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머리로 하는 영어’와 ‘가슴으로 하는 영어’의 차이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를 들어볼까 합니다.
한국과 캐나다 사이에 무비자협정이 체결되기 한참 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한국에서 오는 친척을 맞기 위해 공항에 나간 저는 같은 항공편으로 도착하는 장모님을 마중 나온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사색이 된 그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장모님이 입국 심사 중에 이민국의 인터뷰에 문제가 생겨서 다음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문제는 입국 심사를 할 때 이민국에서 부른 공항 상주 한국어 통역사가 한 몇 마디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캐나다 방문 이유를 묻는 이민국 직원의 질문에 장모는 ‘몇 달 전에 출산한 딸아이가 몸을 추스르도록 밥도 해주고 아기도 봐주러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을 통역사는 원문에 충실하게 통역을 했고 이민국 직원은 ‘딸이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을 줄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장모는 ‘용돈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모녀 사이니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통역사의 대답을 들은 이민국 직원은 기다리라고 하고는 자신의 상사와 잠시 상의를 한 후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대가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있고, 받지 않더라도 당신이 입국하여 한다고 한 ‘아기 보기’와 ‘개인의 간병 보조’는 캐나다인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노동 항목이기 때문에, 방문 목적에 부합하는 취업 비자를 받지 않은 당신이 노동 시장을 침해하도록 할 수 없다. 입국을 불허한다. 다음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라!’
통역사를 통해 대답을 듣고도 이해할 수 없었던 연로하신 장모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위를 불러 달라고 호소했고, 이민국은 격리된 지역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허용했습니다. 장모로부터 사정을 들은 사위는 통역사를 통해 이민국 직원에게 오해라며 강경하게 항의했지만, 그들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고 결국 장모님은 몇 시간 후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위장 취업을 목적으로 입국을 시도한 것으로 낙인이 찍힌 장모님은 그 후 일정 기간 캐나다 방문 비자도 받지 못하고 한참 후에나 손주와 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통역사의 역할과 통역 내용에 관한 여러분의 의견은 다음 중 어떤 것인가요?
- 통역사는 말 그대로 통역했기 때문에 임무에 충실했다. 문화와 법의 차이이니 어쩔 수 없다.
- 장모의 말을 너무 직역하여 발생한 오해이고, 오역이 아님을 전제한 후에 통역사가 바로 문화적인 차이를 설명해야 했다.
- 처음부터 통역사의 통역이 잘못되었다. 장모의 언어적 표현이 아닌 의도를 고려해서 ‘새로 태어난 손주도 볼 겸, 딸아이가 걱정되어 곁에서 돌보고 싶어 왔다’라고 해야 했다.
사실 1, 2, 3 모두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맞고 틀리거나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는 것보다는 다음을 고려하고자 합니다.
1번을 선택한 경우는 인과관계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머리로 하는 전형적인 기계적 통역(머영)입니다. 문제가 생길 확률은 가장 낮지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는 방식입니다. 일관성과 중립성 등, 여러 이유로 많은 통역사와 번역가가 이 방식을 선호합니다.
2번을 선택한 경우는 1번 + 통역사의 코멘트 방식입니다. 1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보완하지만, 언제 사용해야 하는가는 통역사의 주관적 판단에 달렸기 때문에 이 역시 완벽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방식을 너무 자주 사용하거나, 잘못 사용할 경우에 고객의 통역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또한, 녹음되거나 법적 효력이 있는 통역에는 적절치 않거나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3번을 선택한 경우는 ‘감정과 공감’을 활용하여 통역사가 일종의 주관적 가치 판단을 가슴으로 한 (가영) 경우입니다. 장모와 이민국 직원의 입장에서 화자의 의도와 문화를 포함함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통역사의 대화에 대한 개입으로 비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결과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3번을 선택하려면 화자와 청자의 의도, 입장,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고, 3번을 선택해야 하는 판단에 자신이 있어야 하며,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위의 사례와 1, 2, 3번의 의견은 우리가 일상처럼 해야 하는 ‘감정과 공감’을 활용할 기준에 관한 판단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위의 판단을 섞어서 활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만일, 모든 언어 표현의 이해에 ‘감정과 공감’을 활용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기계적 번역-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요? ‘기계적 번역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감정과 공감을 활용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판단을 내리기보다 오히려 쉽지 않을까요?
