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짧은 통역 커리어의 시작과 끝

결심

저는 번역을 하기 전에 통역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길고 긴 공부를 끝내고 이제부터 부지런히 그리고 가능하면 빨리 돈을 벌어서 제가 공부하느라 쌓인 빚도 갚고 아내 고생도 그만시켜야 하는 시기였어요. 뭘 해서 돈을 벌지? 장기적인 것도 좋지만 제가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가지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니 통역이었습니다. 토론토는 이민자와 유학생이 10만명 가까이 있는 도시라서 통역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짐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리서치를 좀 해보니 과연 수요가 꽤 있고, 무엇보다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정도의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뛰어들었습니다.

통역 훈련

토론토에서 통역사로 일을 하려면 통역 훈련 수료 증명서와 CILISAT이라는 시험 합격증이 필요하더군요. 토론토에서 통역 훈련을 제공하는 곳은 두 곳이 있었는데 저는 MCIS라는 기관에서 받았습니다. 두 달 동안 100시간의 훈련을 받았으니 상당히 강훈련이었죠. 그런데 돌아보니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실습하고 했습니다. 한국어 통역가 지망생은 저와 또 다른 한 분, 그렇게 딱 둘이었습니다. 그래도 짝이 있으니 실습이 여러모로 편리했죠.

강의는 전담 강사 두 사람에 각 분야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분들이 분야별로 들어와서 특강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통역의 기본 원리, 여러 상황들, 분야별 어휘 공부, 프로토콜 연습, 상황별 실습 등을 했습니다. 실제로 병원도 가 보고, 주 의사당도 가 보고, 브램프톤에 있는 법원에 재판 방청을 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통역을 잘 하고 계신 분을 보고 다들 놀라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통역 훈련 기간이 끝나갈 즈음에 CILISAT 시험을 보았는데 MCIS가 시험 행정을 맡고 있어서 편리하게 시험을 보았습니다. 한국어를 듣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를 듣고 한국어로 말하는 간단한 시험이었습니다. 다만 사람에게 하지 않고 녹음기에서 틀어주는 소리를 듣고 녹음기에게 말을 하니 아무래도 어색하고 시각적인 단서도 부족했지요. 하지만 시험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 나서 우리 클래스는 자체적으로 크게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 동안 고생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행운을 빌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Potlock으로 한 파티였는데 각국 음식이 다 등장해서 음식박람회 같았습니다. 주 강사 두 분도 초대했는데, 그 분들 말이 이 클래스처럼 재능이 많고 활발하고 재미있고 우애있는 클래스는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듣고 보니 참 특별한 분들이었습니다. 언어가 서로 다르니 그 뒤로 서로 볼 일이 많지는 않지만 가끔 병원 같은 데서 얼굴을 보고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통역 비즈니스

봄에 시작한 일이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는 다 마무리가 되어서 이제 드디어 나도 토론토에서 통역가로 일을 하겠구나, 다른 일과 어떻게 병행해야 하나, 수입은 얼마나 되려나 등등 여러 생각이 많았는데, 웬걸, 도대체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당시에 다른 일로 좀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이상하다 싶어서 MCIS에 전화를 해 봤더니, 일은 자기가 알아서 찾는 거랍니다. 그러면서 딱했는지 토론토에 있는 통역 에이전시 목록을 제게 보내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얼마나 한심한지 모릅니다. (물론 번역과 관련해서 제가 가끔 이메일을 받으면 그 당시의 저와 같은 분들이 꽤 있긴 합니다.ㅎㅎ) 아무튼 그 때부터 에이전시들에 연락해서 면접도 보고 계약서도 쓰고 했지요. 그렇게 하나 둘 에이전시 고객이 늘어나고 그 고객들에게서 고정적으로 오는 일들이 차차 많아지면서 수입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재미도 있고, 요령도 생기고, 같은 상황에서 통역을 반복적으로 하니까 전체적인 맥락 이해도 점점 깊어지니 쉬워지기도 했습니다. 제 통역 커리어가 조금씩 뻗어나간 것이죠. 물론 다른 일들과 병행하느라 참 바빴습니다. 하지만 참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여러 분야와 전문화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쓰겠지만 나름 전문화도 했습니다. 전문화는 늘 옳은 선택입니다. 번역 전문화와는 조금은 내용이 다르지만 그래도 통역에서도 전문화는 꼭 필요합니다. 전 병원 통역으로 잡았습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하지만 병원 쪽으로 전문화하기 전에,  그리고 그 뒤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별의 별 상황에서 통역을 해 보았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나열해 보면 이렇습니다.

  • 경찰서
  • 이민국
  • 교통사고 환자 평가 및 치료
  • 자폐아 가정을 지원하는 소셜워커
  • 아동학대 케이스 조사(Children’s Aid Society)
  • 가정폭력 피의자 집단 상담 16주 프로그램
  • 병원
  • 변호사 사무실

