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번역하는 비키언니  기분 좋은 피 흘림

몇 달 전 응급의학 전문의인 남궁인작가의 에세이 <제법 안온한 날들>을 읽었습니다. 남궁인작가는 응급실에서의 근무 스트레스를 글로 다 쏟아내는 글 잘 쓰는 의사입니다. 응급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사연,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인간에 대한 연민 등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응급실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칼럼 정도 분량의 글을 모아서 낸 에세이였는데 그 중 헌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코로나 사태 후 사람들이 헌혈에 대한 근거없는 편견 때문에 괜히 찝찝하니까 헌혈을 꺼려서 피가 부족하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는 매우 위생적이고 안전하기 때문에 의사들도 헌혈을 주기적으로 한다고 해서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최근 지인과 오랜만에 만나 과식에 가깝게 식사를 잘 마치고 나서 무엇을 할 지 얘기하다가, 눈 앞에 헌혈의 집이 보였습니다. 지인이 먼저 헌혈하러 가볼까 말을 꺼냈고 저는 바로 콜! 했습니다. 사실 코로나보다 걱정했던 건 제 몸상태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 헌혈차가 들어와서 혈액검사를 하면 늘 수면 부족에 피로해서 컨디션이 안 좋아 헌혈을 거부당했거든요. 그 후 이십여 년이 지난 이 날은 다행히 상태가 좋았습니다. 일년 이내 수술이나 입원도 없고 전날 밤 잠도 잘 자서 컨디션이 최상이었습니다. 같이 간 지인은 갑상선 약을 먹어서 부적격판정을 받았어요. 복용하는 약 여부도 중요했어요. 

 

컴퓨터로 문진을 하고 간호사분과 대면 문진을 하고 나면 에너지음료를 한 캔 마십니다. 채혈 후에도 한 캔을 또 마셔요. 수분섭취가 그만큼 중요했어요. 채혈 준비가 되면 살짝 기울어진 소파 같은 침대에 누워 다리를 꼬아줍니다. 바늘을 꽂을 때는 병원에서 링거 바늘 들어갈 때와 통증이 비슷했어요. 320ml 전액 헌혈을 하는데는 5분 정도 걸립니다. 채혈하는 동안 원하는 기념품을 고르고 사진도 찍고 주의사항을 읽어봅니다. 저는 영화관람권을 골라서 다음날 바로 영화를 보러갔죠. 채혈을 마치면 5분 정도 팔에 압박밴드를 차고 앉아있다가 휴게실로 가서 음료와 과자를 먹으며 5분 기다립니다. 밀리지만 않으면 총 20분이면 전혈 헌혈이 끝납니다. 걱정과는 다르게, 너무 위생적이고 깔끔하고 기분 좋았습니다. 헌혈증을 받고 스스로 자랑스럽고 뿌듯한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이 피가 누군가에게 직접 전해지고 도움이 되겠구나, 실제적으로 쓸모있는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잠시 팔을 압박하고 있어서 통증과 멍이 있었지만 어지러움, 구토 같은 부작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두 달 후에 다시 헌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 오래 미뤄왔고 괜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던 게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짧고 간단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놀랍고 신기했던 것! 은 ‘레드커넥트’라는 대한적십자사의 헌혈 스마트폰 앱입니다. 제가 헌혈하고 나면 알아서 기록을 관리해주고 다음 가능일과 혈액검사 결과를 알려줍니다. 혈액이 전달되는 과정도 보여주고요. 수시로 이벤트를 하고 있어 다양한 기념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많습니다.  다음 번에 헌혈을 또 하고 싶어서 더 철저히 건강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특권 같은 일 중에 하나가 헌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통번역가분들 포함한 여러분 모두 건강관리 잘하셔서 요즘처럼 혈액수급이 부족한 때에 헌혈에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헌혈의 집은 평일, 주말, 공휴일 저녁까지 운영을 하니까 편한 시간에 언제든지 할 수 있고, 이 ‘레드커넥트’라는 앱으로 예약과 전자문진이 가능합니다. 써놓고 보니 제가 무슨 헌혈 홍보대사 같네요. 참고로 저는 대한적십자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혹시 저처럼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헌혈을 꺼리신 분이 있다면 꼭 해보시라고 강력추천하는 겁니다. 

꿈꾸고 번역하는 비키언니  기분 좋은 피 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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