많은 교과서는 ‘감정과 공감의 언어로 사용된 영어’ 표현을 일관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어 무조건 관용적인 표현으로 외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교과서를 쓴 이가 가슴의 언어인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의 기준으로 말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할 때는 한국인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맞고, 영어를 할 때는 영어민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Sorry-regret-apologize’를 기계적으로 ‘미안-유감-사과’로 단순히 번역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영어권의 상갓집에 가서 ‘I am sorry for your loss’라고 상주에게 인사말을 전합니다. 이것을 ‘미안’하다고 번역하면 어색하기 때문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번역하면서 이것은 관용적인 표현이라고 하죠. 과연 우리는 이런 모든 경우를 관용 표현으로 다 외울 수 있을까요? 외우고 난 후에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셔서 저도 마음이 아프네요’라는 번역은 어떨까요? 물론 이것은 지극히 ‘영어다운’ 표현입니다. 한국의 장례식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표현을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인벤토리’가 다양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가능성마저 없이 항상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TM을 사용한다면 어색할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가상의 마피아 갱영화의 지문으로 보스가 오른팔 격인 부하에게 하는 얘기입니다.
- I heard about your wife. I am truly sorry for your loss. But since you decided to betray our family over yours, I’m gonna have to do you in tonight. You get me?
- 아내 소식은 들었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니 나도 정말 마음이 아프군. 하지만, 자기 가족을 구하겠다고 조직을 배신했으니까 오늘 죽어줘야겠어. 이해하지?
- 아내 소식은 들었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네. 하지만, 자기 가족을 구하겠다고 조직을 배신했으니까 오늘 죽어줘야겠어. 이해하지?
보스가 아끼는 부하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고뇌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여기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네’라고 다분히 격식을 갖춘 표현을 쓰면 원문의 감정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거나, 부하가 아내를 잃은 사실을 놀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 수 있습니다.
물론 2번의 방식이 말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1번의 방식으로 표현하겠다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원문을 읽고 바로 1번 방식을 채용하느냐, 아니면 2번의 채용을 고려한 후에 어색함을 없애려고 1번으로 마음을 바꾸느냐 하는 ‘사고와 판단’의 흐름 및 ‘감정과 공감’의 요소를 활용하는 기준입니다.
‘I am sorry’는 나의 마음을 전하는 가슴으로 하는 표현입니다. 물론, 평상시 의례적으로도 많이 사용하지만, 미안한 마음에도 사용할 수 있고, 유감인 마음에도 사용할 수 있으며 사과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 또는 뉘우치는 마음에도 사용할 수 있는 ‘마음 표현’의 단어입니다.
감정 표현으로서의 ‘sorry’는 ‘마음이 아프다, 슬프다, 뉘우치다’라는 ‘마음의 상태’로 이해해야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지금 네이버 사전으로 가서 찾아보면 Thesaurus에 ‘슬퍼하다’라는 감정 상태 표현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기계적인 ‘미안함’에 관한 표현입니다.
한국어의 ‘미안합니다, 유감입니다, 사과합니다’는 마음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관계에 관한 인정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화자 자신이 미안한 이유를 아는 것도 중요한 경향이 있습니다. 머리로 하는 표현인 셈이죠. 그래서 진심(감정)을 다시 묻기 위해 ‘뭐가 미안한데?’라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한국 사람이 다투고 나서 A가 사과하고, 그에 대해 B가 ‘뭐가 미안한데?’라고 하면 미안한 이유를 설명하라는 것 외에도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A가 묻는 것은 진정한 마음으로 미안한지에 관해 묻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감정과 공감’의 언어로 표현해야 청자인 B가 원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습니다. B는 머리로 하는 언어에서 가슴으로 하는 언어로 돌아섰는데 A가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머리로 하는 언어를 구사하면 또다시 말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겠죠.
반면에 영어로 ‘Sorry for what?’이라고 묻는 경우는 화자가 정말로 그 이유를 묻는 경우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마 ‘What did you do? Tell me’라고 말을 이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영어에서는 감정으로 말한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왜 그런 감정이냐고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케이스에서 대답은 머리로 하는 영어가 사용되어야 합니다.
글 첫머리에 들었던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된 장모’의 예로 돌아가서, 한국어의 특성에 따라 ‘머리’로 한 표현을 ‘머리’로 하는 영어로 번역하는 것에 관해 아직도 같은 선택이신가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감정과 공감’의 관점에서 볼 때, 1970년에 개봉된 세기의 명작 ‘Love story’에서 여자 주인공이 사과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남긴 명대사를 번역한 것이 적절한지, 나라면 어떻게 번역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Love i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사랑은 절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몇 분이 물어보셔서 제 의견을 달자면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Love i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고 한 것은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마!’, ‘사랑한다면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네가 알아?’, 또는 ‘사랑하는 거 내가 아니까 앞으로 미안하다고 하지 마!’ 등의 ‘핀잔’과 사랑하는 사람이 미안해 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그렇게 미안해 하는 마음의 원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중의적 느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잘 고르고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번역가의 ‘제2의 창작’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위의 번역 예에서 ‘모호함’은 살렸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모호해서 저라면 그렇게 번역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든 너무나 외국어 같이 들리는 번역이라서요.