로 가십시오. 그 길을 찾을 때까지 다른 일은 잠시 무시하고 사십시오. 배우, 가수, 화가, 목공예가, 철학자, 영화감독 등등을 생각해 보면 다 고집쟁이들에다 어떤 면에서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의 어줍잖은 충고들을 다 무시하고 독불장군처럼 나간 사람들입니다. 전망이 있어서 간 것이 아니고 “배 좀 고파도 난 이거 한다!” 하고 갔던 사람들입니다. 산울림의 김창완님께서 아이유와 또 다른 젊은 가수들에게 충고해 준 내용이 “어른들 말 듣지 말라…”였다고 하더군요. 참 그분다운 이야기입니다. ㅎㅎ 어른들 말을 듣든 안 듣든, 어른들의 전형적인 충고와 자기 내면의 소리 중 어떤 것을 듣는가는 다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저는 그런 생각해 봅니다. ‘나도 김창완님 같은 조언자를 좀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요.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10 Comments

  1. 안녕하세요? 번역가가 되고 싶어 모든 글을 정독하였습니다. 제가 아직 경력이 없는데 Proz.com에 블루리본으로 가입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행복한 번역가님의 글을 읽을 수록 번역가가 제 천직일거라는 확신이 드는데 시작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국내 에이전시에 샘플테스트를 보내어 합격을 해도 일거리가 오지 않더라고요.

    • Jeen님 쓰신 것 보니까 지금 당장 가입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 글 다 읽고 천직이라는 확신이 드는데 뭘 더 기다려야 합니까? 그리고 경력이 없으니까 거기 가입해야 하는 거죠. 거기서 경력을 시작하는 거니까요. “국내 에이전시”가 뭔지 잘 모르긴 하지만, 왜 거기서 놀려고 하세요? 이 넓은 인터넷 세상이 있는데…

  2. 안녕하세요~ 번역가가 되는 방법 뿐만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한 코칭도 정말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Bryan님의 넉넉한 마음과 친절함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저는 피고용인의 삶을 살면서 제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애초에 배운적이 있었나도 싶구요).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거나 흠뻑 빠져들어있는 경우 자체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시간관리에 대해 하신 말씀이 뼈저리게 다가오네요.
    Bryan님께서는 어떻게 스스로 번역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되셨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혼자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이지만 그래도 어떤 생각의 귀결로 번역을 택하시게 된 건지 궁금하고 꼭 참고하고 싶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고용주가 되기 위해 번역가 외의 다른 길을 고민하신 적은 없는지도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 보라님, 어려운 질문을 하셨네요. 사실 저도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기보다는 자기가 못하는 것을 남들이 알까봐 감추고 급히 보충하는 것이 삶의 요령이라고 배운 것 같습니다. 학교 시스템 자체가 그랬고요. 그러다 먼 길을 돌아 돌아 다시 한번 자신의 진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실은 생각해야만 되는) 시점에, 제 내면을 들여다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백일장 같은 곳에서 상을 많이 받았고 이청준, 조정래 님들의 문장이 너무 황홀해서 공책에 무작정 베껴쓰기도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또 영어를 매우 좋아하고 잘했으며 게다가 외국에서 유학 하느라고 본의 아니게 영어 실력이 (한국 사람치고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요. 그걸 종합해 보니까 제가 번역을 잘 하겠더라고요. 저보다 글 잘 쓰는 분도 많고 저보다 영어 잘 하시는 분들도 정말 많지만 그걸 둘 다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니 나름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번역은 전에도 해 봤는데 그건 직업으로 한 게 아니라 공동체 봉사같은 것이었고 이것이 직업이 될 수 있는지는 잘 몰랐어요. 아무튼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큰 기대 없이 시작했습니다. 하다 보니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니까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장도 매우 크고 점점 더 커져간다는 것, 제가 배우고 자랄 여지가 굉장히 많다는 것 등을 알게 되면서 다른 것들을 많이 정리하고 번역의 비중을 점점 늘리게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우연 + 행운 + 약간의 자기 성찰 + 이어진 꾸준한 노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 스스로의 고용주. 음… 사실 통역을 할 때도 “my own boss”였었죠. 강의를 하는 일, 책을 쓰는 일 등도 사실상은 그랬고요.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외에는 남에게 고용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귀 문제가 악화되면서 그런 일들은 정리하게 되었고, 지금은 번역만 합니다. 물론 수입도 가장 낫고 시간적 여유도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 답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쓰는 것과 영어의 두 가지 재능을 동시에 갖추신 점이 참 부럽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혜안이 있으신 것도 대단하구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3. Bryan 글을 읽고 있으면 자꾸 쥐고 있던 손을 풀게되고 머리속에 어느 한쪽에 쓰지 않던 공간이 있어서 그 문을 열어보게 하는 마력이 있는것 같아요… 통역은 제 끝도 시작도 없이 서둘러대는 고질병 때문에 포기했지만 끊임 없이 미련이 생깁니다 특히 “행복한 번역가” site에만 들어오면..ㅎㅎㅎㅎㅎ.. 넘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어요.. 이런 영양가 있는 프로그램이 1년전에만 있었어도 전 지금쯤……..우ㅜㅜㅜ새해에는 우리 목사님 말씀처럼 복을 나누고 즐기는 한해 되시길 진정으로 소원 합니다.

