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멋모르고 Trados를 샀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쑤셔보고 눌러보다가 화딱지가 나서 때려쳤지요. ㅎㅎ 그 뒤 MemoQ를 필두로 XTM, Memsource 등 이런저런 캣툴을 전전하다가 구세주 같은 Fluency Now(당시에는 Fluency 2013)를 만나 저의 캣툴 편력이 마감되었습니다. 지금은 Fluency Now를 추천하다 아예 제휴 마케팅까지 하게 되었지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늘 Fluency Now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에이전시에서 어떤 곳은 MemoQ, 어떤 곳은 Memsource를 자기네 전용 툴로 채택했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라이센스를 사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런 툴들도 사용합니다. 물론 답답해 하면서요. 그나마 MemoQ와 Memsource 그리고 Smartcat까지는 그런대로 쓸 만합니다. XTM은 하도 답답해서 마침내 그것만 쓰는 에이전시와 결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몇 주 전에 SDL Trados Suite 2019를 구매했습니다. 10년 전처럼 여전히 살인적인 가격이었지만, 이번에는 Proz의 Translator Group Buy를 이용해서 45% 할인을 받을 수 있었고, support contract는 사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큰 출혈은 없었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버린 Trados를 다시 산 이유는 역시 Trados의 시장 지배력 때문입니다.

본래는 에이전시 용 Trados에서 생성한 프로젝트(sdlppx)라도 Fluency Now로 다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PM들이 파일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보내서 Fluency Now로 열 수 없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물론 Fluency Support에 연락하면 친절하게 원인을 가르쳐 주고, 그 파일을 제대로 열 수 있도록 변환해 줍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새로 들어온 PM이 제게 프로젝트를 보내면, 저는 인사를 하자마자 그 PM에게 Trados 사용법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저는 시장 지배자가 아니고 시장 참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 제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도 하는 수 없이 Trados 최신판을 구매했는데, 전에는 잘 안 열리던 파일을 문제없이 열었습니다. 일단 구매한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찬찬히 둘러보니 10년 전과는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잘 아는 분께 물어보니 2014년인가부터 SDL Trados Suite가 그런대로 쓸 만한 캣툴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 전에는 사람이 사용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고… ㅎㅎ)

10년 전에 잠깐 써 봤지만 많이 잊어버렸고 많이 바뀌어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둘러보고 부지런히 인터넷 찾아보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든든한 선생님(김호빈 씨)을 옆에(지구 반대편에) 모시고 있어서 벌써 꽤 많이 배웠습니다. 단축키도 Fluency Now에 맞추어 바꾸고, 내가 원하는 웹 리소스를 인터페이스 안으로 가져오는 앱도 깔아서 네이버 영한사전과 제가 자주 쓰는 한림대 의학용어사전을 깔고, 구글 번역 용 API도 입력해 두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PM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고 프로젝트 파일을 열어서 급한 작업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배워 나가는 기쁨과 슬픔과 고통과 분노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