통역을 그만두다

그렇게 통역 일이 점점 몸에 익어가고, 수입도 조금씩 늘어갈 즈음에 두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귀가 점점 나빠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너무 바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귀는 그 당시만 해도 아주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통역은 주로 아주 조용한 곳에서 하니 큰 문제는 아니었지요. 바쁜 것은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서인데, 통역이 재미있고 보람이 있으니 그냥 이걸로 쭉 가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통역 수입은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사람이 몸으로 직접 가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통역료가 아주 높으면 그래도 괜찮은데, 토론토는 모든 언어에 걸쳐서 공급이 많아서 당시 통역료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좀 더 높아졌으리라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시간당 30불에서 40불 선이었고, 미니멈 차지가 50불이었습니다. (물론 교통비와 주차비 등은 따로 받습니다. 이웃 도시까지 가서 통역할 경우에는 시간을 더 쳐주거나 마일리지만큼 더 얹어서 받습니다.) 당시에 시간당 60불 정도로 레이트를 올리기 위해 협회에서 노력하고 있었으니 지금은 꽤 올랐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아무튼 그 정도 레이트로는 한 달 열심히 일해도 3,000불을 버는 것도 힘듭니다. (통역은 사람이 직접 가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건 이상 하기가 꽤 힘듭니다.) 그러니 다른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하기에는 괜찮지만 전업으로 하기에는 아무래도 수입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런 고민이 있어서 좀 다른 길을 찾다가 번역을 생각해냈습니다. 통역처럼 번역에 대해서도 역시 아무 것도 몰랐지만 방향은 아주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성에도 맞고 시간 활용도가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수입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런 정보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큰 방향이 맞다고 생각해서 번역을 시작했고, 적어도 일년 정도는 번역과 통역을 병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한 일년 정도 지나서 번역의 엄청난 포텐셜을 깨닫고 통역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막상 접으려니 아쉬움이 정말 컸습니다. 통역을 통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제가 이민사회를 속속들이 알게 된 계기가 된 일이었으니까요. 잔잔한 감동도 있었고, 뿌듯한 보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 큰 남자가 눈물 펑펑 쏟았던 일도 있었고요. 그래도 큰 그림을 그리고 장기적인 방향을 잡은 터라 많이 아쉽지만 접었습니다. 이상이 3년 남짓한 제 짧은 통역 커리어의 시작과 끝입니다.

4 thoughts on “내 짧은 통역 커리어의 시작과 끝

  1. 정말 좌절스럽게도 현재 구글에서 의료통역 요율을 찾아보면 시간당 평균 19달러로 나옵니다. 5-10년 이상 경력이 되어야 35불된다고 하고요 (캐나다, 미국 모두). 저도 번역으로 전향을 준비하며 통역도 관심이 있어 리서치를 하던 중 저 금액을 보고 설마 알바도 아니고 잘못된 자료겠지 라고 순간 생각했지만…! 실제 올라온 취업공고를 기반으로 매겨진 평균 요율이라 시간당 19불이 현실구나 싶었는데.. 브라이언님께서는 과거에 30-40불을 받으셨다니.. 갈피를 잡기 힘드네요 @[email protected]

  2. 그렇지 않을 겁니다. 남기신 댓글을 보고 저도 방금 구글에서 검색을 해 보니 $50-$140로 나오네요. 평균은 $100로 시작하고 두 시간 미니멈 차지. 어느 사이트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만 보지 마시고 여러 사이트를 방문해서 비교해 보세요. 캐나다 최저임금($15)에 가까운 돈을 받고 통역을 할 수는 없어요. 그런 사이트는 무시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번역의 세계에서 인도 에이전시들이 단어당 2센트가 “going rate”라고 버젓이 말하는 것과 비슷해요. 그런 곳은 아예 상대를 하지 말고 그냥 한번 비웃어 주고 넘어가시는 것이 상책입니다.) 물론 건당 200불이라 해도 교통시간, 대기시간, 에너지, 그리고 교통비나 등을 감안하면 참 낮은 요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정도라면 한 가정을 책임지는 직업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 단위로 그리고 분야별로 협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꾸준히 요율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저도 옛날에 그런 곳에 가입해서 회비도 내고 했었습니다.

    1.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payscale 이나 indeed (https://ca.indeed.com/salaries/Medical-Interpreter-Salaries)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저는 이게 불편한 현실이라 믿었던 이유가, 실제 최근 잡포스트를 기반으로 한 데이타이기도 하거니와 윗 글에서 언급하신 MCIS 라는 기관에서 얼마전 통역사를 모집하는 걸 보고 지원을 했는데, “요율이 20-25불이다, 괜찮으면 네트워크에 등록해주겠다” 라는 회신을 받았거든요. 통역시장이 정말 레드오션이구나 싶었습니다. 브라이언님 말씀을 듣고 더 찾아보니 가끔 40불 이상을 받을 수있다고 쓰여진 자료도 보이네요. 어떤 요소로 저렇게 차이가 나는지, 아무래도 통역시장의 생태에 대해 더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료/법정통역을 전문적으로 하기위해선 아무래도 브라이언님이 하신 것 처럼 코스 수료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돈과 노력을 들여 시간당 20불이라면 너무 암울할 것 같네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시겠지만, 저도 혼자서 커리어 전향을 준비하다보니 정말 혼란 속에 허덕이고 있는 모습니다. 그런 중에 브라이언님의 글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1. 통역은 번역과 달리 어느 도시에 있는가 하는 것이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토론토는 이민자가 넘쳐나는 도시라서 공급이 수요를 크게 초과하는 기이한 곳입니다. 그래서 제 의견에는 세계 최악의 통역 시장이죠. 하지만 토론토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가도 (키치너, 피터보로 정도) 요율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혹시 토론토에 사신다면 대면 통역은 연습으로만 해 보시고 차라리 전화 통역 쪽으로 알아보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 영역은 제가 잘 알지 못하므로 별로 조언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나은 방향은 당연히 번역입니다. 적성만 맞으시다면 적어도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번역이 훨씬 낫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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