  4.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주변에 공유도 했네요. 한국 교육시스템 자체가 진로의 끝에 ‘전문직’이냐 ‘대기업’ 이도 아니면 ‘공무원’이냐의 몇 가지 길로만 나누어놓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개중엔 일찍 깨닫고 주변의 시선 신경쓰지 않고 ‘자기 업’을 찾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몇 뿐이고, 대부분은 삶에 치이기만 하네요. 꿈에 도전하다가도 현실적 어려움으로 금방 포기해버리고요.(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다보니, 대기업이나 전문직에 도전하거나 늦은 나이에도 공무원 시험, 수능을 다시 보는 경우도 있어요. 다 각자의 사정 때문이겠지만, 진짜 자신을 살게 할 ‘꿈’이 없어서가 아닐지.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으니까요. 자기가 마음먹고 향한 바를 향해 계속 두드리다보면 번역가님 말씀대로 부쩍 성장해있지 않을지. 이번 일본의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이야길 들어보니, 자신은 경쟁하는 게 싫고 그냥 자기가 원하는 일을 연구했더니 어느 순간 그 분야에 대가가 되어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다른 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하지만 결국 ‘대가’가 부족해요. 꾸준히, 진득히 당장은 손해봐도 나중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는데요.
    여하튼,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하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5. 정신없이 쭉 읽고나서 보니 꽤 긴 글이였네요. 푹 빠져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효율적으로 일하면 보스는 좋아하지만, 여전히 일감은 줄지 않더군요. 저는 20대 후반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요식업계에서 수년 간 일을 했었습니다. 워낙 어려서부터 요리도 좋아했고, 칼도 제법 다룰 줄 알았으며, 손도 빨랐습니다. 북미에서 대학 다니는 동안에 아르바이트겸 일도 했어서, 양식, 한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다국적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덕분에 배운 것도 많고, 경험도 어느정도 쌓였기에, 어느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더라도 금새 적응하고,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방법도 바꾸고, 메뉴도 어느 정도 손 댈 수 있을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바쁜 가게에 정말 일 잘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수는 그 주변 어느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았지만,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다들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일찍 나와서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을 넘어서 기본 30분 이상 더 일을 하고 갔습니다. 정말 바쁜 날에는 다음날을 대비해서 1시간 넘게 더 일을 하고 갔죠. 1시간 일찍 출근 그리고 1시간 늦게 퇴근.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요식업계에서 하루에 12시간 일을 하니 이렇게 되면 하루에 총 14시간 일을 하게 되는 것이였죠.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보려고, 그리고 효율적으로 일을 해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만큼 일감이 더 늘어나더군요. 피크타임 땐 주문지가 수십장씩 들어오고, 끼워 넣을 곳이 없어서 바닥에 길게 늘어지곤 했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생각하는 시간 마저도 아까울 정도로 정신 없이 일하고나면, 진이 쭉 빠집니다. 그리고 퇴근하고 샤워하고 취침 후 기상 한 뒤에 바로 밥 먹고 출근….스케쥴을 매주 바뀌어서 뭐 하나 능동적으로 계획성 있게 하기도 어렵고, 쉬는 날이면 매일 12시간 이상 서 있어서 그런지 누워있게 되더군요. 결국 보수는 좋았지만, 제 삶이 피폐해 지더군요. 매주 인디고 서점가서 관심가는 분야 책 사서 읽고, 읽다가 모르는 단어나 재밌는 표현 나오면 공부도 하고, 같은 소설책 영문 버전 일문 버전 한국어 버전 세가지 다 읽어보면서 같은 내용을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표현했을지 설레며 맛난 맥주와 함께 밤새 재밌게 읽던 즐거움도 없이, 기계적으로 일하면서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노동에 건강도 조금씩 안 좋아 지더군요. 실제로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에 손목이나 허리아파서 그만 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글 쓰는 것도 참 좋아해서, 기쁘면 기쁜대로 우울할 때는 우울한 대로 글 쓰면서 웃기도하고 울기도하고 저 나름대로 글을 쓰면서 감정을 다스리기도 했었습니다. 저 나름 언어 공부 하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그런지, 번역 관련 된 곳으로 관심이 가더랍니다. 한 번은 친구의 갑작스런 부탁으로 몇 장 안되는 문서를 번역하게 되었는데, 제가 전공했던 분야도 아닌 다른 분야를 번역하는건 정말 어렵더군요. 그것 말고도 그냥 단순한 인삿말이나 소개 부분도 이렇게 하는게 좋을까 저렇게 하는게 좋을까 고민이 너무 많이 되었습니다. 글의 양식에, 읽는 독자의 수준, 글의 내용, 그리고 번역되는 언어에 따라, 번역될 내용의 깊이랄까 대중성이랄까…잘은 모르겠지만 고려해야 할게 너무 많았고, 그걸 다시 글로 표현하려니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더군요. 결국 친구의 갑작스런 부탁에 밤새 거의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해가면서 최대한 꼼꼼하게 번역을하고, 원어민 친구들 여러명에게 검수 받아가며, 어떻게 표현하는게 좋을지 도움도 받아가면서 번역을 마치고 가슴 졸이며 친구에게 넘겨 줬는데, 다행히 번역이 너무 잘 되서 좋다고 회사에서도 잘 되서 좋았다고 다음에도 부탁한다고 했는데, 저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안하겠다고 진저리를 쳤습니다. 왜 시간이야기를 하다가 투덜거리다가 별 쓸대없는 이야기 마저 끄적거리게 되었네요. 아마도 지금 마시는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오랜만에 뭔가 끄적거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몇 장 번역하면서 개고생했으면서도, 관심이 가는거 보면 내가 관심있는 분야 관련해서 번역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한 편, 정말 맛깔나게 깊이 있게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으로 살려서 혹은 넘어서 표현 할 수 있는 표현력을 갖추려면 얼마나 많이 읽어보고 고민도하고 적어도 봐야 할 지 상상조차 안되지만, 참 재밌을 것 같다란 생각이 드네요. 글을 읽고 이렇게 코멘트를 남기며 리필해서 마시는 1.9L짜리 Growler 맥주 한 병을 다 마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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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