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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번역료를 타당하게 정하기 위한 고려사항

최종적으로 번역료가 얼마가 될 것인가는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요율이 가장 중요하지만 다른 요소들도 고려해야 합니다.

요율

요율은 단가(unit price)입니다. 번역이라는 지적인 작업에 객관적인 가격을 매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시장은 계속해서 그것을 요구하지요. 그래서 어느 정도 어떤 것에 대해서는 무엇당 얼마를 받는다는 단가를 결정해 두어야 합니다. 어떤 프로젝트의 특성을 고려하여 이 단가를 올리거나 내릴 수 있겠지만요.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는 종이 A4지 한 장에 얼마, 내지는 책 한 페이지에 얼마 그런 요율도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웃기는 건지는 글자 크기, 여백, 심지어 폰트 종류만 조정해도 그런 것이 얼마나 고무줄 같은 잣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실험으로, 다른 것은 다 그대로 두고 폰트만 Arial에서 Times New Roman으로 한 번 바꿔 보세요.)

 

요즘 시장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요율은 단어당 요율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스 문서(번역의 대상이 되는 원문)의 단어 숫자입니다. 예컨대 영어 단어당 10센트, 이런 식이죠. 그러면 영어 문서가 1000 단어면 100달러, 5,000 단어면 500달러 그렇게 번역료(price)가 정해지는 겁니다.

 

이런 소스 문서의 단어당 요율이 agency가 가장 선호하는 rate 방식이고, 또 실제로 가장 많이 쓰이기도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이게 참 어렵습니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괜찮은데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할 때는 소스 문서인 한국어 문서에 단어가 도대체 몇 개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한국 말은 단어 사이 띄어 쓰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아 단어 수를 세는 것이 참 힘들다.” (33 글자, 17 단어; 비율 1.94)

2) “인천공항국제화경영방안에대한 인구통계분석적 제언.” (23 글자, 3단어; 비율 7.67)

 

뭐 좀 억지로 만들어 보았지만 제 요지는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독일어 번역하시는 분들은 이해가 팍팍 되실 듯…). 이렇게 띄어쓰기 관행이 정착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문서의 단어 개수를 중심으로 요율을 정하시면 크게 손해를 보십니다. 게다가, 이런 특수한 사정을 한국어를 모르는 PM들은 이해를 잘 못 합니다. (PM들은 번역 산업에 종사하지만 다른 언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고, 특히 아시아 언어에 대해서는 한심할 정도로 다들 이해도가 낮습니다. 그래도 번역가는 이런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상대할 방도를 생각해 보아야겠지요.)

 

이럴 때 해 볼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타겟 문서(번역이 다 된 문서, 여기서는 영어 문서)의 단어 수를 기준으로 요율을 정하는 것입니다. 즉, 번역이 다 된 다음에 그 번역된 문서의 영어 단어당 12센트를 받겠다 그런 식이죠.

 

또 하나는 단어 개수가 아닌 글자 개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한국어 글자당 5센트 혹은 10센트로 정하는 방법입니다. 위의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에이전시와 협의하셔서 정하시면 됩니다.

 

기본 요율을 하나 정해 놓고 그것을 모든 경우에 다 일정하게 적용하는 것은 참 답답한 일입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기본 요율은 본인의 일 년 예상 수입을 가늠하는 데도 필요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맡을 것인지를 매일매일 기분으로 정하지 않고 기준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해나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요율은 다음과 같은 많은 요인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되어야 합니다.

 

 

소스 문서의 형태

 

소스 문서가 워드 문서라면 그것을 바로 CAT tool에 넣어서 번역을 할 수 있으니까 괜찮은데 만약 그것이 PDF라면(여기도 두 가지 종류가 있지만) 그것을 바로 CAT tool에서 이용할 수가 없고 소스 작업을 먼저 거쳐야만 합니다. 이것은 상당한 정도로 번역가의 작업량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요율을 정할 때 이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약 PDF 문서와 비슷한 양식을 DOC 문서로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면, 이런 작업상의 어려움을 요율에 반영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기본 요율(즉, 소스 문서가 DOC 문서일 때의 요율)에 20%에서 40%를 더 요구해서 받아야 합니다.

 

만약 소스 파일 형식이 jpg 혹은 png 이런 것이라면 단어나 글자 수를 바탕으로 한 요율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이럴 때는 아예 별도로 협상을 해서 turnkeybasis로 가격을 정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감일(마감 시한)  주말/공휴일 작업

 

만약 마감 시한이 급하다면 다른 것을 제쳐 두고, 심지어 번역가의 일상적인 루틴까지도 변경해 가면서 번역을 마감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도 그것을 번역가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오직 번역가가 그것을 허용하고 받아들여야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프로젝트를 받을 때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휴식 시간, 가족과의 시간, 운동 시간 등을 희생한다면 그 번역가의 삶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실은 에이전시들도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급하게 번역을 해달라고 하면 번역가는 진행하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들을 뒤로 미루고 이것부터 해 달라고 요청하는 셈이라는 것, 심지어 그것을 넘어서서 번역가의 일상의 루틴, 심지어 주말의 휴식마저도 희생해 가면서 일을 해 달라고 요청하는 셈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가 스스로가 그것을 지적하고 요율의 인상을 요구하지 않으면, 에이전시가 먼저 순순히 “이렇게 급하게 요청하니 미안해서 요율을 30% 인상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장담컨대 그런 말 안 합니다. 그래서 번역가가 당당하게 “그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마감시간입니다. 저는 그것을 30%(혹은 50%) 요율을 인상하여 받는 조건으로 그 프로젝트를 맡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번역의 난이도

 

친구들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을 번역하는 것과 기업 간에 맺어진 몇 백만 불짜리 계약서를 번역하는 것은 그 난이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 용어도 많이 나오고, 익숙하지 않은 표현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그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도 많이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도 자신의 전략의 일부로서 특정 분야에 대한 요율을 몇 십 퍼센트 인상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문화(specialization)의 일환입니다. 장기간에 걸쳐서 전문성을 키워 온 분야에서 더 좋은 rate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요율은 기본 요율에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여 정해집니다. 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 pdf 문서로 된 계약서를 하루 안에 번역해 달라는 식의 프로젝트인 경우 여러 요인이 중첩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기본 요율을 정한 뒤에는 이런 요인들 각각에 대한 인상률 또한 어느 정도 미리 정해 두고 시행해 나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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