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료 책정은 누가 하는 것일까?

모르긴 해도 번역 시장만큼 가격이 엉망진창인 곳도 없을 것입니다. 물건 가격을 비교할 때 어디가 어디보다 한 5%만 싸다고 해도 사람들이 막 몰려가지 않습니까? 삼촌네 떡도 싸야 산다는 말이 있을 만큼 사람들은 가격에 민감합니다. 그러나 번역 시장에서 영어 단어당 가격을 예로 들면 2센트에서 2달러까지 정말 제각각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가격 중에 도대체 어느 정도가 적정 가격인지 알기도 힘들고 증명할 길도 없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도 별로 없습니다. (협회 같은 곳에서 그런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군요. 독점방지법 때문에… 그리고 어떤 나라에서는 에이전시가 먼저 번역료를 제시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합니다. 번역가가 제시한 것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해야 한답니다. 다 좋은 뜻에서 그런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번역료가 정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평균은 얼마인지 등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를 찾기가 참 힘듭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세상에 이런 특이한 시장은 없을 겁니다.

 

번역료가 사람에 따라 이렇게 큰 폭으로 차이가 나고 그런 다양한 번역료가 같은 시장에서 동시에 다 사용되는 이런 희한한 상황이 조성된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우선, 번역이라고 하는 것은 번역가의 수준에 따라 번역물의 질이 매우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번역의 내용에 따라 너무도 쉬운 작업이 있는 반면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려운 작업도 있습니다. 친구끼리의 이메일 주고받은 것을 번역하는 것과 계약서를 번역하는 것에 같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불합리하죠. 또한 작업하는 파일의 형태, 마감 시한 등도 번역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참으로 다양한 번역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이상하다면 이상한 시장이 바로 번역 시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번역료 책정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번역가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림1

 

어느 회사에 취직하면 보통 업계 평균 임금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에 비교해서 우리 회사의 임금이 높다든지 낮다든지 그렇게 비교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번역 시장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누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형성된 범위도 정말 넓으니까요. 결국은 번역가 자신이 스스로 번역료를 정하고, 그것을 주장하며, 시행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장에 처음으로 진입할 때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에이전시에서 여러분의 경험 부족을 지적하면서 가능한 한 낮은 요율을 정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때 그런 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일감이 적더라도 자신이 정한 기준을 고수할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시장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내려야 하는 비즈니스 결정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정답은 없지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관록이 쌓이면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번역의 질도 안정되어 가고, 무슨 파일이든 잘 다루고, 마감 시간도 잘 지키니 번역료를 올려드리겠습니다.” 하는 에이전시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이 프리랜서의 세계입니다. 누군가가 내 번역의 가치를 알아보고 내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덥석 줄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런 분은 꿈을 깨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분은 무엇보다도 자세가 틀렸습니다. 자신의 일의 가치는 자신이 주장하고, 그 가치를 자신이 홍보하고, 그에 걸맞은 가격을 자신이 내걸고, 그 가격을 수용하는 사람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service provider입니다. 어쩌다가 번역료를 협상할 수는 있어도, 가격의 근본적인 기준(base rate)은 그 누구도 아닌 번역가 자신이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한 분들, 내 일의 가치를 남들이 정해 주는 것에 익숙한 분들, 그런 경험이 세상을 보는 기준과 잣대가 되어 버린 분들은 하루 빨리 그런 잣대를 버리십시오. 누군가가 나의 일의 가치를 정해 주던 그런 시절을 잊어버리고, 내 일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고 그 가치를 높여 나가고 또 그 가치를 시장이 인정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이전시에 끌려다니지 마세요. “시장이 너무 경쟁이 심하다…”는 식의 상투적인 말로 번역료를 깎으려는 수작(?)에 넘어가지 마세요. 그런 에이전시는 저가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나 하고 있는 한심한 에이전시니까 잘라버리세요. 실제로 여러분의 번역요율이 너무 높은 것인지 실제 자료(빈약하지만 없지는 않음, 나중에 찾아 따로 포스트하겠음)와 여러분의 경험에 근거해서 스스로 판단을 하셔야지, 에이전시가 하는 상투적인 말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시면 안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일의 가치를 당당히 주장해 나가세요.

 

 

여러분의 번역이 정말 정직하고 최종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번역이라면, 그 번역에 대해 좋은 가격을 지불하려는 고객은 많이 있습니다. 다만 그런 고객을 찾고, 좋은 가격을 제시하며, 일관성있게 주장해 나가는 일은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몫입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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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우연한 기회로 여기 사이트를 보게 되어 즐겁게 글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 (주)한익미디어밸리 라는 한국 번역업체에서 영화 자막 번역 건당 15만원에 3개정도 했는데 떼인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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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